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암포에 들어서니 해변길이가 2㎞ 남짓. 그리 크지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온다. 젊은이들이 송림 속에서 텐트를 치고 오토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해변은 인공의 흔적이 없는 자연상태이기에 모래언덕이 잘 발달해 있었다. 자전거 바퀴가 모래에 빠져 굴러가지 않는다.
고운 모래, 황금의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항구쪽으로 가니 학암포의 상징인 학조형물이 우리를 맞는다. 이 해안이 학암포 둘레길이며 학암포를 구성하고 있는 분점도에서 학암포 해변, 구례포 해변, 해녀마을, 먼동 해수욕장, 석갱이해변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트레킹코스라는 사실을 알고 이곳에 온 것을 행운이라 생각했다. 만조가 되면 멀리 바다에 떠있는 소분점도는 그 형상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학의 형상과 같아 이 해변을 학암포(鶴岩浦)해변이라 불렀다고 한다.
간조가 되면 학의 형상은 사라지고 학의 몸에 해당하는 바위 위에 송림이 무성한 바위섬으로 변하는데 그곳까지 길이 열려, 갯벌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침 우리는 만조 때라 학의 모습을 보았는데 학암포를 돌아나올 때는 간조 때라 많은 사람이 소분점도(학바위)까지 걸어가 대맛, 굴 등을 캐고 있었다.
우리는 학암포 선착장 쪽으로 달려갔다. 이곳의 해수욕장은 포구, 선착장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착장 쪽의 분점도에는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둘레길을 오르고 있었다. 모두가 바위인 이 바닷가, 비경의 학암포, 멀리 바다안개 속에 뿌옇게 태안 화력발전소가 아스라이 보이고,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끝이 닿아있는 듯, 환상의 비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나온 학암포는 해변에 갈매기 떼가 앉아서 노니는데, 사람들은 간조 때라 소분점도(학바위섬)에 옹기종기 모여 굴을 따고 있었다. 해안사구를 한 바퀴 돌아 학암포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수산시장에서 태안 특산 소라숙회를 먹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크기도 크려니와 바다향기가 잔뜩 스며든 소라를 한 접시 수북이 담아주었다. 바다 향을 음미하며 구수하고 달달한 소라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달래며 구례포로 향했다. 구례포 해안에 처음 나타나는 해변은 석갱이 해변으로 오토캠핑장으로 유명하다. 자전거를 달려 들어가보니 모래가 고와 바퀴가 헛돈다. 자전거를 끌고 해변으로 가는데, 원시 그대로의 해송과 모래언덕이 이 해변이 살아있음을 말해준다.
해송숲 사이로 나타나는 바다는 가끔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함을 준다고 한다. 학암포의 바다길에서 구례포로 연결된 트레킹코스를 바라길이라고 한다. 이길로 남쪽으로 가면 먼동해변으로 향하는데 원래 이름은 ‘안뫼’라고 한다. 드라마‘먼동’의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이름도 먼동해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석갱이 해변에서 남쪽으로 전 해변이 구례포 구간이다. 이 길을 천사길이라고 부르고, 해변과 사구, 해송이 어우러져 때묻지 않은 생태관광지로서의 원시 해변을 연출했다. 석갱이 해변을 나와 지방도로를 따라 구례포 해변으로 향한다. 파도가 얼마나 희게 부서지는지 해안지방도의 이름이 옥 같은 파도라는 뜻으로 옥파로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구례포 해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수많은 해송들이 네가 크냐, 내가 크냐 하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 해안사구가 자연 그대로 발달해있다. 태고적부터 바람이 만든 사구가 이 아름다운 호젓한 해안을 만들어 놓고 대나무로 만든 모래를 모으기 위한 죽책이 끝없이 설치되어 모래를 포집하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해변은 순수한 시골처녀마냥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아침부터 안개가 끼어 신비함을 연출한다고 한다. 우리는 넋을 잃고 파도 부서지는 해변의 낭만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되돌아 나왔다. 옥파로를 따라 신두리 해변을 향한다. 도로를 따라 남으로 내려 달리면 황촌리가 나온다. 보건지소에서 해변으로 가는 산길을 마다하고 634번 지방도를 따라 가는데 기가 질리는 고개가 나타났다. 경사각 10%의 1㎞길이의 서낭당고개가 우리의 길을 막듯이 서있는 것이 아닌가. 끝이 없는 이 고개를 남은 힘을 다 써가며 올랐다. 신두리 해변가는 이정표가 삼거리에 붙어있다. 두웅로를 따라 이 언덕에서 바람같이 우리는 다운힐 라이딩, 신두리 해변, 중앙교차로에 닿았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입에서는 단내가 날 정도다. 우리는 작은 수퍼마켓에서 얼음과자를 입에 틀어넣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것 같다. 땡볕의 고개오르기는 정말 지옥 그 자체이다. 정신을 차리고 신두리 해변으로 나아갔다. 해변은 끝이 없이 펼쳐졌는데 그 길이가 5㎞는 되는 것 같다. 젖은 모래 위를 자전거는 달린다. 근처에 신두리 해안 사구가 펼쳐진다. 마치 사하라 사막같이 끝이 없고, 설탕가루를 쌓아 놓은 듯 천연의 모래 언덕은 바람의 마술처럼 표면의 모래가 살아 움직이고 숨 쉬는 사구이다. 세계 최대의 천연사구다.
자연의 위대한 예술에 그저 고개가 숙여진다. 마치 국내에서는 볼 수없는 외국영화의 한 장면 같은 해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자연을 살아있게 할 수 있는가를 짐작케한다. 연인들이 거닐고, 가족들이 뛰노는 해변. 신두리 해변과 사구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두리 해변을 나오는데 보이는 두웅습지! 2007년 12월 국내 6번째로 람사르 협약 습지로 등록된 습지다. 이 신두리 해변 일대는 낙조를 전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사구의 이국적 풍경, 유럽풍의 펜션 등이 있고, 리아스식 해안으로 경관이 뛰어난 해안국립공원이다. 두웅습지와 해안사구를 보며 자연의 무한한 힘을 느끼고, 인간의 지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마저 생겼다. 인간의 오만과 욕심으로 질서를 파괴한다면 자연은 그 몇 배의 심판을 인간에게 내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억 년을 이렇게,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 그 속에 갖가지 동식물이 자라고 또 그것으로 인해 아름다움은 더해간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해변에 인공 구조물을 짓는다면 그것은 사구를 파괴하고 나아가 해변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느리고 느리게 자연의 시간에 맞춰 돌아가는 세계를 보았다. 이 해변과 해안숲길에서 느림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인간의 생활에서 필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파도치는 순수함을 간직한 해변에서 인생의 빈곳을 채우고 인생의 캔버스에 망막에서 전달된 새로운 아름다운 인생을 색칠해 나간다. 두웅습지를 벗어나 두웅로로 해안동산을 돌아 삼거리에서 소원면 방향 소근진로로 접어들었다. 해안산책길로서는 신두리에서 만리포까지 22㎞에서 소원길이다. 소원길은 원유유출사고를 겪은 태안해변이 빨리 복원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제부터 소근진로와 소원길이 함께 간다.
여기서 삼거리! 만리포는 좌측, 소원길은 우측이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조그만 시골포구가 나온다. 소근포구다. 해안길에서 마을길로 접어들면 허물어져버린 소근진성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