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현충일에 광주 포충사 고경명선생의 대종가를 참배하였다. 400년을 장손 종가로 이어온 대종가의 모습은 청아하고 고결하였다. 임진왜란시절 6천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 칠백의총의 조헌 의병장을 돕다가 금산에서 3대가 전사하였다. 대종가의 참배 후 돌아오는 길에 신안군 여교사 성폭행사건을 들었다. 사건 내용을 접하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 땅을 위하여 피를 흘리고 죽어갔고, 누군가는 그들의 피를 이용하여 사욕을 채우는 모순성에 대한 화두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이런 역사의 모순성이 현충일에 다시 필자를 아프게 한다. 이 사건을 조금 분석해 보면 단순한 성폭행 사건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첫 번째는 단독범이 아닌 단체 범행이고 사전공모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다 한 명의 미치광이를 만난 우연적 사건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3명이 모두 미치광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들 의식 속에서 이미 여선생을 선생으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는 집단적 의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그들의 공모로 행하여 진 사건이라면 처음이 아닌 반복된 경험 속에서 익숙하게 시행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사건의 팩트 상 피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에는 17세기의 이탈리아 화가 카를로 마라타가 그린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젤’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는 비너스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그려져 있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는 17세기 스페인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가 그린 ‘엄마 리브가와 짜고 이삭의 축복을 받는 야곱’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리고 이 그림에는 험상 궂고 고집이 세어 보이는 중년 후반대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림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여인이 리브가이다. 이 두 그림 속의 리브가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인이다. 아브라함이 백 살에 얻은 자식 이삭의 아내가 리브가이다. 아브라함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위하여 당대 최고의 여인을 물색하였고 그 임무를 맡은 자가 엘리에젤이었다. 그는 어느 우물가에서 순수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리브가를 처음 만났다. 그때의 장면이 마라타가의 작품이다. 리브가는 장남 에서와 차남 야곱을 낳았지만 야곱을 편애하여 급기야는 이삭의 모든 유산을 차남에게 주려는 나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노쇠하여 눈이 보이지 않는 이삭을 속이기 위하여 야곱을 에서로 변장 시키고는 유산을 상속 받게 하였다. 그때의 장면이 리베라의 그림이다.
얼마 전 기사에서 접한, 교정치료 환자로부터 진료거부로 고발당한 치과의사의 사연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비록 필자의 사건은 아니지만 유사한 일들을 경험한 동병상련의 감정인지 글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내용은 환자의 치아에 브라켓을 처음 붙였는데 아팠다고 불편을 토로하며 장치를 모두 철거하기를 강하게 요구하여 환자가 원하는 대로 전체 장치를 제거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는 다시 장치를 붙여줄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교정의사는 못내 환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 교정장치를 장착하면서 환자의 불만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런 사건의 반복으로 원장은 다른 치과로 전원을 물어보았고 환자는 그것을 진료거부로 고발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몇 가지 생각할 부분이 있다. 첫 번째가 브라켓을 붙였는데 환자가 아팠다고 화를 내며 장치를 모두 제거해달라고 주장했다는 부분이다. 환자는 통상 치과치료는 아프다는 것을 전제로 진료를 받으러 오기 때문에 통증에 대하여서는 생각보다 관대하다. 즉 어지간한 통증은 잘 참는다. 특히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교정치료에서 브라켓을 붙이는 술식은 통증을 동반하는 술식이 아니다. 생각해볼
필자가 치과의사라서 그런지 ‘몽니’란 단어를 들으면 왠지 치아 중의 하나처럼 느껴진다. 아픈 사랑니보다 조금 더 아픈 치아 같은 느낌이다. 몽니는 사전에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 부리는 성질’이라고 정의되어 있으며 순수한 우리말이고 준말은 ‘몽’이다. ‘몽니’라는 말에는 투정, 심술, 훼방, 트집, 욕심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몽니’는 ‘몽을 부리는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강자의 용어가 아니고 약자의 용어이다. ‘갑질’이 강자의 용어라면 ‘몽니’는 약자의 용어라고 하겠다. 약자의 처지에서 강자에게 정면으로 대들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화가 나서 강자가 하는 일에 슬쩍 초치는 행위가 몽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상대방이 그다지 잘못한 일도 없는데 공연히 트집을 잡아 심술을 부리는 등 괴롭히려 드는 사람들의 행동에 사용하기도 한다. 아침 출근길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뒤에서 시끄럽다. 젊은 여성은 빨리 내려가려는데 앞 노인이 가운데를 막고 서서 조금 먼저 지나가겠다고 하자 일부러 비켜주지 않아서 시끄러웠다. 결국 젊은 여성은 노인을 피하여 내려갔고 이에 노인은 자랑스러운 듯이 일부러 비켜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였다
한 어머니가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상담하러 왔다. “어머니, 어떤 일로 병원에 내원하셨는지요?”라는 질문에 “아이가 나처럼 턱이 나오면서 턱관절이 아플까 염려되어서 왔습니다”라고 어머니가 답변하였다. 어머니 얼굴을 보니 약간 역삼각형에 갸름하면서 턱 끝이 발달하였지만 완전한 주걱턱 얼굴은 아니었다. 몇 가지 질문에서 어머니는 오랫동안 턱관절 질환을 앓아왔으며, 그 원인이 주걱턱형의 턱 끝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얼굴을 닮아가는 딸을 보니 나중에 본인처럼 턱관절로 고생을 할 것이 염려되어 내원을 하였다는 요지였다. 이에 필자가 얼굴형과 턱관절과 무관함을 피력하고 턱관절이 불편하면 치료를 받으라고 설명하자 무척이나 실망하는 눈치였다. 설명 후에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 현재로는 기우이시니 전혀 걱정을 마시고 다른 것은 없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어머니는 “그러면 됐습니다!”라고 잘라서 답변하였다. “따님의 상하악 치아가 조금씩 틀어져 있는데도 괜찮습니까?”라고 필자가 의아함에 재차 반문하자 “이는 전혀 상관없습니다!”라는 단호한 대답을 들었다. 교정을 업으로 삼고 사는 필자에게 환자의 어머니가 치아배열은 전혀 상관하
비오는 날 아침 출근길이었다. 우산을 접고 지하철 통로를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밑에 무엇인가 지나갔다. 우산이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계속 발로 우산을 차면서 지나간다. 일순간 심한 충격에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초등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장난삼아서 하거나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는 화가 나는 것을 참지 못해서 행했던 행동을 20대 중반 여성이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것도 대중이 많은 지하철 통로에서 말이다. 통통한 체형에 약간 작은 키로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행동이 화가 난 얼굴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런 그녀의 이런 모습이 지금 우리사회를 대변하는듯하여 마음이 아팠다.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며 머리에 떠오른다. 만약 10여 년 전에 동일한 장면을 목격하였다면 그냥 개인적인 정신 병력을 지닌 환자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정신적인 역량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연인에게 프러포즈하고 거절당하자 강제로 상대를 감금하고 손가락을 자른 사건이 있었다. 변심한 연인의 마음을 돌리려고 편의점 강도피해 자작극을 행하였다. 갓난아이가 운다고 떨어뜨려서 죽게 하고 시험을 통과하려고 국가
창밖이 조용한 아침이다. 새벽 아침에 비가 내리니 커피향이 더욱 진하게 감미롭다. 모처럼 일찍 일어난 새벽아침을 즐기고 있다. 일상보다 3시간 이르게 기상하였다. 항상 수요일 오전에 글을 쓰는데 선거일로 인하여 일정이 바뀌어서 일찍 일어나는 덕에 비 내리는 새벽아침의 고요함을 커피와 함께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선거 때문에 몇 달 전부터 시작한 시끄러움과 대조를 이루니 더욱 그리 느껴지는 듯하다. 선거 때면 한번 정도는 ‘어떤 당을 지지하는지와 누구를 찍을 생각이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정치적인 대화를 피하기 위하여 ‘아직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네요’라고 회색론적인 대답을 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필자에게 선거 시즌은 아주 재미있는 시기이다. 선거 때면 수많은 심리들이 작동을 하고 그 결과가 눈에 보이게 나타난다. 개인 심리와 집단 심리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어느 당의 누구냐 보다는 어떤 심리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어떤 말이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에 더 관심이 간다. 투표자의 마음을 얻고자하는 이들의 심리적인 작전과 그에 따른 투표자들의 심리적 변화 양상 등은 매우 흥미롭다. 일례로 투표자들의 양상을 보면 사람의 심리적인 패턴을
진료실 밖에서 확성기로 들리는 소리가 선거철임을 실감하게 한다. 웅웅거리는 소음만 들리고 떠드는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뉴스는 온통 선거로 몰고 가지만 여론은 검사장의 126억원 주식차익과 조세도피처에 재산을 은닉한 195명의 명단에 더 관심이 간다. 이 두 사건은 비슷한듯하지만 다르다. 권력과 돈이 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같지만 검사장은 스스로 보고한 것이고 조세도피처 인물들은 타인의 손에 의하여 공개된 것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90년대 초에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시작하였다. 그 당시 재산을 공개할 수 없던 많은 공직자들이 사퇴를 하였다. 스스로 공개하면 안 되는 재산임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검사장은 당당하게 공개하고 전국 공직자 재산서열 1위에 등극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금융담당 전문검사가 비상장주식의 시세차익으로 1년에 37억원을 벌어들였다면 문제가 된다.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검사장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거나 자신이 있어서 사퇴하지 않고 공개했을 것이다. 그의 심리를 생각해보면 첫째는 익숙함의 일반화이다. 주변에서 그런 것을 너무 많이 보다보니 옳다고 생각
스케일링이 보험이 된 이후부터 진료 전에 개인정보이용동의서를 받는다. 그때마다 필자 병원에서는 스케일링 설명동의서도 같이 받는다. 스케일링 후에 발생하는 치아 시림 등을 미리 설명한다. 특히 잇몸이 힐링되면서 발생하는 블랙트라이앵글이나 기존에 있었던 크랙 또는 치경부 마모 등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 분쟁의 소지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스케일링 후에 자주 겪는 분쟁을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여보면 치과진료는 매 순간마다 환자가 오해할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 일례로 구치부에서 치료받은 치아와 다른 치아를 혼동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16번을 크라운을 했는데 우연하게 17번 크라운이 탈락한 경우에 환자는 치료받은 치아가 17번이라고 착각을 하거나 우기는 경우이다. 또 당황스러운 경우가 유치를 방사선사진 촬영 없이 발치하였는데 후속영구치가 선천적 결손인 경우이다. 영구치를 발치하였다는 환자의 주장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진료 때마다 환자와 분쟁의 소지는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배워본 경험이 없어서 결국 치과의사들은 실제 경험을 통하여 익숙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혹은 선배의 경험을 듣거나 고통을
한 엄마가 초등학교 2학년 딸과 내원하였다. 어떤 일로 왔냐는 질문에 부정교합 때문에 왔다고 대답하였다. 교정을 업으로 삼고 사는 필자가 환자에게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부정교합’이다. 그런데 부정교합이란 말을 곱씹어보면 실체가 없다. 아니 심지어 교활한 상술적인 느낌마저 든다. 부정교합이란 정교합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정교합자가 몇 퍼센트나 될 것인가. 거기에 골격적인 개념까지 포함시키면 과연 정교합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면 대다수의 모든 사람이 부정교합인 상태에서 용어 자체에 의미성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부정교합이라는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잠정적 교합이상 환자로 분류해버리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적표로 환산하면 100점이 정교합이고 99점 이하는 모두 부정교합이다. 일반적으로 90점 이상이면 A로 60점 미만은 F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교합에서도 난이도에 따라서 구분하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일반 치과치료와 교정치료를 요구하는 환자의 생각 속에 부정교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교정환자의 ‘부정교합’이란 대답 속에는 심미가 포함되어 있다. 기능성에 심미성을 포함하여 생각한다. 정교합이
얼마 전 공중파 강연 방송에서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설명하였다. 1차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한 기계적 혁명이었다. 2차 산업혁명은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의 힘을 이용한 대량생산의 시작이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에 의한 ‘자동화’였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 파워’를 통한 인공지능화라고 설명하였다. 강의를 듣는 청중들은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경기를 보면서 한 번에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 명인 이세돌 9단과의 경기는 세기의 대결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5:0으로 승리를 낙관하던 이세돌은 상상을 초월하는 알파고의 능력에 참담한 패배를 3번하고서야 4번째에 승리할 수 있었다. 3번의 경기를 지켜보았던 필자도 1국의 패배를 보면서 반신반의 하였고 2번째 패배를 보면서는 소름이 돋았고 3번째 패배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이 희망을 잃었다. 4번째 이세돌의 승리는 묘한 희열을 주었지만 저변에 깔린 씁쓸함은 가시지 않았다. 옥스퍼드대학의 칼 오스본 교수가 컴퓨터의 진행속도, 현재의 각 직업군의 노동 임
생텍쥐페리의 유명한 소설 ‘어린 왕자’ 중에는 많은 질문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에 대한 질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은 기적이란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과연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어려움에 처한 모든 이들은 그 순간 자신이 겪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할 것이다. 밖에서 보는 어려움과 직접 경험하는 어려움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런 어려움도 그 사람의 과거 경험과 내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의 일반인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그가 가장 잘 아는 이유다. 그런데 생텍쥐페리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타인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반면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 말한다. 이런 차이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이상적인 어려움의 차이
어제는 삼일절이었다. 지인들과 장사익 선생이 기획한 흑우 김대환 추모공연을 보았다. 흑우 김대환은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인이었다. 음악에서는 타악기에서 전위음악까지, 서예와 조각으로는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겨 기네스북에 오른 기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세계가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어 일본의 예술인들과 같이 공연한지 12년이 되었다. 그의 예술에 대한 정열은 지금도 한국 음악의 흐름 속에 같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살아서는 기인이었고 죽어서는 선각자였다. 지금도 남과 다르게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지금 우리 교육 현실은 획일화를 요구하고 개성을 말살하고 있다. 심지어는 학교교육이 죽었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교육 현실을 알면서도 벗어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에 모두 공감한다. 그 내면의 이유에는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경쟁심과 1등을 해야 한다는 이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만들었다. 얼마 전 조사에서 한국이 OECD국가에서 1등하는 것이 50가지가 있다고 발표되었다. 1)자살률 : 8년간 연속 1위 2)산업재해 사망률 : 2012년 기준 2위 국가의 세 배 3
오늘 아침 뉴스 기사는 국회 필리버스터로 시작한다. 아침드라마는 이복 자매간의 반목으로 같이 죽자며 휘발유에 불을 붙이려는 장면이다. 아침부터 정신 사나운 내용의 정보들이 넘친다. 필리버스터는 얼마 전에 방영한 ‘어셈블리’라는 국회드라마를 통해 보았던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보게 되니 드라마나 현실이나 별반 차이 없는가 싶다. 드라마 같은 현실과 막장드라마를 보다보면 현실이 막장으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SNS에 떠도는 글 하나가 생각이 난다. 교회 앞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불법주차로 길이 막혀서 차를 빼 달라고 전화를 하니 “기도중이라서 못나가니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화가 난 운전자가 교회 문을 열고 큰 소리로 차 주인을 찾으니 누군가 다가와서 “당신 이러시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운전자가 “내가 그 지옥에서 온 사람이다”라고 더 화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인지 콩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요즘 같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다.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주차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자신의 기도를 위하여 차를 빼주지 않는 이기심은 얼마 전 종교 시설에 다녀오느라 출산을 지연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가 있다. 교통사고로 인해 단기기억장애 환자가 되어 하루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면서 생기는 일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아침이 되면 지난 날들의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여주인공에게 하루 동안 지난 일을 이해시키고 다시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는 노력이 웃음을 주면서도 눈물겹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첫 키스만 50번째 성공하고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비록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지만 인간 본연의 마음속에는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음으로 하루 동안 모르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얻어낼 수 있고 같은 감정에 도달하는 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연속된 삶을 이어간다는 잔잔한 휴먼 스토리의 감동을 주는 영화다. 이렇듯 사람의 감정은 기술습득처럼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숙달된다. 반복 학습 효과에 대한 것은 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반복되는 것은 무의식 속에 심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효과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양면성을 지닌다. 이 영화 같은 경우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뉴스에서 부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