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과 손기정 옹의 공통점은 한국인이지만 외국 국적으로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딴 인물이다. 두 사람의 차이라면 손기정 옹은 타의에 의하여 국적을 상실하였으나 빅토르 안은 자의에 의하여 국적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빅토르 안과 유승준은 자의에 의하여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한 사람이다. 그런데 빅토르 안의 국적상실은 유승준과는 많이 다르다. 빅토르 안은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반면 유승준은 국민정서에 반하여 있다.
그럼 이 세 사람을 보는 국민들의 정서가 다른 이유를 살펴보자.
빅토르 안의 한국 이름은 안현수이다. 벤쿠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많은 불합리성과 불운을 겪으면서 본인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국적을 바꾸며 러시아로 귀화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고 한국빙상연맹이 잘못했음을 소치올림픽에서 실력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한 신문에서는 ‘빅토르 안이 러시아 국기를 달고 금메달을 딴 것은 마이클 조단이 쿠바 국기를 달고 경기하여 우승한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소치에서 비록 러시아 국기를 달고 우승하였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그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부 신문이나 매체에서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과 특권층의 부조리에 대한 반감이 원인이라고 분석하였다. 즉 기존의 불합리한 체제에 대응을 하고 멋있게 복수해준 것에 대한 대리만족 같은 느낌이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필자도 그런 이유에 동감한다. 그런데 빅로르 안이 시상대에 오르고 러시아 국가가 울렸을 것을 상상하면 얼마 전에 돌아가신 손기정 선수의 모습이 연상된다.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하여 진행한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하고 시상대에 올라서서 일본 국가가 연주될 때 고개를 숙인 사진이 떠오른다. 손기정 옹의 상황은 조국인 대한제국의 무력함과 침략국인 일본제국주의의 힘에 의하여 발생된 것으로 한 개인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당신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셨다. 빅토르 안도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시상대에 서고 러시아 국가가 울렸다. 그도 조국의 구조적인 부조리와 정치적인 파벌과 기득권들의 힘에 의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였다. 필자의 눈에는 망국인 대한제국의 손기정 옹이나 사회의 부조리와 정치적인 파벌 속에 희생이 된 빅토르 안이나 같은 처지로 보인다. 비록 그가 스스로 러시아 국가를 선택하였기는 하지만 어린 그에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한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각계각층에 만연한 기득권층의 횡포와 파벌주의는 모두가 인식하며 반드시 없어져야 할 부분이다.
이번에 나타난 체육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의 파벌싸움, 심지어 교수채용에서 자기 사람 심기 관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국립대 교수 공채에 원서를 내려는 지원자에게 자기 사람을 뽑기로 정해졌으니 원서도 내지 말라고 면전에다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런 식의 망국적인 사회풍토에 빅토르 안이 정면으로 경종을 울려주었다. 비록 그가 손기정 옹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은 자신의 선택의 옳음과 불합리한 세력에 대한 응징의 의미로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이토히로부미의 가슴에 총탄을 쏘아 제국주의 일본의 폐륜전쟁을 응징한 안중근 의사의 통쾌함마저 보였다. 필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고난을 이기고 자신의 길을 간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대부분 사람들은 비열한 기득권과 파벌 속에서 상처받고 분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빅토르 안이 유승준과 다르다. 유승준은 가장 잘 나갈 때에 평소에 자신이 하던 말과 상반된 행동으로 국적을 포기하였다. 누가보아도 이기적이다. 그래서 그를 국민정서가 용서하지 않는다. 국민정서는 빅토르 안을 비난하기보다는 어린 그를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제 우리 사회도 자정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