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청주시립무용단의 공연이 있어서 인간문화재 선생님과 몇몇 지인들과 같이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엄청난 폭우를 만났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관계로 결국 새벽 3시 즈음에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분이 오전부터 약간의 치통을 호소하더니 공연 후 뒤풀이 모임에서 한잔 한 이후로 통증이 심해지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매우 아픈 상황이 되었다. 급성치수염 정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이 치과의사인 필자를 바라보았으나 필자의 병원은 교정치료만 하다보니 일반 진료 기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치료가 어려운데 일반인들에게 설명하기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기로 하고 강남에 있는 모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접수를 시키며 치과선생님들이 계신지를 물으니 계신다는 답변을 들었으나, 일단은 응급의학과에서 보고 난 다음에 치과 선생님을 불러준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지금 환자가 많이 밀렸으니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할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치과환자를 응급의학과가 보아야 한다는 말이 도무지 수긍이 안 된 필자가 신분을 밝히고 응급의학과 담당의를 만나서 치과진료를 응급의학과에서 하는지를 물어 보았다. 담당자는 응급의학과에서 보고 치과의사를 불러주는데 신경치료 같은 것은 안하고 골절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신경치료는 치과대학이 있는 병원으로 가야만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말 황당한 순간이었다. 1시간을 기다리고 만날 응급의학과 의사로부터 들어야할 이야기가 치료를 못하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이란 결론이다. 그 순간 필자의 머리에는 ‘아! 이래서 급한 응급 환자들이 병원을 떠돌다가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분노와 함께 떠올라왔다.
하지만 일행들이 보는 관계로 조용히 강북에 있는 모 치과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접수를 하고 선생님이 내려오고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일반 치아 방사선 촬영은 가능한데 파노라마는 못 찍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한국 최고의 치과대학병원에서 응급환자의 파노라마 사진촬영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뒤엉켰다. ‘만약 장관이 응급으로 왔더라도 이럴까?’하는 생각과 20여년 전 필자가 구강외과 수련시절에 1년간 당직을 서면서 응급으로 내원하는 환자의 모든 치료를 다하고 나면 새벽에 날이 훤하게 밝아왔던 그때보다도 못한 현실이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그럼 그 많은 야간의 응급환자들은 어떻게 지낼까?’하는 생각에 너무도 끔찍스러웠다. 급성치수염으로 죽지는 않는다지만 아침에 치과 문을 열 때까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20년 전에는 모든 중소 종합병원에는 구강외과가 있었다. 그래서 응급실에는 인턴이 항상 상주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전문의제도가 시행되면서 전문의 수련기관의 규정을 강화하고부터 몇 십 년을 존재해왔던 중소 종합병원의 구강외과가 폐지되고 따라서 상주하는 인턴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과 같이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병원이 거의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적어도 모든 치과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을 해결해야하는 최소한의 사명을 지녔다. 그런데 야간의 치과응급환자에게 죽지 않으니 아침까지 견디라고 하는 것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아는 치과의사로서 매우 잔인한 일이다.
사연이 어떠하건, 법이 어떠하건, 분명한 것은 치과의사란 집단은 반드시 야간 치과응급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치과의사로서의 반드시 해야 하는 사명이다. 대국민 응급치과진료를 외면하고, 그 환자가 응급의학과에서 계속해서 황당한 답변을 받는 순간, 치과의사들이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으로 가는 길은 점점 더 요원해진다.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할 때, 그때 존경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치과의사를 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눈이 조금씩이나마 긍정으로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