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지 필연인지 대통령이 퇴출되며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이화여대 사태로 시작하여 청문회를 거치며 대통령 파면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한 단어가 생각난다. ‘사람’이다. 그 모든 곳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 각자의 마음이 모여서 나타난 것이 이번 사태이다. 사람은 다양하다. 다양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칼포머는 그런 이유로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건강함을 주장하였다. 각자의 다양성이 획일화되면 사회가 경직되고 위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사람을 뽑을 때 기준이 충성이었다는 말이 들렸다. 유독 법조인과 군인이 많이 기용되었고 주변에 충성심이 높은 비선이 포진된 이유라고 들렸다. 결국 대통령의 실패는 한 마디로 ‘사람’과 ‘충성’이었다.
충성의 위험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왔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부분의 토론 주제가 ‘충성심의 딜레마’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사과와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를 비교하고 애국심이 지닌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최종적으로 그는 개인적 도덕성인 충성심과 전체 이익이 상반되는 경우를 ‘충성심의 딜레마’로 표현하였다. 또 다른 시각으로는 충성심의 역설이 있다. 충성심이 높을수록 잘못된 판단과 결정이 걸러지거나 바로잡히지 않고 그대로 정책실패 혹은 대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이미 수없이 경험하면서 탄생된 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패배이다. 그는 워털루전투 하루 전날에 연합군의 세력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군대를 반으로 나눠서 고지식하지만 충성심이 강한 그뤼쉬 장군에게 지휘권을 주고는 프로이센 패잔병을 소탕하여 연합군과 합류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워털루전투는 답보상태였고 나폴레옹은 그뤼쉬 장군 지원군이 간절했다. 이 때 대포소리를 들은 그뤼쉬의 휘하 장교들은 나폴레옹을 위한 지원 출병을 강하게 건의하였으나 그뤼쉬는 나폴레옹의 명령에 충실하기 위하여 지원을 포기하였다. 세계사는 이 순간을 고지식한 충성심이 주군과 국가를 망하게 하고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최고의 순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새로운 명령이 없었다는 이유로 과거 명령에 고지식하게 충성하였다. 만약 그가 현장에 충실하였다면 유럽의 역사와 지금의 현대사도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잃어버린 7시간의 비밀도 현대판 그뤼쉬들이 만들어낸 작품일 수도 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뤼쉬로 몰락한 점이다. 하지만 그뤼쉬를 선택한 이유는 전혀 다르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전투에서 유능한 지휘관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래서 무능하여 가늘고 길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그에게 마지못해 지휘권을 주는 것이 불안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반면 전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그뤼쉬들만을 찾아서 선택한 것이 다르다. 그래서 전자는 파멸의 이유를 잘 알았지만 후자는 아직도 모를 수 있다. 일련의 사건을 보며 아이러니한 것은 ‘청문회 충성’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이번 청문회에서 사람이 생각나지 않고 예전의 장세동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이번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아니 지금 사람들이 그와 달랐다. 충성이란 말이 그에게는 어울리지만 이번 청문회 출연진들은 ‘고지식’이나 ‘교활’이란 단어를 생각나게 하였다. 역사 속에서 교활이 충성으로 포장한 경우는 무수히 많다. 역사는 충성, 고지식, 교활의 위험성을 누누이 경고하였다.
역사는 상식에 따라 흘러가길 요구한다. 하지만 역사는 상식보다는 우연이나 한두 사람의 개인적 소견으로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만들어낸 것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이다. 앞의 사건이 없었다면 뒤의 사건도 없었다. 세월호의 침몰이 없었다면, 이대 부정입학사건이 없었다면, 그뤼쉬적 충성이 없었다면, 교활보다 상식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비상식이 상식을 넘으려할 때 상식은 강한 저항을 한다. 그것이 역사의 자정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