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천안문광장 한가운데 걸린 사진의 주인공은 마오쩌뚱(毛澤東)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주석으로 1949년 중국 근현대역사의 무대에 오른 그는 빈곤하고 낙후된 중국을 발전시키려 소련을 벤치마킹하고 모방해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나름 주체적인 ‘대약진운동(1958~1961)’이라는 이름으로 농업생산량 증대와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참새와 쥐를 잡고 농민들에게 전통방법으로 용광로(土法高爐)를 중국 전역에 설치하는 등의 허황된 내용들로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는 기록들을 보면, 이 사업기간 중 차질과 역효과로 인한 기근으로 중국 인구 4,500만 명이 아사(餓死)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믿어진다.
대약진운동의 심각한 패착으로 피폐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 중국인들이 동요하자,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출구전략이 필요했던 마오는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찬 인민들을 선동하고자 부르주아와 자본주의, 기존의 모든 권위들에 총구를 겨누는, 소위 20세기판 분서갱유로 일컫는 ‘문화대혁명(1966~1976)’이란 반문명적, 반인류적 사태를 일으킨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현실의 암울함이 극도로 깊어진 당시 중국인들의 정서는 혁명의식이라는 불꽃만 당겨주면 엄청나게 폭발할 휘발력을 품고 있었다. 문화대혁명은 그러한 사회의 기류를 이용한 소위 친위(親衛)쿠데타로 정의되며, 기존질서, 기득권은 물론 지식인과 전문가들을 무력으로 타도하는 무질서하고 참혹한 일련의 사건들, 예컨대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무고한 교육시스템과 과학부문에 대한 파괴행위 등이 10년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마오쩌뚱은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새로운 세력의 결집과 단체들의 결성을 지원하고 그들의 불법적 파괴행위들을 의도적으로 방관했다. 대표적으로 홍위병이라는 학생깡패조직의 결성을 사주한 것도 그의 지시였다. 중국역사의 정신적 유산인 공자의 묘를 파헤쳐 없애고, 묘비와 공자상도 도끼로 깨부수는 실로 어두운 시대였다. 이 사건에 대해 중국의 지식층과 세계 석학들은 마오쩌뚱의 어이없는 과오와 실패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총체적으로 비판하지만, 정작 중국은 현 체재의 시작에 대한 정체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가 한 일들에 대해 변화와 개혁의 업적을 강조하고 조명하며, 천안문광장에 그의 사진을 걸어둔다.
동양인의 정서를 파고드는 인상 깊은 작품들로 우리에게 익숙한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최고작으로 손꼽는 ‘인생(活着, Lifetimes, 1995)’은 이 시대를 섬세히 그린 영화다. 국공내전에서 반혁명진압운동,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을 살아내는 몰락한 지주의 아들 푸궤이(갈우 분)와 그의 아내 지아전(공리 분)의 지난한 삶을 그렸는데, 아들 요우칭은 학교에서 트럭에 깔려 세상을 떠나지만, 열병으로 귀가 먹었어도 무사히 잘 자란 딸 평샤를 성실한 사위 완얼시에게 시집보내는 행복한 시절을 맞는다.
시집간 평샤는 아기를 가지게 되고 만삭이 되어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지만, 푸궤이와 지아전과 완얼시는 병원에 졸업도 안한 학생으로 보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밖에 없는 것(문화대혁명 당시 전문지식인인 의사와 간호사는 반동 등으로 몰려 모두 비투회[인민재판]에 끌려감)이 불안하여, 비투회로 달려가 학문권위반동이라는 죄목을 크게 쓴 나무판을 목에 건, 교수급 산부인과 전문의인 ‘왕교수’를 끌고 와 펑샤의 분만을 돕게하려 한다. 사흘이나 굶어 몸을 가누지도 못한 왕교수는 병원 복도의자에 반쯤 누워있는데, 홍위병 초짜 학생의사들이 건강한 아들이 무사히 태어났다고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샤는 산후출혈의 응급상황을 맞는다. 그러나 조금 전 기운차리라고 푸궤이가 사다 준 만두를 먹은 왕교수는 급체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고, 안타깝게도 평샤는 결국 숨을 거둔다. 몇 분 안되는 장면들이지만 쓰러진 왕교수의 그 모습은 이 시대 우리 보건의료계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병 고치는 의사와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 외적을 막아내는 군인은 그들이 하는 일의 본질 때문에 공동체가 존중하게 해야 한다. 문화대혁명은 그것을 부정했었기 때문에 중국의 현대화를 수십 년 뒷걸음질 치게 했다는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
필자보다 지혜롭고 용맹하여 예전부터 존경하는 후배가 한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를 빨리 보건부와 복지부로 나눠서 일하게 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