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증가시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의료계는 강한 반대를 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의사가 부족할 것이란 이유를 들었지만, 객관적인 설득력이 부족하다.
의대 증원 계획은 소아청소년과(소청과)가 문을 닫으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의료 기피과 문제 해결방법으로 과거 군사정권이 강제적으로 의대 수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킨 방법을 답습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걱정이 앞선다. 영화 <서울의 봄>처럼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정권은 국민적인 인기를 얻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의대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의대를 늘려서 의사 수가 많아지면 의료수가가 낮아질 것이란 단순한 생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때처럼 의사 수를 증가시키면 소청과를 포함한 기피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고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문제의 시작은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사건이다. 검찰은 의사 4명과 간호사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고 게다가 이들 중 일부를 구속까지 했다. 최종 결과는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의료사고가 높은 과는 기피과가 되었고 수련의를 뽑는 것이 어려워졌다. 결국 전문의를 구할 수 없어 인천 길병원에서 처음으로 소청과가 문을 닫는 사태를 시작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이대목동사건 당시 검찰과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에 모두가 우려하며 예견했던 일이 목전에 발생했다. 그렇게 시작된 기피과 문제를 군사정권이 시행했던 인원 증가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무지에 놀랄 뿐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자는 풀을 먹지 않고 남이 먹던 고기나 썩은 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먹지 않는 것이 아니고 못 먹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인원수를 뽑아도 10년을 일한 것을 불가피한 의료사고 소송 한 번에 다 날릴 수 있는 현재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기피과 충원은 불가능하다. 레지던트 시험 10수를 하더라도 기피과는 피해야 한다. 생존의 문제이기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정부는 원천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우선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과에 대한 법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다음으로 기피과가 아닌 소멸과에 대한 국가나 지자체에서 지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소멸과는 기피과와 별도로 인구감소로 인해 생존에 위협받는 산부인과와 소청과다. 응급의학과나 흉부외과처럼 의료사고 위험성이 높은 기피과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문제를 영국과 같은 기구를 두어 해결하는 방법 등을 강구해야 한다. 소멸과는 먹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정상적인 의대시스템에서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에서 주별로 치과의사를 뽑듯이 지자체 별로 필요한 인원만큼을 의대 외 정원으로 준공무원 형태로 뽑아서 월급을 주는 방법도 있다. 1주일에 한 명 출산 환자를 보고 지자체에서 월급을 받는다면 기피과는 워라밸을 꿈꾸는 의사들의 로망이 될 수도 있다. 기피과와 소멸과 문제를 단순히 인원수 증가로 대응하는 것은 풀을 먹지 않는 사자에게 소의 여물을 잔뜩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인기과에 인원이 몰리는 과잉 공급으로 되려 정상적인 의료계시스템에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계 미국 철학자 한나 아랜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이란 평범한 일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발생할 수 있다며 ‘악의 평범성’을 말했다. 특히 국가와 같은 권력기관이 행하면 더욱 큰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홀로코스트의 아이히만이다. 정부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불법적 요소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인이 구속되는 상황을 막지 못하며 지금 같은 지경을 만들었다. 의료사고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오로지 법적인 것에 의존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제 또 상대방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고수한다면 미래엔 더 많은 문제로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다.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깊이 있는 판단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