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원 진료 중 ‘코로나19 감염’ 불안을 느낀 환자가 2배 넘게 증가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확진자가 연속해 500명에서 700명 선을 오가니 당연한 일이다. 필자 또한 환자를 진료하면서 감염을 걱정하는 빈도가 2배 정도 증가했으니 의사나 환자나 매일반인 듯하다.
전 국민이 1년 넘도록 코로나 불안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생활하다 보니 모든 사건 사고가 증폭되어 나타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최근 뉴스들은 생각의 범위를 넘고 있다. 구미 여아사건은 아동학대 사건의 정점을 보여준다. 어제는 인천 모텔 영아 심정지 사건이 있었다. 최근 부모로부터 학대받고 사망하는 영유아가 증가했다. 아동학대 증가에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가 영향을 조금은 주겠지만 원천적인 원인은 아니다.
그럼 왜 최근 영유아 학대 사건들이 증가하는 것일까. ‘선녀와 나무꾼’에서 해답을 찾아본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주인공은 나무꾼이다. 나무꾼은 세 종류가 있다. 우선 전문직종으로 나무꾼이다. 직업적으로 나무를 하여 장에 파는 사람들이다. 조선시대에 성저십리금장금송(城底十里 禁葬·禁松)로 도성에서 10리까지는 벌목과 매장이 불가해 멀리서 나무를 하여 전문적으로 파는 것이 가능했다. 두 번째는 농사를 짓다가 집에서 땔감을 쓸 목적으로 잠깐 나무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직업이 농부다. 세 번째는 아무런 직업 없이 놀다가 잠시 땔나무를 구하는 사람이다. 요즘으로 치면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할까. 하지만 아무 일도 안하는 백수와는 다르다.
최근 정식직업을 구하지 못했거나 자의든 타의든 아르바이트만으로 살고있는 이들을 필자는 ‘현대판 나무꾼’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나무꾼들이 많았던 이유는 삼정의 문란 때문이었다. 철종 때 진주민란의 시작이 나무꾼들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녀는 원래 신분이 하늘나라 사람으로 인간계에 놀러 왔다가 나무꾼에게 옷을 빼앗기며 나무꾼의 아내로 아이를 낳고 살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후진국에 여행을 갔다가 여권을 강탈당하고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영유아들의 부모는 기본적으로 20대와 30대 초반이다. 이들 세대는 취업이 되지 않는 시대를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나와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도 반기는 곳이 없다. 취업을 해도 미래가 불확실해 그만두고 의전원, 치전원, 약전원 시험 준비를 하는 인원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현대판 나무꾼이 많아진 이유는 다양하다. 저성장과 고령화로 취업 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고임금은 기계화를 유발해 일자리를 없앴다. 현대판 나무꾼을 만나 현대판 선녀가 탄생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이를 낳았고 키우게 되었다. 이런 슬픈 현대판 탄생 설화를 지닌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었다. 준비돼 있지 않은 사회에서 준비하기 어려운 부모가 만들어낸 슬픈 사건들이다.
현시대를 살고있는 학대받는 슬픈 아이들의 부모인 선녀와 나무꾼들이 비록 가해자이지만, 그들 또한 미성숙한 사회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처럼 원해서 나무꾼이 된 것이 아니다. 영혼 없는 어린이집에서 집단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교권과 인성이 무너진 학교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경쟁교육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아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기다리는 것은 취업 지옥이었다. 취업하지 못하면 백수가 아니면 나무꾼이 되었다. 부모가 먹을 것이 있으면 백수가 되었고, 없으면 나무꾼이 되었다. 물론 나무꾼과 선녀가 모두 그런 것도 아니고 모두가 아동학대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나쁜 사람이 많기보다는 나쁜 상황이 많을 뿐이다.
지금 20~30대가 직면한 세상은 40~70대가 살던 세상이 아니다. 70~90대는 이해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 또한 과거 세대가 보던 것과 다르다. 부모세대가 예측한 미래는 빗나갔다. 자식세대가 만난 현실은 생각한 것보다 가혹했다. 그런 그들이 다시 부모가 되어 아이를 출산하니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판 나무꾼을 만들고 있는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를 셋을 낳으라고 조언하는 사슴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