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무너진 사회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사건은 상식을 넘어 상상을 초월한 사건이었다. 치과신문에 투고할 글을 쓰던 때, 갑자기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TV 속보를 보라는 내용이었다. 비상계엄이 발표되었다는 말에 만우절도 아니고 장난 전화도 적당히 하라고 말하고, TV를 보니 진짜로 비상계엄을 발표하고 있었다. 어찌 2024년인 지금 저런 방송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 이유가 있다. 1981년 고3 시절에 그 친구와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때였다. 신군부로부터 7월 30일 밤 7시경에 본고사 폐지 발표를 같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3개월 앞두고 입시 제도를 강제로 바꾼 긴급조치였다. 그런 황당한 사태를 같이 겪은 친구였기에 비상계엄 뉴스를 보자마자 바로 전화한 것이었다. TV를 보며 43년 전 후진국 군사정권 시절에 느꼈던 참담함을 다시 느끼고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국회에 진입하는 군인의 모습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을 연상하게 하여 만감이 교차했다.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국회 비상계엄 해지 결의와 발표까지 보고 참담함에 겨우 눈을 붙이고 출근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프리카도 아니고 어떻게 2024년에 한국에서 비상계엄을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떻게 대통령이 상식 밖의 일을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벼룩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 것인가. 환율은 1,450원에 육박하고, 국제신용도는 하락위기에 놓였고, 외교는 중단되었고, 주가는 폭락하고, 무정부 상태에 이르렀다. 그나마 위기에 강한 높은 시민의식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인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어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추하기 그지없다.
국회 군사진입을 지휘한 707 단장의 길거리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의 참된 군인으로서의 진정성에 공감하였고, 대한민국 최정예 군인이 그런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 믿기 어려운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1년이 지나면 국민은 모두 잊어버리고 다시 찍어준다고 말하는 정치인의 주장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을 본인이 직접 보여주었기에 슬프다. 탄핵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도 자유의지에 의한 행사권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연쇄살인범이 살인하는 것도 자유의지라고 말하는 괘변처럼 들리기에 슬프다.
43년 만에 또 충격적인 ‘비상사태’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작금의 상황이 슬프다. 그나마 명령으로 출동한 군인들이 최대한 자제하려는 성숙한 모습, 군인을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의 모습, 국회를 차단하라는 명령 중에도 국회의원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들어갈 수 있도록 여지를 준 의식 있는 경찰들의 모습, 담을 넘는 국회의장의 모습, 이런 모습들이 모두 모여 계엄해제 의결이 가능했다. 시민, 군인, 경찰, 국회의원, 보좌관, 기자 등 그날 그곳에 있던 모든 개개인들이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성숙한 모습에 희망이 보여서 다행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다. 한국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모습을 TV로 보는 순간에 다른 방송에서는 계엄에 대한 방송을 하고 있다. 이 두 사건 모두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 때문에 머릿속에서 현타에 대한 충돌이 생기고 있다. 그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글을 썼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자행된 5·18 유혈 폭력에 대한 반성을 하는 시점에서 다시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것은 시간적으로는 아이러니하고 실체적으로는 참담하다.
지난주는 계엄이 선포되었고, 지금은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고 있다. 과거에 군사정권의 유혈사건이 있었듯이 불과 1주일 전에 계엄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늘 그랬듯이 해결해야 하는 것은 저지른 자가 아닌 당한 국민들의 몫이다. 임진왜란 때도 구한말 동학혁명 때도 역사적으로 기득권은 자기 살기 위해서 도망가고 국민들이 희생으로 해결하였다. 이번 역시 또 국민의 희생으로 해결될 것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