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MBTI 성격유형검사’ 상 ENTJ 성향의 성장지향형 인간이다.
이런 성향인 필자가 13년 전 소아치과를 개원하고 나서 인생 처음으로 벽에 부딪히고 한계를 느껴 좌절한 부분이 바로 병원 내 직원 관리였다.
이전까지 수직적 상하 관계에서 누군가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다가 누군가의 위에서 일을 해본 게 처음이다 보니 그랬을까? 믿고 마음을 줬던 직원들이 여러 이유로 수차례 발등에 도끼를 찍어 대다 보니, 점차 초심과 다르게 마음이 닫히고 직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딱딱해져 갔다. 인간관계라는 게 늘 그렇듯 마음을 주지 않으니 그들도 나를 그저 봉급 주는 직장 상사,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흠 잡으며 직원 간 동질감을 쌓을 수 있는 소재 거리, 잘났으니 고생하고 힘든 것도 당연해 보이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는 듯했다.
더 이상 이런 발전 없는 인간관계로 엮인 내 병원을 참을 수가 없었다. 희생이 따른다 해도 성장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병원 내 실장직을 없애고, 진료 스탭이 담당 환자의 상담과 진료를 모두 전담하는 방법으로 시스템을 바꾸기 시작했다. 데스크에는 무인접수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전화기는 무선으로 전환해 들고 다니며 받아 데스크를 비워도 로테이션이 가능하게 세팅했다. 물론 진료실에서 어시스트만 하던 스탭들은 당장 까다로운 보호자 관리와 상담을 해야 하니 두려움과 걱정에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기획과 구성을 잘하는 필자가 그들을 도와야 할 때였다.
청구를 잘 모르는 직원들을 위해 청구는 직접하고, 병원 매출과 관계없이 예약을 적게 잡아 할 수 있겠다고 할 때까지 관련 업무를 카피할 수 있도록 직접 상담과 매니지 시범을 보였다. 치과 일이 원래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1차 기관인 의원급 의 진료영역이 그렇게 넓지 않다는 의미다), 직원들은 금세 나를 카피해 환자 매니지를 하고 상담과 설명도 곧잘 하기 시작했다. 본인 담당 환자의 세세한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상호 대화도 많이 하다 보니, 원장에 대한 신뢰도 깊어지고 임상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는 듯했다. ‘이제 이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앞으로는 발등 찍힐 일이 없겠구나’ 할 때였다.
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비교와 경쟁이었다.
스탭 둘을 두고 담당제 시스템을 구축할 때, 두 명의 연차 차이가 꽤 났던 터였다. 당연히 업무적 부분에서 더 앞서 나가는 스탭이 있었는데, 미처 저년차 스탭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업무적 성과에서 뒤처지자 위축되고 실수가 잦아졌다. 자신감을 찾게끔 상담 및 동선 관리 매뉴얼을 짜줬지만, 이미 작아진 마음은 퇴사로 향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직원 한 명이 다시 퇴사 의사를 비쳤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에 휩싸였다. 과연 직원 한 명으로 병원을 돌리는 게 가능할까? 전반적인 서비스 질 저하로 컴플레인에 시달리다 망하는 건 아닐까? 그때 남은 직원의 말 한마디가 힘을 줬다. “원장님을 믿으니 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보죠 뭐!”. 힘들지만 시간을 들여 나눴던 대화, 직원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순간들이 신뢰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직원 한 명과 일하기 시작한 지 벌써 7년째다. 그 사이 인력의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해 병원 내 업무를 필자가 더 많이 담당하는 구성으로 바꾸고, 최대한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잡무를 도와주는 보조인력을 따로 구인했다. 동선을 짧게 구성하고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전자차트를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장비를 대폭 세팅했고, 이동식 장비를 사용해 효율적 진료를 이끌어 내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병원 내 모든 업무, 잡무, 진료를 원장이 주도하는 것이었다. 실수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오롯이 필자가 책임지려면 그게 맞는 일이었다. 직원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병원 시스템도 안정화되었고, 소아 인구 감소로 인한 환자 수 감소 덕(?)에 업무도, 부담도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한 명 이상의 직원이 필요치 않다.
혹시 히어로를 좋아하는가? 필자는 수많은 히어로 중 아이언맨을 가장 좋아한다. 아니, 아이언맨처럼 되고 싶다. 초능력 없이도 아이언맨 수트라는 기술적인 도움으로 초 인간적 활동을 하는 그가 경이롭다. 또 그의 곁에서 수행비서 역할을 해주는 인공지능 자비스! 아이언맨과 자비스를 보면 그가 못해낼 것은 없어 보였다. 최강의 팀워크를 가진 기술적 천재의 히어로 활동. 치과계에도 각종 전자기술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니 우리도 아이언맨 수트는 구비할 수 있을 것이요, 모자람이 있다면 자비스 같은 찰떡궁합 비서가 아닐까? 자비스 같은 직원을 구하기 위한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도 수트를 입고 출동 준비를 마친다.
마지막으로 필자처럼 아이언맨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 아이언맨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외롭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마음인 듯하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내 진료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독립진료의 어려운 부분을 기계적 보완으로 극복하기 위한 꾸준한 탐구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 길은 외롭다. 그리고 힘들다.
그러나 믿어보자. 나는 잘하고 있고 더 이상은 힘들다 싶을 때쯤엔 항상 자비스 같은 존재가 도움을 줘 현재까지 잘 버텨왔을 테니. 아이언맨이 될 수 있는 그날까지 용기와 ‘존버’ 정신이 필요한 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