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강검진의 힘, 현장에서 얻은 확신
“나는 치과 가면 주사 맞는 기분이 들어요…”
다섯 살 현구가 유니트 체어 앞에서 엄마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납니다. 그 옆에 서 있던 여덟 살 나래는 능숙하게 의자에 올라앉더니, 입을 벌리기 전 한 마디 툭 던집니다.
“선생님, 오늘도 검사만 하고 가는 거죠?”
진료실에서 이런 장면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낯설고 긴장되는 치과 환경에서 걱정과 두려움을 보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느새 의젓해져서 치과를 평범한 공간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차이는 단지 나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래는 생후 6개월, 첫 유치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던 시점에 처음 치과를 찾았습니다. 국가 영유아 구강검진이 시작되는 18개월보다 훨씬 빠른 시기였죠. 진료실 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던 첫 방문을 지나 몇 차례 만에 나래는 스스로 의자에 올라가 입을 벌릴 만큼 익숙해졌습니다.국가검진이 18개월부터 시작되는 이유는 유치열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객관적인 구강 평가가 가능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이른 시기의 방문이 결코 빠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가 치과 환경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조기에 치과를 ‘익숙한 장소’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은 이후 진료 협조도도 높고, 구강건강에 대한 인식도 빠르게 자랍니다.
이런 변화는 특정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닙니다.많은 치과의사들이 매일 진료실에서, 나래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국가 구강검진이 단순한 검사가 아니라 아이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생애주기별 국가 구강검진 제도
영유아 구강검진
생후 18개월부터 65개월까지, 총 4회의 검진 기회가 제공됩니다. 대상 시기는 18~29개월(1회차), 30~41개월(2회차), 42~53개월(3회차), 54~65개월(4회차)입니다. 각 시기별로 구강 상태 확인은 물론,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생활습관 지도도 함께 이루어집니다. 특히 30~41개월은 유치열이 거의 완성되는 시기이자 충치 발생률이 높아지는 시점이라 보다 정밀한 관찰이 필요한 구간이기에 2022년부터 추가되었습니다.
주의사항으로는 각 시기를 놓치면 구강검진을 받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아과에서 시행하는 영유아 검진과는 달리 문진표를 미리 작성하여 웹으로 송부해도 각 치과로 전달되지 않아 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문진표를 작성하여야 합니다.
학생 구강검진 및 아동치과주치의 사업
2024년부터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구강검진이 국가건강검진 체계에 정식으로 포함되었습니다. 검진 항목은 시진, 치면세균막 검사, 구강위생 상태 평가, 필요 시 불소도포 및 실란트 연계 등입니다.한편, 아동치과주치의 사업은 현재 서울시 25개 자치구 전체에서 시행 중입니다. 예방 중심의 구강건강관리를 목적으로 2023년부터 시범 운영 중인데 올해는 1·2·4·5학년이 대상이고, 2026년 이후에는 전 학년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다른 국가 구강검진과의 차이점은 본인 부담금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정기 구강검진 및 시진: 치아우식, 잇몸 상태, 치면세균막 평가 ●구강위생 검사 및 교육: 양치질 습관, 식이습관 지도, 보호자 교육 ●예방 진료: 치면세마, 불소도포, 필요시 실란트 ●개별 구강건강 리포트 제공: 진단결과, 개선방향, 가정 내 실천사항 포함 ●소액 본인부담(약 4,300~7,500원) / 의료급여 수급자 등 면제 |
이 사업은 단순히 치아를 ‘검사’하는 것을 넘어 아동 스스로 구강건강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보호자와의 의사소통까지 포함하는 통합 예방 모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인 및 노인 구강검진
만 40세 이상은 2년에 한 번씩(비사무직은 매년) 국가 건강검진과 함께 구강검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검사항목은 치주 상태 확인, 치면세균막 측정, 구강위생 습관 확인 등이며, 그 결과에 따라 잇몸질환 예방이나 불소 적용 등 추가 조치도 가능합니다.
노인층에 대해서는 파노라마 방사선 촬영, 저작기능 평가 등 보다 포괄적인 검진 체계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고령 인구의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해 치아 개수뿐 아니라 저작력 유지와 영양섭취 기능에 대한 평가지표가 강화될 전망입니다.
취약 및 특수 대상 구강검진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특수학교 학생 등은 지역 보건소나 구강보건센터를 통해 정기적인 구강검진과 예방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방의 경우에는 순회진료 차량과 이동 치과 장비를 활용한 검진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어 접근성 측면에서의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치과는 무섭기 전에 익숙해져야 한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현구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별로 안 아팠어요. 다음에는 좀 더 오래 앉아볼게요.”
그 한마디에 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치과가 무서워서 피하는 곳이 아니라 익숙해서 먼저 입 벌릴 수 있는 곳이 되는 것, 그게 바로 구강검진의 진짜 힘입니다. 검진은 ‘문제가 있을 때 받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익숙해지고, 미리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진료실에서는 스스로 입을 벌리는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늘은 치료 안 해요?” “치실 써봤어요!” 하며 당당하게 검진을 요구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 덕분에 치과는 점점 ‘공포의 현장’이 아니라 ‘일상 건강관리의 한 장면’이 되어가고 있구나!’
치과검진, 더 이상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한 발 앞선 만남, 한 번 더 챙긴 예방,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운 치과생활의 시작입니다. 다음 방문도, 또 그다음 방문도 두렵지 않고 조금은 익숙해진 치과의자에서 아이들과 함께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