지난주 열렸던 서울시치과의사 종합학술대회에서 ‘환자의 심리에 대하여’ 강연을 마치고 나서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그동안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나 보다. 전날까지도 강연의 시작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 필자가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동기를 생각해 보았다.
가느다란 기억의 끈을 잡고 들어가 보니 그 끝에 “원장님, 화나셨나요?” “기분 나쁘신가요?” “제가 진상인가요?”라는 세 가지 질문이 있었다. 이 세 가지 질문에는 몇 개의 심리적 딜레마가 있다. 첫째로 환자의 부당한 행동과 말에 필자도 많이 화가 나있는 상태이므로 환자도 그것을 인식하고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대답이 상당히, 곤란한, 바둑으로 치면 외통수의 질문이다. 화가 났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면 의사라는 전문직업인으로서 프로가 감정을 조절 못한 무능한 사람이 되고, 반대로 화가 나지 않았다고 말하면 감정을 숨기려고 거짓말을 하는 파렴치한이 되기 때문이다. 대답이 곤란한 이 질문을 받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거짓말보다는 진실을 택하였었다.
살면서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비록 당시는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최고의 방법은 ‘정공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래서 “네, 지금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의사고 당신은 환자이니 당신이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곳으로 옮기셔도 되고 저를 선택하신다면 저는 프로이니 기분과 상관없이 진료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다음 진료부터는 좀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해결되었으나 내원 때마다 이런 저런 불만을 토로하였고 필자는 온 힘을 다하여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 하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로 불만을 토로하며 “제가 진상인가요? 그래서 진료를 대충하는 것은 아닌가요?”라는 질문은 또 한 번 필자의 말문을 막았다. 한참 후에 역시 있는 대로 긍정해주기로 하고 “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만, 저에게 치료를 받는 이상은 저도 빨리 진료를 끝내고 안 보아야 하니깐, 최대한 진료를 잘해서 빨리 끝내는 것이 저에게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요?”라고 답하고 전화 불만은 종료되었다.
그 후로도 수십 차례의 불만 끝에 결국 환자는 치료비 환불을 요구하였고 이에 그 동안 심신이 지치고 지친 필자는 원하는 대로 해주고 악몽 속에서 벗어났지만, 가슴 속에 남은 억울함과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두고두고 필자를 괴롭혔다. 그 때부터 사람들의 속마음이 너무도 궁금해졌고 그 일을 계기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필자가 생각한 심리학은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한 것이었는데, 상대에 대한 이야기 없이 본인의 내부 속에 있는 것들을 파악하는 자기심리학이란 것에 처음엔 실망하였다.
심리학의 기본 개념은 나의 내부 속에 있는 기억이나 경험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2년 이상을 공부하면서 내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나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흐름과 아픔, 그리고 상처들이 마구 무의식 속에 넣어 져서 그것이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강연 후에는 모처럼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 넷이 임재범콘서트를 보러갔다.
모두가 일어서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환호하고 춤을 추는데 필자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20대와 50대 초반의 모녀로 보이는 여자 둘의 행동이 공연 내내 집중을 방해하였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모두가 일어서는데도 다리를 꼬고 앉아 시종일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딸은 엄마 눈치를 보며 간간히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끝날 무렵에나 무안한 딸의 속삭임에 마지못해 일어났었는데 그것도 잠깐이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를 보며 필자는 ‘마음속에 얼마나 무거운 것을 넣어 두었길래…’하는 마음에 50대 여성도, 같이 있는 20대 딸도 모두 안쓰러웠다. 아마도 본인만 모를 것이다. 우리 역시 어느 곳에서 그런 모습으로 행동하고 있지나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