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료가 끝나고 지인들과의 모임 후에 몇 명이 압구정동에 있는 노래방에 들렸다. 대략 11시경이었는데 예전 같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벼서 기다리다 들어가곤 했는데 어제는 우리 팀밖에 없어 한산하였다. 요즘 실물 경기가 좋지 않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압구정동은 그 이름처럼 서울 최고의 경제적 지위를 과시하는 지역임은 모두가 아는 바이다. 그런 압구정동의 노래방이 한산한 것은 실물경기가 얼마나 위축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요즘 잘되는 직종은 커피숍인 것 같다. 어디를 가든 좋은 커피숍들이 넘치고 그곳은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객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원래 불황에 잘되는 업종이 점집과 간판집, 그리고 인테리어란 말이 있다. 이는 장사가 잘 안되니 마음이 불안해서 점치러 가는 것이고, 고객이 줄어드는 원인이 간판이 잘 안보여서 일까봐 간판을 바꾸고, 인테리어가 낡아서인가 하여 다시 인테리어를 한다고 한다. 결국 경기가 나빠진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다보니 나타나는 행동들이다. 그런데 커피숍이 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체에서는 문화니 트렌드니 하고 이야기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2,500원짜리 라면을 먹고 7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것을 단순히 기호나 문화나 트렌드로 생각하기에는 조금 설득력이 부족하다. 전적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심리적으로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요즘 휘발유가 리터당 2,000원대를 오르고 내린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른다. 전세값 폭등으로 서민들의 지출이 훨씬 증가되어 어쩔 수 없이 지출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즉 목돈이 나가는 지출은 무조건 줄여야 한다. 그러기에 현 상황에서 치과에 환자가 줄어드는 것은 필연인 것이다. 이렇듯 지출을 줄이다보면 사람의 심리는 위축되고 심지어 본인이 처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에 무의식은 이런 심리적인 왜소감을 보상하기 위하여 적은 지출로 가장 럭셔리해 보일 수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좋은 커피숍에서 멋있고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비싼 커피를 즐기는 모습은 경제적으로 실추된 자신의 품위를 보상 받기에 아주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다음 기회로 미룬 보철치료나 교정치료에 대한 불안감을, 좋은 옷을 선택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무의식은 보상 받으려고 노력 할 것이고 이에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좋은 커피숍에 훌륭한 커피일 수 있다.
커피숍의 고객이 많아질수록 치과 내원환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논리적 비약일까? 하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여 현재의 상황을 이해해 보자고 노력한다. 지금 치과의사들은 내부적으로는 힘든 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고 외부적으로는 모 치과네트워크로 인하여 방송에서 사상 초유하게 신분과 명예가 저질화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 치과의사들의 가슴이 조금씩 멍들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도 퇴근길에 실추된 자존심을 위로받기 위하여 커피숍을 반드시 들려야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압구정은 원래 조선시대 한명회의 호였다. 한명회가 지금의 현대아파트 자리에 정자를 짓고 백성들에게 놀다가라는 의미로 놀 압(狎), 갈매기 구(鷗), 정자 정(停) 자를 써서 압구정이라 이름 지었다. 갈매기(백성)들이 노닐다가는 정자란 의미였으나 백성들은 ‘놀 압(狎)’자를 ‘억누를 압(押)’자로 바꾸어 백성들을 억압하는 정자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압구정동은 갈매기들에게 그리 편한 곳만은 아닌 듯싶다.
그런 압구정이 예전이 아니듯 치과의사도 예전과 다르다. 그 곳에서 부는 썰렁한 바람이 여러 가지로 심난한 마음을 더욱 서늘하게 한다. 시대 변화의 찬바람에 지친 심신이 커피숍의 따뜻한 카페모카 한 잔으로 풀리고 위안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대학시절에 듣던 ‘모나코’라는 음악도 곁들을 수 있으면 현실을 잠시 잊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