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불황, 돌고 돌아 ‘신뢰’로
슬림경영, 가치터널, 가족치과…치과계, 불황 맞설 경영 비책 공유
어느 원장의 말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황”인 시대, 치과의사들의 ‘경영 공부’ 열정이 뜨겁다.
쉽게 말해 1인 기업이다. 치과의사로서 진료에도 열심이어야 하고, 원장으로서 경영에도 열심이어야 한다. 진료실을 벗어나면 바쁜 남편, 지친 아빠를 기다리는 한 가족의 가장이다. 하나만 잘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이에 새로운 술식을 익히기에 바빴던 치과의사들이 ‘경영 잘하는’ 원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영 세미나로 모여들고 있다.
지난달에만 4개의 경영 관련 세미나가 열렸다. 굿파트너의 ‘병원 경영관리 통합시스템 세미나’, 팀세미나의 ‘3저 시대 치과경영, 환자관리 및 상담 세미나’, 휴네스의 ‘병원시스템 구축 워크숍’, 대한치과경영관리협회의 ‘병원경영관리자 12기 과정’ 등이 그것. 참여율도 결코 낮지 않다. 대부분이 ‘만석’을 기록했다.
모두가 ‘경영’을 내걸었지만 접근법은 각기 다르다.
“정말 재밌다”는 입소문을 타고 부산까지 진출한 팀세미나 토크는 ‘3低 시대의 치과 경영, 환자관리 및 상담’을 주제로 경영에 대한 인식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 생존전략, 치과의료서비스의 새로운 패러다임, 수퍼스탭 양성을 제안하는 것이 골자. 저성장(경기 하락), 저수가(수가 파괴), 저충성(낮은 환자 충성도)의 3저 시대, 정기춘 원장은 ‘상담실장’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다. “병원 내 조직을 ‘진료팀’과 ‘관리팀’으로 세분화해 경영의 실효를 높여야 한다”는 정 원장은 “환자의 진료 동의율을 높이기 위해 ‘주연’인 원장은 진료 계획을 꼼꼼히 설명하고 ‘조연’인 상담실장이 다시금 주요사항을 짚어주며 수가를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생 좀 하자”, “열심히 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식의 ‘옛날치과’ 마인드로는 뛰어난 직원을 양성하고 새로운 환자를 창출해낼 수 없다며 “후퇴가 아닌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득한다. 직원 간 단합을 도모하는 것은 기본, 바람직한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해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해결책도 제시한다. 환자의 의료 소비심리를 이해하고 ‘맞춤형’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정 원장의 ‘족집게 과외’에 펜을 쥔 손들이 분주했다.
팀세미나 토크가 상담 노하우와 마케팅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의료컨설팅 업체인 (주)휴네스 윤홍철 대표가 진행하는 병원시스템 구축 워크숍은 환자-직원-진료 3요소의 ‘조화’를 추구한다. “경영이란 관련된 모든 요소들의 효율적인 운영을 의미한다”는 윤 대표는 휴네스 워크숍을 “돈 버는 비법을 소개해주는 강연이 아니라 치과의사나 스탭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경영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강연”이라고 소개했다.
어려운 개원 환경을 타개하는 데에 있어 경영법의 전환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윤 대표는 “의료를 사업처럼 생각하고 경영‘기법’을 좇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며 “의료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선행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의료의 본질로는 히포크라테스가 의료의 3요소로 꼽은 질병, 환자, 의사를 들었다. 워크숍의 슬로건인 ‘의료 3.0 시대’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의사, 즉 공급자위주의 의료 1.0 시대에서 ‘친절’과 ‘서비스’에 발을 들이게 된 소비자위주의 의료 2.0 시대, 그리고 술식과 재료 위주의 의료에서 관계 위주의 의료로 변화하는 의료 3.0 시대로 끊임없이 변모해온 의료계의 흐름을 이해해야한다는 것. 이를테면 임플란트 제품 자체보다 시술하는 과정에서 환자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로써 환자들이 의료의 가치를 실감하게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병원전체의 구성요소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휴먼웨어로 구분하고 상호 소통을 추구해야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학술대회에서도 경영 관련 교양 강좌는 단연 인기다.
인천광역시치과의사회(회장 이상호·이하 인천지부)의 종합학술대회에서는 위기에 대처하는 치과경영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불황을 대비하는 슬림경영’ 강연이 청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전세계가 경기 불황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즈음, 치과계 역시 다를 바가 없다. 치과의사는 공급과잉에 이르렀고, 금속재료의 매입단가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춘 보철 수가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수가체계도 무너졌다. 이전과 같은 매출, 같은 순익을 기록하더라도 실질적인 삶의 질은 하락한 것도 주지의 사실.
강연에 앞서 ‘불황기의 치과경영, 이젠 슬림경영이다’는 저서로 눈길을 끌었던 진재윤 대표는 “슬림경영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해야만 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슬림이라고 해서 단순히 인력을 줄이고 경비를 조절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직무기술서와 업무 테이블을 바탕으로 필요업무량을 산정해 인력을 운용하고, 장비 역시 업무 소모량을 기준으로 구입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 진 대표는 “안 쓰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탭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장 역시 보다 많은 직무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적화된 대형치과와 알짜 소형치과 사이, ‘애매한’ 중형치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구조조정과 경영 ‘혁신’이 필수라는 의견이다.
개원가의 반응은 어떨까.
세미나 현장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뜨겁다’. 어느 주제의 세미나보다 청중들의 집중력이 높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 “매우 유용했다. 내일부터 적용해보겠다”는 호평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서울의 한 개원의는 “경영이라는 그럴 듯한 간판을 달고 그저 돈을 좇을 뿐인 강연들을 보고 있자면 개탄스러울 따름”이라며 “물론 원장이라는 직함이 경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라지만 물욕보다는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우선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지리적 여건도, 물리적 여건도 좋지 않은 작은 동네치과가 그 동네를 대표하는 치과가 되는 경우를 예로 들며 “스스로가 올곧은 의식을 갖추고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성공 노하우”라는 의견도 밝혔다.
치과의사 본인의 노력에 ‘플러스 알파’가 될 스탭 및 환자와의 관계 맺기에 관련한 강연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추세다. 한국기독치과의사회(회장 이건주)도 ‘좋은 치과 만들기 심포지엄’으로 힘을 보탰다. 이철규 원장(이철규·이대경치과)은 “원장과 스탭 모두가 공동체의식, 주인의식을 갖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서번트 리더십’을 제안했다. “원장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도 같다”는 이 원장은 “스탭들이 원장이 제시하는 비전의 실현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앞에서, 또 뒤에서, 믿어주고 도와주는 것이 원장의 역할이며 진정한 휴먼 경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함께 일하는 스탭은 물론 기공사, 재료상 등 관계된 모든 이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과거에도 그러했듯, 치과계가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경영 관련 강연들이 해악이 될지, 빛과 소금이 될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계산적인 마케팅을 통해 이윤을 좇는 변질된 경영이 아닌, 투명한 경영, 상생의 경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각 연자가 제시하는 좋은 경영 내지는 효과적인 경영은 각기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모든 연자들, 그리고 개원의들이 도달하는 귀결점은 하나다. 바로 ‘신뢰’와 ‘진심’이다. 가장 손쉽게는 함께 일하는 스탭,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진심을 다하고, 깊은 신뢰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대국민 이미지 제고로 이어진다면, 치과계에 ‘황금기’가 도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홍혜미 기자/hhm@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