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어린이 놀이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이다. 당연히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다. 그럼 여기서 어린이란 그 아파트 주민인 어린이만을 지칭하는 것인가? 얼마 전 인천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파트 주민회장이 다른 아파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논다는 이유로 도둑으로 몰고 경찰서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이 현실인 우리 사회가 안타깝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우리 사회는 어처구니없는 것을 넘어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가 이미 윤리와 도덕이 무너진 것을 알았지만 이번 사건은 또 다른 전환점을 시사하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이번 사건은 어른이 스스로 어른다움을 포기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어른이 사라지면서 초래될 세상은 한마디로 암담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사건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아이다움이 사라졌다. 80년대 초반, 담배 피우는 청소년을 훈계하던 어른들을 법이 단순히 쌍방과실로 처리하면서 아이다움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무능한 법이 윤리를 넘어서면서 우리 사회에서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이들이 어린이 놀
어제부터 비가 내린다. 그제가 입동이었으니 겨울비라 해야 하건만 느낌은 아직도 겨울비보다는 가을비 같은 정경이다. 겨울비라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스산한 바람을 느끼는 것이 어울릴듯하지만 아직도 아파트 창밖에 보이는 나무들은 단풍이 절정이다. 입동을 기준으로 하루 차이로 가을비와 겨울비가 갈렸지만, 기후온난화 탓에 아직도 늦 모기가 기성을 부려 하루에 한두 마리를 잡다 보니 겨울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속담에 ‘봄비는 일비고, 여름는 잠비고, 가을비는 떡비요, 겨울비는 술비다’라는 말이 있다. 농경시대에 봄에 비가 오면 밭일을 가야 하고, 여름 장대비에는 일을 못나가 집에서 잠이나 자고, 가을에는 먹을 것이 많으니 떡을 해 먹고, 겨울에는 술 한 잔 걸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과거 조선시대에 이처럼 떡을 해 먹고 술을 해 먹을 정도로 넉넉하지 않았다. 드물게 풍년이든 해라면 모를까 대부분은 봄에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고 가을에는 탐관오리의 과도한 세금에 견디기 어려웠다. 조선 초기 문인인 이희보는 ‘동우탄(冬雨凄)’에서 겨울비는 매정하다고 하였다. 쌀이 없어서 밥하는 불이 꺼져 있고, 먹을 것이 없어서 늙은 아내는 밤새 통곡하고, 아침에 도토리라도
살다 보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들이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들이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수확을 해야 한다. 가장은 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 선생님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운다. 의사는 치료를 하고 환자는 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나중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은 농부는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다. 이처럼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항상 때가 있다. 농부처럼 그때에 그 일을 해야만 한다. 해야 할 일을 행한 후에 결과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이것을 운명이라 한다. 반면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는 운명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농부가 밭을 가는 데 큰 바위가 나오듯이 삶에는 여기저기 장해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장해를 극복하고 수행하는 자와 좌절하고 멈추는 자로 나뉜다. 장해를 극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 되고 멈춘 사람은 보통 사람이다. 물론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순조로운 사람이 있는 반면 보통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을 하여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 대선 후보가 “요즘 청년들이 불공평한 생존보다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다”라 했다. 인간 입장에서 생각하면 맞는 말일 수도 있으나, 자연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이다. 공평함이란 자연의 법칙이지 인간의 법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평함은 비가 내릴 때 차별 없이 내림을 말한다. 공기가 악인과 선인을 구별 없이 주어지는 것을 공평이라 한다. 불공평은 공평하게 내린 비를 독사가 마시고 독을 만들고 약초는 약을 만든 것처럼 차별이 생김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불공평마저도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이 자연의 공평함이다. 산은 높은 곳과 낮은 곳이라는 불공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공평이 없다면 산도 없다. 공평함과 불공평함 역시 자연의 법칙일 뿐이다. 이것을 요즘 청년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자연계에는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는 秩序(질서)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차례와 순서가 있을 뿐이다. 여름이 덥다고 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일이 없다. 공평이란 차례와 순서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법칙으로는 모두가 다 잘사는 이상세계는 없다. 다만 인간은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만족하면 개개인이 잘 살 수 있다고 성현들이 가르쳐 주었
아주 사소한 즐거움이 몇 개 있다. 문방구에 가서 이런저런 필기구나 학용품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철물점 공구코너에서 여러 가지 공구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책상 앞에 앉아 24가지 색연필을 보고 있으면 그냥 즐겁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A4용지 백지나 하얀 여백만 있는 도화지를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열고 빈 여백을 마주하면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칼럼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빈 여백 모니터를 접하면 늘 두 가지 감정이 충돌한다. 우선 백지 여백은 무엇이든 적을 수 있고 어떤 것이든 그릴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주기 때문인지 기대감을 품은 잔잔한 기쁨과 편안함이 있다. 반면,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주제를 정하고 글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강박적인 긴장감이 생긴다. 빈 여백의 백지를 마주하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면 두 감정이 가장 강하게 충돌한다. 처음 제목을 정하면 두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결론을 등대 삼아 글이 전개된다. 오늘도 빈 여백을 마주하고 두 감정에 휩싸이다가 문득 백지 여백이 주는 즐거움을 주제로 잡았다. 생각해보면 글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
매주 수요일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다. 양손 가득 들고 나가기도 하고 명절 때는 두 번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두 사람 사는 집에서 무슨 재활용 쓰레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가 하는 생각이다. 왠지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듯한 죄책감이 들 때가 많다. 가급적 일회용 물품을 자제하며 쓰레기를 줄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두 손 가득 집어도 부족한 경우에는 마치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파라사이트라는 생각마저 든다. 코로나 이후에 더 많은 재활용 쓰레기가 나오는 듯하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해보면 제일 많은 것이 비닐, 플라스틱, 종이다. 비닐과 플라스틱은 석유화학 제품이고 종이는 나무로 만든다. 결국 나무는 줄어들고 석유사용량은 증가되는 것으로 환경파괴의 주범 역할을 한다. 필자가 재활용 분리수거를 처음 접한 것은 일본 유학 시절이었다. 일본은 80년대에 이미 분리수거를 시행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요일을 정하고 모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고 요일 별로 버리는 품목이 달라서 늘 신경 써야 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귀국하고 몇 년 지나서 우리나라도 아파트서부터 분리수거를 시행했는데 초창기에는 주민들이 분리수거 해놓으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1982년 4월 발생한 ‘우순경사건’이다. 어느 시골 순경이 무기고에서 총과 수류탄을 탈취해 하룻밤 동안 62명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사건으로, 당시 기네스북에 오른 역대급 사건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 절반 정도인 36.1명이 하루에 죽고 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거나 기억하지 않는다. 고의적 자해인 자살이다. 최근 통계청 보고에 의하면 2020년 자살률(인구 10만명당)이 25.7명으로 한번을 제외하고 8년 동안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OECD 평균인 10.9명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한 국가나 사회에서 자살률은 그 조직이 지닌 내부적인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 중에 하나다.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세대별 자살률이 10대(6.5명), 20대(21.7명), 30대(27.1명), 40대(29.2명), 50대(30.5명), 60대(30.1명), 70대(38.8명), 80세 이상(62.6명)으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증가하였다. 이는 경제적으로 로드가 많아지는 40~50대와 경제활동을 상실한 세대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중요한 요인으로 유추된다. 남녀 간 성별 차이는 남자(35.5명)
추석 연휴에 드라마 한 편을 보았다. 넷플릭스에서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드라마라서 선택했지만, 최근 드라마들이 필자와 철학이 안맞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로 부도덕한 내용이 많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상에서 매 순간 직면하는 사람들 내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오랜만에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다. 손에 닿을 듯이 눈앞에 걸어놓은 수백억원 돈뭉치는 게임 참가자들의 잠재돼있던 욕망과 욕심을 증폭시켰다. 탐욕이 도덕과 양심을 이기는 순간에 갈등하는 인간적인 이도 있었다. 종교와 위선 속에 감춰져 있던 탐욕을 표출하는 이도 있었다. 절대적으로 악한 이도 있었다. 일반인은 늘 욕심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거나 지나쳐 버리게 된다. 작가는 ‘아이들 게임’이라는 형태를 통해 실수하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마음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1등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처형하는 장면은 잔혹했지만, 현실사회에서 역시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어떤 게임이 될지, 어떤 규칙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선택하는 것 역시
코로나시대에 들어오면서 디지털시대는 더욱 빨리 가속화되었다. 학교는 비대면 인터넷 강의로 전환되었고 모임은 최대한 줄어들었다. 대화와 모임은 SNS로 진행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학회활동 또한 줌으로 대치되었고 오프라인 모임은 모두 사라졌다. 타인과 대화가 소리보다는 문자나 이모티콘으로 바뀌었다. 비대면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사람 관계가 유지는 되는데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낀다. 사람 간에 관계가 유지되는데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머리로 기억하는 추억과 몸으로 기억하는 따스함, 그리고 가슴으로 기억하는 정이다. 비대면 디지털시대에서 머릿속 추억은 유지되지만 악수하며 느끼는 아날로그적 따스함과 가슴에 느끼는 정이 사라졌다. 시끄러운 맥주집에서 큰소리로 대화하며 상대 목소리에 가까이 귀 기울이며 따스함을 느끼고 잔을 부딪치며 정이 스몄다. 그러나 코로나로 일상에서 대면이 줄어들면서 그만큼 상대적으로 외로워지고 고독하게 됐다. 모두에게 조금씩 ‘코로나 블루’가 스며들었고 이젠 스스로 자신의 감정이 우울해지는지 여부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의욕이 없어지거나 즐겨 하던 일이 귀찮아지거나 혹은 감정적으로 예민해진다면 코로나 블루가 스며들고 있을 가능성이
지난달 미국이 아프간에서 완전 철수하였다. 아프간 전쟁을 실패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문맹률이라 평가되었다. 훈련병 5% 정도만이 초등학교 3학년 정도 학력 수준이라서 정예화된 군인을 배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비교하면 한국전쟁 이후에 획기적인 발전을 한 우리나라는 높은 교육열로 문맹률이 없는 것이 큰 요인이었다. 우리 교육열은 높았다는 것보다 매우 강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타인을 누르고 자신만 이기길 바라는 경쟁의 교육열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은 두 가지의 기능이 있다. 한 개인을 독립적으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직업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 사회 속에서 공동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기는 교육열은 지식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도덕과 윤리는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패해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요즘 TV를 보다 보면 차마 내용을 끝까지 보기 어려워 채널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층간소음으로 찾아온 이웃에게 손도끼를 휘두르고, 고등학생은 60세가 넘은 노인에게 담배 셔틀을 해주지 않는다고 꽃나무로 때렸다. 부모를 대신해 길러준 할머니를 손자 둘이 공모해 시해하였고, 20
수술실에 CCTV 설치 의무화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어 2년간 유예되었다.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에 환자를 방치해 발생한 사망사건이 빌미가 되어 만들어진 법안이다. 늘 그렇듯이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고 대다수가 그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전체를 훼손하는 법안들이 만들어지는 것 중에 하나가 될듯하다. 어떤 안건이 되었든지 중요한 전제 조건들이 있다. 수술실 CCTV의 목적은 환자를 방치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막는 기능이다.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겠으니 의사의 행동을 직접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을 만든 사람들은 의료인으로서 자질이 안 된 사람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수술하는 의사 중에서 그런 나쁜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이며, 또 그런 나쁜 의사라면 CCTV가 있다고 변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천성은 변하지 않으니 원래 그런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바꾸지 못한다. 보통 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에 대해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 법이 환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심지어 위험하다고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이 법의 탄생에 사람이 사람을 수술한다는 전제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술하는 의사
‘모라토리엄’이란 국가가 대외채무를 이행할 능력이 안 돼서 지불유예 하는 상황을 말한다. 한마디로 “지금은 줄 능력이 없으니 나중에 돈 생기면 줄게”이다. 이런 모라토리엄이란 용어를 심리학자 에릭슨은 청소년들이 시행착오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모라토리엄 인간’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청소년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잘못을 수용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고 사회적 책임을 질 나이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유예기간을 기대하거나 계속해서 청춘을 유지하려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면서 성숙을 외면한 어른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증가하는 이유는 최근 교육환경이 독립심을 키워주지 못하는 데 있다. 부모 밑에서 편하게 놀고먹는 것이 가능하다 보니 스스로 독립해 고생하려는 의지가 사라졌다. 부모 또한 자식이 고생할 것을 원천 차단하다 보니 이런 성숙하지 못한 성인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부모다. 청소년들은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하는데 요즘 우리 부모들은 청소년들이 경험해야 하는 시행착오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스스로 경험을 통해 성숙할 기회를 박탈한다. 대학
어제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나가려는데 스마트폰이 없었다. 첫 번째로 당황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대체휴일로 평소와 달리 빈자리가 많아서 앉아오다가 옆자리에 놓고 내린 모양이었다. 일단 출구 옆 역무원에게 이야기하니 내린 위치를 확인하고 오라고 하였다. 다녀오니 어느 방향으로 가는 차였냐고 묻는다. 강변에서 왕십리 방향이라고 답하니 자신은 2호선이 아닌 7호선 역무원이라고 2호선에 가서 말하라고 하였다. 두 번째로 당황한 순간이다. 2호선 역무소를 찾다가 시간이 많이 경과되어 더 이상 어느 열차인지 아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포기하고 분실 폰에 전화를 걸려는데 공중전화가 없다. 일단 출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병원 연구실에서 직원에게 휴대폰을 빌려서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병원 전화기는 거의 구내용이고 외부용이 필요하면 별도로 신청해야 하는데 무제한 통화 스마트폰이 있으니 별로 필요성을 못 느껴서 신청하지 않은 탓이다. 우선 분실 폰에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누군가 주워서 돌려줄 의사가 없다는 부정적 생각이 들었다. 일단 분실 폰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통신사에 전화해 발신금지로 바꾸고,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위치 추적과 기
오랜만에 내원한 환자에 인사를 건네고 보니 팔뚝 전체를 휘감은 타투가 눈에 띄었다. 최근 문신한 환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작은 것들은 많이 보아왔으나 팔 전체를 휘감은 것을 보니 예전에 보았던 얌전한 환자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최근 들어 타투가 젊은 층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팔다리 혹은 전신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타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접하다 보니 조금은 담담해졌다. 그러나 필자처럼 타투가 범죄자들의 전용물처럼 생각되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비치기는 쉽지 않다. 영화에서조차 조폭이나 폭력배를 나타낼 때 흔히 타투를 보여주는 기법을 사용하던 시대였다. 비록 시간이 옳고 그름조차 변화시키지만, 과거를 경험한 사람들 기억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예전에는 군대 신체검사에서 문신을 하면 범죄가능자로 분류돼 면제되었으나 올해부터 문신검사 자체가 없어졌다.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타투는 역사적으로 지역에 따라 의미와 목적이 달랐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부족 간 전투에서 강하게 보이려는 목적이 강했고, 일부 민족에서는 신분적 지위를 표시하는 데 사용했다. 중국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복날 무더위가 한창이다. 이 더운 때 올림픽을 하는 선수들도 고생이다. 이때쯤이면 도쿄는 70% 이상 습도에 고온으로 거리에 사람조차 잘 다니지 않는다. 올림픽 축구 경기를 보면서 타국 자책골에 대해 고맙다는 자막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어의가 없었고 한심함을 넘어 심각하게 느껴졌다. 비록 상대편으로 경기는 하지만 같은 선수로서 감정적인 안타까움을 공유하지 못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전혀 깔려있지 않은 자막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배려심 없는 자막을 쓴 사람이 20~30대일 것으로 유추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MZ세대로 불리는 그들은 1등을 강요받고 자신만 잘나면 된다고 배운 세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무심코 자신이 늘 하던 대로 했을 것이며 그것이 왜 심각한 문제인지 몰랐을 것이다. 결코 필자가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걱정할 뿐이다. 필자도 그들 나이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우선 하루아침에 나라가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유학하던 30대 중반에 IMF로 인해 생활비를 받지 못하고 살림과 자동차를 팔아서 근근이 버틴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 전 대통령이 이제 선진국이라 했지만, 필자는 믿지 않는다.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