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보험의 진화… 가입자도, 지급기준도, 보험사 입맛대로
홈쇼핑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아보험이 팔려나가고 있고, 일각에서는 ‘의료보험 절대로 들지마라’는 책이 발간되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급여 또는 비급여 항목, 최근에는 상해에 의한 치아파절까지도 보장한다는 민간보험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
민간보험은 과연, 국민건강보험의 부족분을 채워주고 건강과 치료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가입자 160만명, 치아보험 여전히 인기
지난 2008년 라이나생명과 에이스손해보험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된 치아보험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다. 2009년 100만명, 올해는 160만명의 국민이 치아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입조건에 따라 무진단형과 진단형보험, 가입방법을 간소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했다는 다이렉트 치아보험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화·발전하고 있다.
치아보험의 시작은 보험가입을 희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무진단형 보험이었다. 무진단보험의 경우 가입조건은 까다롭지 않지만, 보험 가입 후 실질적인 혜택을 보기까지는 항목에 따라 6개월, 1년,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치과치료의 특성을 감안, 국민건강보험에서 급여로 인정되는 범위 내의 진료비를 보장하는 보험과 보철 등 비급여진료비를 보장하는 보험 등이 구분돼 있었다.
그러나 임플란트 100만원, 브릿지 50만원 등의 정액 보장이 이뤄지면서 ‘보험금 부당지급’ 등 모럴해저드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일부 치과를 중심으로 보험설계사들의 환자 몰아주기가 일어나고, 보험사의 요구에 맞춘 서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부당 보험금을 타내 환자와 치과, 보험설계사, 가입자가 이득을 나눠갖는 불법적 행태도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진단형 치아보험이다. 말 그대로, 보험 가입 전에 가입자의 구강상태를 검사해 이상이 없는 경우에만 가입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가입 즉시 보장 혜택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보험 가입 여부의 칼자루를 보험사가 쥐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보험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보험가입의 본 취지와 거리가 멀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 중 충치나 치주상태 등을 종합해 양호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일 가능성이 높다. 다빈도 외래상병의 경우 치은염, 치아우식증 등 치과질환이 10위권 내 포진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며,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영구치우식경험자율은 89.2%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구강상태가 양호한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가입자 중 추후 구강상태가 악화돼 보장이 필요한 경우가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보험이 필요없는 사람만 골라 가입을 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진단형 치아보험의 경우, 사전 진단결과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면 이후 무진단형 치아보험까지 가입 제한을 받기 때문에 실제 가입장벽은 더욱 높다.
그러나 여러 제약과 문제가 대두되는 중에도 치아보험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그간 손해율 악화 등이 우려돼 치아보험시장이 다소 주춤했지만 최근 보험사들이 경쟁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동부화재, 현대해상, 라이나생명, AIA생명 등 기존 치아보험 상품을 출시한 보험사에 이어 AXA다이렉트는 보철 및 충전치료를 보장하는 무진단보험 ‘다이렉트 치아보험’을 출시하는 등 후발주자들이 새로운 경쟁구도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 대형 보험사의 경우, “치과의 경우 비급여 진료의 진료비용이 천차만별인 데다 보험사의 수익을 맞추기 위해서는 여러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치아보험 시장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간보험, 보험사만 배불리는 제도?
민간보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의료보험 절대로 들지마라’의 저자 김종명 씨는 “암보험에 드느니 차라리 로또를 사라”는 말로 민간보험의 필요성을 일축했다.
우리나라 가구당 민간의료보험료는 연간 24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가입자들이 낸 보험금에는 보험사의 영업이나 광고 등 사업비까지 포함돼 있고, 암보험의 경우 지급률은 4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발주자인 치아보험의 경우는 어떨까.
처음 도입된 것은 무진단 치아보험. 온전한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입자 입장에서 치아보험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은 1~2년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러나 “비싼 치과치료 부담없이 받자”고 광고했던 치아보험 또한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평소 치아가 유난히 약한 직장인 A씨는 “보험 가입은 가능하나 얼마 전 치료받은 치아는 보험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험가입을 포기했다. 초창기 치아보험에 가입했던 B씨는 “얼마 전 이가 깨져서 치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다”며 “다른 보험과는 달리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많고 상해에 따른 치료였기 때문에 보상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보철이나 급여항목이면 다 지급받을 수 있는 줄 알았지만 실제 적용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웠고, “지금까지 치과보험을 든 나 자신이 바보스러웠다”고 한탄이 절로 나왔다고.
뿐만 아니다. 한달에 3~4만원 정도의 보험금을 2년 동안 꼬박 납부하고 받을 수 있는 보장의 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치료비의 전액이 아닌 정액을, 한정된 치아에 제한적으로 보장받게 되며,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보험금을 저축하는 편이 빨랐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가입자의 대부분은 임플란트나 틀니 등 목돈이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한다. 그러나 치아보험의 경우 보장 연령이 50~55세까지여서 실질적인 혜택이 필요한 노년층은 아예 고려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면 치과의 입장에서 민간보험의 확대가 환자창출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치아보험이 도입된 이후 치과 외래환자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1년 445만명이었던 것이 2009년에는 737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치과의 피로도는 그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민간보험 환자를 진료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간보험의 확대는 숨어있는 환자층을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전체 치과의 파이가 커지는 효과도 있지만, 이보다 먼저 피부에 와닿은 것은 서류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다.
지난 서울시치과의사회 대의원총회에서는 각기 다른 서류를 요구하는 민간보험 양식을 통일해달라는 안건이 상정된 바 있다.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때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진료기록부 사본, 치료확인서 등 총 5종에 달하고, 이마저도 제각기 다른 양식이라 치과의 또 다른 업무로드가 되고 있다.
임플란트 100만원, 틀니 100만원, 브릿지 50만원 등 정액보장 금액을 명시해두다 보니 치과의 일반적인 비급여진료의 기준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특정 기관으로의 쏠림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 보험사가 나서 진단협력병원을 모집하고, 보험사와 진료비용을 계약하고 환자를 유치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치과를 소개 알선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한 가운데, 민간보험사와 의료기관의 계약관계가 이뤄진다는 것도 위험부담이다.
민간보험, 큰 틀에서 바라보기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민간보험이 가져올 파장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치과에서도 민간보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워낙 광범위하고 비급여 진료가 많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뛰어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가입자가 16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보험사들의 몸집은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공공의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무용지물이 되고 민간보험이 활성화 될 상황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국민들이 민간보험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보장성 확대에 따른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에 동의를 구하기 어렵고, 그렇게 되면 결국 국민 모두가 고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보장성 확대는 요원해질 수 있다. 의료 양극화를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부에서는 민간보험이나 영리병원 도입이 국민건강보험의 부족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암보험의 경우 국민건강보험은 1만원을 내고 1만6,800원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민간보험의 지급률은 40%선에 불과해 가입자에 대한 보장의 차이는 막대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국제적으로는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국내 의료인들의 입장에서는 의료계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제도라는 인식이 강하다. 당연지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민간보험이 확대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경제논리에 의료가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크다.
민간보험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경우 민간보험 도입 후 의사 직무만족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민간보험사의 ‘관리의료’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건강보험제도 하에서도 보험청구를 할 때 국가기관의 관리감독을 받게 되지만,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사와의 관계에서 규제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민간보험사와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보험사는 더 낮은 수가를 제시하는 치과와 계약을 하게 되고, 그렇게 수가 압박은 심해질 것이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최대한 지급을 줄이려는 보험사의 입장에서는 보다 까다롭게 심사할 수밖에 없고, 의료기관에 요구하는 서류작업은 심화되고, 더 나아가 치료 적용범위나 약물처방 등을 제한하는 등 의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사례가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면서 환자는 물론 치과를 유인·유치하려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보험사와 개별 치과의 계약은 여러 제약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개별 치과와의 계약보다는 치과의사들이 협의체를 만들어 공동계약을 하며 수가하락 등을 막고 있다는 것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고가의 비급여 영역이면서도 필수적인 분야로 꼽히는 치과영역. 민간보험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았지만, ‘레드오션’으로 전락했다는 오명 속에서도 치아보험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보험사의 달콤한 유혹과는 달리 가입자도 치과병의원도 만족도가 높지 않다.
보험사의 배만 불리는 민간보험은 아닌지, 점점 더 치과를 옥죄는 규제를 만들어가는 전초전은 아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때다.
공동취재_김영희 기자/news001@sda.or.kr
김희수 기자/gimhs7@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