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제품을 해외에서 직접 구매하는 소위 ‘직구’가 새로운 소비 패턴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외 배송대행서비스업체 ‘몰테일’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배송대행 주문 건수는 지난해보다 1.5배 늘어난 72만건. 의류·속옷이 전체 주문 건수의 68%를 차지했고 신발·가방·잡화(18%), 생활·주방용품(4%) 등이 주류를 이뤘다. 주문 금액은 10만원(100달러) 이하가 51%로 가장 많았다. 200달러 이상은 4% 정도에 그쳤다.
직구는 제품의 공식홈페이지를 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베이와 아마존 같은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뤄진다. 특히 해외배송을 직접 해주는 제품의 경우 국내 온라인 쇼핑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새로운 직구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치과계에도 이런 직구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터넷 쇼핑에 친숙한 젊은 치과의사를 중심으로 직구 바람이 불고 있는 것.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개원환경에서 보다 저렴한 제품을 구입하기 위한 노력이 온라인구매를 넘어 해외 직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베이의 경우‘Business & Industrial’ 범주에 ‘Dental’ 섹션이 마련돼 있고, 아마존도 ‘Industrial & Scientific’ 카테고리에 ‘Professional Dental Supplies’ 코너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치과의사 해외 직구, 득일까? 실일까?
1개 가격으로 10개를?
일반적으로 직구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결제방법도 생소하고 언어의 장벽을 해소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인 대응이 힘들고 배송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직구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지만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점차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해외 온라인 쇼핑몰 치과 코너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은 중고제품부터 현지 딜러가 판매하는 제품, 중국의 저가 제품 등 대부분의 치과 용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엔도 파일이나 브라켓 등 재료는 물론이고 근관충전기, 핸드피스 등 소장비와 유니트 체어와 CT 등 대형장비까지 수만가지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예를 들면 국내에서 수십만원에서 백여만원에 판매되는 초음파 세척기를 10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도 별도의 절차 없이 간단한 클릭만으로 구매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보니 그간 구매를 망설였던 제품을 테스트 해볼 목적으로 직구 에 나서는 치과의사도 있다. 국내업체들도 다양한 체험이벤트를 제공하고 있지만 구매에 대한 부담이 있기 마련이다. 무료배송을 해주는 제품을 구매해 미리 테스트 해보고 구입을 결정하는 치과의사도 있다. A원장은 평소 구매를 고민하던 루페를 직구를 통해 구매했다. 자신의 진료스타일에 루페가 적합한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A원장은 “품질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며 “부담 없는 가격에 테스트 해볼 수 있어 좋았다”고 밝혔다.
B원장은 직구를 통해 광중합기를 구매했다.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10여만원 수준의 중국산 제품 구매를 고려하던 도중 직구를 이용하면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A/S가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 3개를 한번에 구입했다. 고장이 나면 바로 다른 제품으로 돌려쓰기 위해서다. B원장은 “만원이 겨우 넘는 가격에 원하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며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같은 제품이 국내 대리점을 통해 판매되는 가격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유통과정상 비용을 감안 하더라도 거품이 심한 것 같다”고 전했다.
종종 직구를 즐겨한다는 C원장은 앞선 A원장과 B원장의 경우와는 그 계기가 달랐다. C원장은 개인물품을 구매하던 도중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엔도파일과 같은 제품이 해외사이트에서 30%도 안되는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발견했다. 저렴한 가격에 덜컥 구입했다가 제품 설명과 전혀 다른 물품을 받아본적이 있는 C원장은 일단 판매자를 확인했다. 판매자는 수천건에 달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어 C원장은 제품을 구매했고 품질도 만족했다.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직구는 이로운 점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본인도 모르게 불법을 저지르게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합법과 불법을 오가는 직구
앞선 B·C원장의 사례는 불법이다. 구입품이 의료기기이기 때문이다. 의료기기는 의료기기법 제26조에 의거해 별도의 허가나 신고 없이 수입·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단속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직구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수입되는 물건의 양이 수십배 증가했다. 전수조사는 불가능에 가깝고 이를 통해 의료기기의 직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 또한 불법이 자행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액 구매 위주이기 때문이다.
직구의 수입은 크게 일반통관과 목록통관으로 나뉜다. 목록통관은 200달러까지, 일반통관은 15만원까지 면세가 된다. 한도를 넘지 않는다면 별도의 절차 없이 받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 구매 시 사용한 카드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추후에 적발될 수 있다. 또한 면세한도가 넘는 제품은 금액을 속여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판매자가 인보이스에 제품의 가격을 실판매가 보다 낮게 기록하는 언더벨류가 바로 그것. 이는 명백한 세금포탈 행위로 불법이다. 적발 시 물품가액의 3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게 된다. 치과에서 직구하는 물품은 의료기기 외에도 대부분 일반통관 제품이다.
일반통관의 기준이 15만원으로 규정돼 있어 제품의 가격이 이를 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15만원에는 제품가격과 해외에서 이뤄지는 배송비용 그리고 선편요금이 포함된다. 선편요금은 실제 배송료와는 별도의 개념으로 관세청에서 매주 고시한 우편요금표를 기준으로 삼는다. 국내까지 무료배송이더라도 선편요금 때문에 세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 환율 역시 실제 환율이 아닌 매주 고시되는고시환률이 적용돼 주의가 필요하다.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모두 정품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저가로 판매되는 제품은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가짜가 많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해외 치재업체의 제품을 밝히고 있는 제품도 많다.
해외 치재업체 관계자는 “정상가에 근접한 제품들의 경우 현지 딜러를 통해 간혹 판매되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은 중국에서 만든 가품”이라며 “설령 바터 등의 방식으로 유통돼 판매되는 당사의 제품이더라도 정상적인 유통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기에 A/S는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합법적인 직구를 위해서는 면세를 위해 언더벨류 등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 의료기기가 아닌 초음파세척기와 루페 등 일반기기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단 이 경우에도 제품의 A/S나 교환이 국내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불안한 ‘직구’어쩔수 없는 선택?
해외 직구의 등장은 흡사 치과계에 온라인 쇼핑이 처음 도입되던 방식과 유사하다. 기존의 유통방식에 비해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우는 것 또한 비슷하다. 하지만 치과에서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제품은 의료기기이므로 현행법상 직구는 불법이다.
어떻게 보면 직구에 이렇게 관심이 모이는 것은 그만큼 개원가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D원장은 “예전에는 진료시간에 컴퓨터로 물품을 찾아 구매할 여유가 없었다”며 “결국 직구라는 것도 인터넷이 친숙한 젊은 치과의사들이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한 자구책인 것 같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믿을 수 있는 제품을 국내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다면 치과의사가 굳이 해외로 눈을 돌일 필요가 없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품을 팔고 있는 국내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도 “예전에는 제품의 가격과 정보는 치과재료상과 주변 동료들에게 듣는 것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수많은 창구가 있다. 가격 거품은 더 이상 용인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선통신기기도 국내에서 판매되던 제품이라도 직구하면 개별로 전파안정성평가를 받아야 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판매목적인 아니라면 별도의 인증은 받을 필요가 없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전문의약품이 아닌 일반의약품도 반입금지 성분만 없다면 자가 사용목적으로 1인당 6개까지 구매가 가능하다. 의료기기의 유통도 이처럼 변화할지도 모른다.
D원장은 “더이상 의료용, 치과용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가격이 부풀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전했다. 직구는 분명 보다 저렴하게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방법이다. 하지만 현행법을 넘어서 불법 자행하는 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치과의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일이 될 수 있다.
김희수 기자 G@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