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칼럼에서는 ‘의료행위’의 범위에 관한 판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치과 의료기관에서는 치과의사치과위생사간호조무사치과기공사 간 업무범위가 문제될 수 있는데요. 의료법이나 의료기사법에서는 업무범위를 완벽하게 나누고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행위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업무범위를 조금 더 명확하게 구분하는 데 용이할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판례는 치과의사와 치과기공사간 업무범위에 대한 것입니다.
■ 사실관계 (아래는 판례 설명을 위해 가상 인물과 장소를 설정했음)
① 피고인 오원장은 청주시에 있는 ‘오킴스치과의원’의 공동대표로 근무한 적이 있는 치과의사이고, 피고인 치기공은 위 ‘오킴스치과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치과기공사로서 의료인이 아니다.
② 피고인 오원장은 2012. 6. 19. 10:30경 위 ‘오킴스치과의원’ 진료실에서 치은염 치료환자인 ▽▽▽을 상대로 치근활택술을 시행하기 전에 의료기기인 마취액주입기(KM-7000, 일명 ‘무통마취기’, 이하 ‘이 사건 마취액주입기’라 한다)를 사용하여 마취하는 과정에 위 환자의 왼쪽 아래 잇몸 부위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은 후, 치과기공사인 피고인 치기공에게 마취주사액(리도카인)이 주입되는 동안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바늘의 아래 부분과 연결된 이 사건 마취액주입기의 줄을 잡고 있도록 지시하고, 피고인 치기공은 마취주사액이 주입되는 동안 위 환자가 마취치료를 거부할 때까지 약 1분 동안 피고인 오원장의 위와 같은 지시에 따라 주사바늘과 이 사건 마취액주입기의 줄이 연결된 부분을 잡고 있었다.
③ 이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피고인 치기공이 면허된 치과기공사의 업무범위를 벗어난 진료보조행위를 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였다고 공소제기하였다.
■ 판결 주요 내용
마취액주입기는 치과시술을 앞둔 환자의 마취에 따른 통증을 줄이기 위하여 고안된 기계로서 사용자의 설정에 따라 일정한 양의 마취주사액이 일정한 속도로 자동으로 주입되는 점, 이 사건 마취액주입기를 통하여 마취주사액이 주입되는 동안 주사바늘이 연결된 줄을 고정시키는 이유는 주사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반드시 사람이 그 줄을 잡고 있는 방식으로 할 필요는 없고 다른 도구나 테이프 등을 이용하여도 충분한 점, 더구나 이 사건 당시 피고인 오원장은 환자 ▽▽▽이 있던 같은 진료실 내에서 환자 ▽▽▽과 불과 약 3m 떨어진 거리에서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바늘의 아래 부분과 연결된 이 사건 마취액주입기의 줄을 잡고 있는 행위’ 자체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을 요한다거나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로서 반드시 의료인이 하여야 하는 행위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피고인들에 대하여 각 무죄를 선고한다.
■ 관련법령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제87조의2(벌칙)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제1조의2(정의)
제2조(의료기사의 종류 및 업무)
제3조(업무 범위와 한계) [의료기사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의료기사 업무 범위 등)
[별표1]
5. 치과기공사 |
■ 시사점
그 동안 대법원은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서 정하는 ‘의료행위’라 함은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는 추상적 위험으로도 충분하므로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해온 바 있다(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0도5964 판결 등 참조).
또한 의료기사제도의 취지와 관련해서는, “의료행위는 의료인만이 할 수 있음을 원칙으로 하되,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기공사, 치과위생사의 면허를 가진 자가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하에 진료 또는 의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행위는 허용된다.
그러나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이 의료기사 제도를 두고 그들에게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의료행위 중의 일부를 할 수 있도록 한 취지는, 의료인만이 할 수 있도록 제한한 의료행위 중에서 그 행위로 인하여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또는 공중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적은 특정 부분에 관하여, 인체에 가해지는 그 특정 분야의 의료행위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 등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획득하여 그 분야의 의료행위로 인한 인체의 반응을 확인하고 이상 유무를 판단하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인정되는 자에게 면허를 부여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 특정 분야의 의료행위를 의사의 지도하에서 제한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9도794 판결).
즉, 법원은 ‘의료인이 하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또는 공중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료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소개해드린 판례 사안에서 ‘자동으로 마취액을 주입하는 마취액주입기를 단순히 잡고 있었던 행위’는 위 기준에 의하더라도 의료인이 행하여야 하는 의료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마취”과정 전체를 하나의 의료행위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그 과정 중에서도 의료행위의 속성을 지니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 판례를 통해 의료기술의 발전과 신의료기기의 도입을 통해 의료인이 직접 수행하여야만 하는 의료행위의 범위가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