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끝내고 나오니 정말 기막힌 일이 우리 앞에 벌어져 있었다. 차량의 앞쪽 뒤쪽 유리창이 깨졌고 백팩도 모조리 없어졌다. 나는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 안에는 여권과 지갑, 선글라스, 특히 호텔비로 쓰려고 준비해왔던 약 5,000달러 정도의 현금이 들어있었고, 비행기 표부터 먹는 상비약까지 몽땅 들어있었다. 워싱턴의 친구 부부는 비싼 카메라와 그 부속 장비들, 특히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동안 고생하면서 찍은 사진들도 모두 가져가 버렸다. 마냥 걱정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했다. 마침 식당에 오셨던 목사님께서 자기 일처럼 나서서 경찰서에 신고하는 데 도움을 주셨다. 우리가 방심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는 반성을 하면서 11시가 되도록 경찰을 기다리며 신고에 신고를 했지만 급한 일을 처리하고 오겠다고 한 경찰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순찰차로 온 경찰은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상황에 대한 조사도 없이 가버리고 말았다. 미국 경찰에 대한 실망과 한국 경찰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는 절대로 안 할 것이라는 은근한 자부심 같은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우선 잃어버린 여권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선 한국에 있는 전직 외무장관 S에게 전화로 상황 설명을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조금 있다 LA 영사관 총영사 K씨로부터 위로의 전화와 임시 여권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일정 잘 마치고 영사관으로 오라는 고마운 전화를 받고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그나마 내가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식당으로 들어가게 한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3주간 찍어놓은 사진이며 수습에 필요한 연락처 등이 없었다면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었을까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다.
반면 아내의 백팩은 그대로 있었다. 위에 신문지를 덮어놓고 있었던 것이 큰 보호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나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과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마한 지갑에 신용카드를 지닌 것도 다행이었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 여행할 때 어떻게 주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였다는 생각이 크다. 만약 여행 시작할 때 이런 일이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원래 그다음 날 데스벨리를 갔다가 LA로 가기로 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우선 부서진 유리창부터 갈아 끼워야 LA로 갈 수 있으니 그게 급선무였다. 역시 항상 기도로 우리의 안전을 비는 친구 L의 도움인지 밤 11시가 넘어 친구 K의 집으로 갔는데 평소에는 만나기도 어렵다는 이웃집 아저씨가 집 앞에서 부자 간에 대화를 하고 있다가 창문이 다 깨진 차량을 몰고 들어가는 우리를 보고는 바로 내일 유리 창문을 수리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해 그나마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길고도 긴 하루였다.
9월 23일. 아침부터 친구 K는 분주하다.
유리창을 갈아 끼울 차량 수리점을 알아보는 등 경찰에 유선상 신고를 하는 등으로… 다행히 집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창문만 전문으로 수리하는 곳을 이웃집 아저씨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수리를 하고 간단한 쇼핑을 마친 후, 휴식.
<다음호에 계속>
이 수 구
(사)건강사회운동본부 이사장
·前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
·前 서울시치과의사회 회장
본지는 (사)건강사회운동본부 이수구 이사장(前대한치과의사협회·서울시치과의사회 회장)의 미국대륙횡단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수구 이사장은 지난해 9월 3일부터 24일까지 미국대륙횡단에 나섰다. “대학 동기 내외와 함께 동부에서 서부를 가로지르는 여행이었다”면서 “오랜 꿈이자 버킷리스트였던 나의 소중한 경험을 치과의사 후배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한 “73세의 나이에도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도 덧붙였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