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시작되었다. 어쩐 일인지 올해는 개나리가 핀 것은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늦은 꽃샘추위와 잦은 비 때문에 벚꽃은 피다 말았다. 이제 목련도 피었다 지는 분위기다. 꽃도 피다만 탓인지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선거로 출근길뿐만 아니라 창밖에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로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한 달 이상 끌어온 의료분쟁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장기화될 모양새다.
영국 시인 앨리어트는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물론 그가 의도한 의미와는 다르지만 요즘 4월의 모습과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는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차갑고 딱딱한 대지를 뚫고 지상으로 나와야 하는 어린 새싹의 숙명적인 어려움을 보았다.
자연에서 봄인 3, 4월은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동물들이 동면에서 깨어나오며 생기가 돌아오는 때다. 반면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라 쉽지 않은 달이다.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고, 고3은 대학생이 되는 환경이 바뀌는 때이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새롭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때를 생각하면 시인의 눈에 보인 어린 새싹과 같이 잔인한 달일 수 있다. 4월경이면 뇌에 MRI를 찍어야 한다고 치아 교정 장치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하는 환자들이 생긴다. 신학기에 머리가 아파지며 신경과에서 MRI를 찍는 것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문제가 있었던 것은 보지 못했다. 결국 새 학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발생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두통을 야기한 탓이다. 이제 이런 잔인한 4월이 시작되었다.
사실 4월이 진짜 잔인한 이유는 달리 있다. 뿌리가 튼튼하여 겨우내 추위를 견뎌내고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새싹이 있는가 하면,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대지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생명들이 있다. 진정한 4월의 모습이다.
모래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이들이 바다까지 도달하고 성체로 살아남을 생존율이 1%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확률은 0.1%이다. 정자는 수억대 1의 경쟁으로 수정을 한다. 이렇듯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어렵고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것이 자연계의 법칙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자연이다. 자연에서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때가 4월이기에 진정 잔인한 달이다. 왕도마뱀에게 잡아먹히는 99마리의 희생으로 새끼거북 한 마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올라오지 못한 뿌리는 거름이 되어 다음 해엔 강한 새싹을 키우는 것이 자연이다. 이렇듯 헛된 희생이 없는 것 또한 자연이다.
이런 4월도 시간이 흐르면 안정의 5월이 온다. 우리나라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다. 계절도 추위는 완전히 사라지고 봄철의 향기 없는 꽃과는 달리 꽃들이 진한 향기를 품는다. 학교나 직장 등 사회적으로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사람 마음도 안정되는 때다. 자연은 4월에 희생을 통해 생명을 살리고 살아남은 생명을 5월에 성장을 시킨다. 사람들은 5월이 올 것이란 희망으로 4월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다. 자연에서 4월의 혼란은 한 달이 지나 5월 5일 어린이날이 될 때 즈음이면 모든 것이 자리를 잡고 혼란이 사라져왔다. 그렇듯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혼란들도 사라질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당연히 선거로 시끄러운 것은 선거일이 지나면 드라마틱하게 조용해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환자를 위해 의료사태도 정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좋은 방향으로 모두가 윈윈하는 모습으로 수습되고 정리되기를 바란다.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나 병원을 나선 전공의들이나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이나 모두가 심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생사가 오가는 응급환자나 수술 일정이 미루어진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의료진들은 환자들 곁으로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이나 전공의와 학생들의 가족들 또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의 시간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지금 같은 저항이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정부의 독자적인 행보는 거친 방법이었다. 협상과 타협이라는 좀 더 세련된 접근 방법이 과연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세월이 흐른 뒤에 갑진년 4월을 뒤돌아보았을 때, 매우 시끄럽고 혼란한 달이었다기보다는 그래도 잘 마무리되었다고 기억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