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고 열이 나니 어떡할까요? 어느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의사요. 배 아프고 열이 나면 빨리 오세요. 여기는 소아과 병원입니다.” 어린 시절 병원놀이를 구현할 때 즐겨 불렸던 동요이다. 참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인 표현과 답변이 오가는 재미있는 내용의 동요이다. 자신이 아픈 증상을 자각하고 그리고 그것을 전문가에게 표현하면 전문가인 의사는 그 증상에 맞는 진료와 처방을 해야만 아픔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학습시키는 교육방법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자각증상을 본인이 표현하지 않고 숨기고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증상은 큰 질환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이상한 증상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숨기는 경우는 의술이 아무리 발전하였다 하더라도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바로 건강검진이다. 건강검진을 통하여 미처 자각하지 못하였던 증상을 발견하고 더 이상의 큰 질환으로 커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국가적 건강관리 대응체계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되어있는 시스템 중에 하나가 바로 건강검진인 것
일반적으로 치과병의원에서는 명문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진 경우이거나 입사한 근로자들이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 그동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별 문제없이 치과병의원이 유지되어 왔다는 등의 이유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근로계약은 ‘근로자는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임금을 제공함’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며 모든 사업장이 근로계약서를 체결해야 한다. 원장과 근로자는 근로와 임금을 상호 교환하는 관계라는 법적 지위를 갖는다. 계약관계에서 상호간의 근로조건과 임금지급 등의 내용을 입사 시 상호조정하고 조정결과를 바탕으로 합의된 근로조건을 명문의 계약내용으로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근로계약서의 작성은 위와 같은 법적인 의미도 있지만 치과병의원장과 근로자간의 명문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원장에게는 병원의 인사노무관리가 합법성의 범주에 있다는 사실을 근로자에게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근로자에게는 자신이 비로소 치과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소속감을 일깨워주는 등 업무 동기유발의 촉진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근로계약서 안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지난 현충일에 광주 포충사 고경명선생의 대종가를 참배하였다. 400년을 장손 종가로 이어온 대종가의 모습은 청아하고 고결하였다. 임진왜란시절 6천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 칠백의총의 조헌 의병장을 돕다가 금산에서 3대가 전사하였다. 대종가의 참배 후 돌아오는 길에 신안군 여교사 성폭행사건을 들었다. 사건 내용을 접하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 땅을 위하여 피를 흘리고 죽어갔고, 누군가는 그들의 피를 이용하여 사욕을 채우는 모순성에 대한 화두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이런 역사의 모순성이 현충일에 다시 필자를 아프게 한다. 이 사건을 조금 분석해 보면 단순한 성폭행 사건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첫 번째는 단독범이 아닌 단체 범행이고 사전공모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다 한 명의 미치광이를 만난 우연적 사건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3명이 모두 미치광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들 의식 속에서 이미 여선생을 선생으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는 집단적 의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그들의 공모로 행하여 진 사건이라면 처음이 아닌 반복된 경험 속에서 익숙하게 시행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사건의 팩트 상 피
시대가 바뀌면서 치과병의원 경영과 관련된 환경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연봉제 설계 및 아웃소싱 등의 경험을 기초로 전국의 치과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노동관계 분쟁을 접해본 경험에 미루어 볼 때, 치과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노동법적인 권리의식의 고양과 이와 관련한 노동관계법률정보에의 접근성이 더욱 쉬워지면서 치과에도 많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치과병의원을 운영하는 경영주체인 원장과 근로자들과의 관계는 종전과 같이 감성적인 접근방식으로의 인사노무관리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원장과 근로자의 관계는 법률적 관점에서 새로운 준거의 틀을 만들어야 하고, 특히 연장근로 및 야간근로와 휴일근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치과의 특성상 근로자들의 근무시간 및 환경에 대한 점검 및 합리화를 위한 인사노무 관련 파트의 설계는 향후 치과의 경영 합리화를 위한 핵심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의 기본적 입법취지는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의미가 있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것이 치과병원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경영비용의 상승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치과병원의 노무관리를 합법성의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에는 17세기의 이탈리아 화가 카를로 마라타가 그린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젤’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는 비너스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그려져 있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는 17세기 스페인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가 그린 ‘엄마 리브가와 짜고 이삭의 축복을 받는 야곱’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리고 이 그림에는 험상 궂고 고집이 세어 보이는 중년 후반대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림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여인이 리브가이다. 이 두 그림 속의 리브가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인이다. 아브라함이 백 살에 얻은 자식 이삭의 아내가 리브가이다. 아브라함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위하여 당대 최고의 여인을 물색하였고 그 임무를 맡은 자가 엘리에젤이었다. 그는 어느 우물가에서 순수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리브가를 처음 만났다. 그때의 장면이 마라타가의 작품이다. 리브가는 장남 에서와 차남 야곱을 낳았지만 야곱을 편애하여 급기야는 이삭의 모든 유산을 차남에게 주려는 나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노쇠하여 눈이 보이지 않는 이삭을 속이기 위하여 야곱을 에서로 변장 시키고는 유산을 상속 받게 하였다. 그때의 장면이 리베라의 그림이다.
얼마 전 기사에서 접한, 교정치료 환자로부터 진료거부로 고발당한 치과의사의 사연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비록 필자의 사건은 아니지만 유사한 일들을 경험한 동병상련의 감정인지 글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내용은 환자의 치아에 브라켓을 처음 붙였는데 아팠다고 불편을 토로하며 장치를 모두 철거하기를 강하게 요구하여 환자가 원하는 대로 전체 장치를 제거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는 다시 장치를 붙여줄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교정의사는 못내 환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 교정장치를 장착하면서 환자의 불만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런 사건의 반복으로 원장은 다른 치과로 전원을 물어보았고 환자는 그것을 진료거부로 고발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몇 가지 생각할 부분이 있다. 첫 번째가 브라켓을 붙였는데 환자가 아팠다고 화를 내며 장치를 모두 제거해달라고 주장했다는 부분이다. 환자는 통상 치과치료는 아프다는 것을 전제로 진료를 받으러 오기 때문에 통증에 대하여서는 생각보다 관대하다. 즉 어지간한 통증은 잘 참는다. 특히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교정치료에서 브라켓을 붙이는 술식은 통증을 동반하는 술식이 아니다. 생각해볼
대한민국의 여심(女心)을 흔들어 놓았던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아쉽게도 단 한 번도 그 드라마를 시청하지 못하였지만 어디를 가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송중기라는 배우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여자들은 송중기라는 배우를 자신에게 눈길이라도 한번 주었으면 하는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반면, 남자들은 왠지 모를 질투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드라마를 한 번도 시청하지 못하였기에 어떤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배경이 군(軍)이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군(軍)이라는 집단을 호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어서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군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하였던 사람들에게는 정작 실상과는 다른 드라마 자체로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군생활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에게는 힘듦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기간임은 자명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선택이 아닌 의무로 군생활을 해야 하고,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에 부모형제 그리고 친구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지내야 하는 시간은 결코 쉽지 않은 생활이다. 그래서 간혹 그 힘듦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사고가 생기는 경우를 우리는 접하곤
필자가 치과의사라서 그런지 ‘몽니’란 단어를 들으면 왠지 치아 중의 하나처럼 느껴진다. 아픈 사랑니보다 조금 더 아픈 치아 같은 느낌이다. 몽니는 사전에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 부리는 성질’이라고 정의되어 있으며 순수한 우리말이고 준말은 ‘몽’이다. ‘몽니’라는 말에는 투정, 심술, 훼방, 트집, 욕심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몽니’는 ‘몽을 부리는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강자의 용어가 아니고 약자의 용어이다. ‘갑질’이 강자의 용어라면 ‘몽니’는 약자의 용어라고 하겠다. 약자의 처지에서 강자에게 정면으로 대들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화가 나서 강자가 하는 일에 슬쩍 초치는 행위가 몽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상대방이 그다지 잘못한 일도 없는데 공연히 트집을 잡아 심술을 부리는 등 괴롭히려 드는 사람들의 행동에 사용하기도 한다. 아침 출근길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뒤에서 시끄럽다. 젊은 여성은 빨리 내려가려는데 앞 노인이 가운데를 막고 서서 조금 먼저 지나가겠다고 하자 일부러 비켜주지 않아서 시끄러웠다. 결국 젊은 여성은 노인을 피하여 내려갔고 이에 노인은 자랑스러운 듯이 일부러 비켜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였다
한 어머니가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상담하러 왔다. “어머니, 어떤 일로 병원에 내원하셨는지요?”라는 질문에 “아이가 나처럼 턱이 나오면서 턱관절이 아플까 염려되어서 왔습니다”라고 어머니가 답변하였다. 어머니 얼굴을 보니 약간 역삼각형에 갸름하면서 턱 끝이 발달하였지만 완전한 주걱턱 얼굴은 아니었다. 몇 가지 질문에서 어머니는 오랫동안 턱관절 질환을 앓아왔으며, 그 원인이 주걱턱형의 턱 끝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얼굴을 닮아가는 딸을 보니 나중에 본인처럼 턱관절로 고생을 할 것이 염려되어 내원을 하였다는 요지였다. 이에 필자가 얼굴형과 턱관절과 무관함을 피력하고 턱관절이 불편하면 치료를 받으라고 설명하자 무척이나 실망하는 눈치였다. 설명 후에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 현재로는 기우이시니 전혀 걱정을 마시고 다른 것은 없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어머니는 “그러면 됐습니다!”라고 잘라서 답변하였다. “따님의 상하악 치아가 조금씩 틀어져 있는데도 괜찮습니까?”라고 필자가 의아함에 재차 반문하자 “이는 전혀 상관없습니다!”라는 단호한 대답을 들었다. 교정을 업으로 삼고 사는 필자에게 환자의 어머니가 치아배열은 전혀 상관하
몇 년 전부터 특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부쩍 많이 받았다. 그 특별한 대상은 다름 아닌 팀장과 주변의 동료들로부터의 평점이 3년간 최저점수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유야 어떠하던 간에 당사자로서는 억울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대상자들은 그 평점에 대하여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육장면이나 분위기가 다른 대상자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안쓰러운 마음도 있고 또한 교육 후에 일상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든다. 그러던 중 한 교육생으로부터 자신의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심리상담을 받았으면 하는 요청을 받았었다. 지금은 많이 호전이 되었고 그리고 일상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교육장면이 아닌 일대일 심리상담 장면에서의 흥분되고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첫 모습은 아직도 선하다(심리상담 언급에 대한 부분은 내담자의 동의하에 기재함).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의 능력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모략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필자와 상담하는 동안 보여준 모습은 참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