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소치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을 본 사람들이라면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심판들의 점수 채점은 정당성을 의심받았고 수많은 의혹과 불신을 유발시키며 그녀는 은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17살 선수는 기량에 의심을 받으며 금메달을 받았다. 일련의 사건을 표면적으로 보면 은메달을 받은 김연아 선수가 억울한 피해자이고 금메달을 받은 러시아 선수가 행운아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우선 김연아 선수를 생각해보자. 김연아 선수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선수이다. 그녀의 기량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의미는 2연패라는 것 외에는 금메달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의미 그 이상 도 아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불공정 판정 시비에 엮이게 되어 더욱 유명해지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극단적으로 보았다.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게 하였다. 게다가 억울함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던 모습은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며 더욱 감동을 주었다. 마치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하는 박지성 선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연아 선수는 금메달 이상의 가치를 얻었다. 그것은 이제 20대의 젊은이에게는 인생이라는 긴 행로에서 두고두고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다.
반면 금메달을 받은 러시아의 17세 선수를 생각해보자. 그녀는 본의 아니게 실력과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 사실이 지금은 나이가 어려서 잘 납득되지 않고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어리둥절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태를 인식하고는 본인도 의도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실패를 겪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녀 또한 실패를 경험할 것이고 그때마다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심리적인 부담감을 극복해야 한다. 반면 심리적인 압박은 점점 커지게 되고 17세 나이의 어린 청소년이 극복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가 진정한 챔피언으로 탄생하고 발전하는 것은 어쩌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일보다도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금메달을 딴 그녀가 은메달의 김연아 선수보다 피해자일 수 있다. 그녀가 이제 17살인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이권에 따라서 본인의 의지와 실력에 상관없이 휘둘렸다. 어른들의 정치적인 논리가 성숙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평생 극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가하지 않았나하는 우려가 든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결국 삶 자체가 망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앞으로 그녀가 실수할 때마다 받아야 할 멸시의 눈초리를 심리적으로 극복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녀가 김연아 선수 이상의 기량을 보이며 한 번도 실수를 안 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선수란 수많은 실패를 극복하면서 탄생되는 것이고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피겨스케이팅은 짧은 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100년 전부터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 세계 최정상급의 예술성을 지닌 나라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발레를 통하여 춤의 예술성을 보는 탁월한 눈을 지녔을 것이다. 그런 나라의 사람들이 과연 김연아 선수와 러시아 선수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예술성을 무시하고 우기는 자신들이 더욱 창피했을 것이다. 예술의 나라라는 자존심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연아 선수의 의연함이 그들의 최소한의 창피함을 감추어 주었다. 진정 최고 경지의 선수만이 보일 수 있는 허세가 아닌 진정성이다. 그녀의 앞날에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란다. 더불어 어린 러시아 선수가 너무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훌륭한 선수가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