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이겨내는 인내심과 자연에 대한 겸손함을 배우려 사람들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함백산도 그 정상을 호락호락하게 나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15% 이상의 200m 언덕이 4~5개나 되는 함백산 코스는 그 고비 때마다 나에게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을 주었다. 입은 벌어지고, 고글에는 입김이 서리고, 다리는 끊어질 듯, 가슴은 터질 듯, 정신은 희미해진다. 1400m가 넘는 고산지대라서 산소가 희박하고 과격한 육체운동은 쉽게 산소를 소모하게 한다. 나의 정신과 육체의 싸움이 시작된다.
구비를 돌아올 때마다 쏟아지는 땀방울이 자전거를 적신다. 얼굴은 상기되고 더 이상의 힘이 없다. 그 자리에 선다. 두 다리를 땅에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이것이 죽음인가! 다행히 육체는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지그재그로 진행하며 페달을 밟는다. 다시 업힐!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고통이 또 엄습한다. 다시 선 채로 한숨을 돌린다. 앞서 간 다른 팀 대원들이 쏜살같이 함백산에서 내려온다. 마치 개선장군인 양 어깨가 으쓱거린다. 그 모습은 나에게 또 다른 힘을 솟게 했다. 마지막으로 힘든 업힐을 돌아가니, 시계가 넓어지며, 우리가 온 길, 앞으로 갈 하늘길이 열린다. 무수한 산이 얼굴을 들고 함백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통신탑이 보이는 임도 정상, 최후의 힘을 다해 임도 종점으로 오른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답지 않게 사력을 다한다. 임도 정상! 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힌다. 30도의 날씨가 여기선 15도이다. 다리에는 감각이 없다. 저 멀리 태백선수촌이 그림같이 내려다보이고 뱀처럼 구불거리는 하늘길이 우리를 손짓한다. 1400m 이상의 산군(山群)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12km 산악마라톤으로 정상에 도착하고 있었다. 50m 멀리 함백의 정상이 우리를 오라 한다. 얕은 구름에 둘러싸인 함백의 정상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표지석과 돌탑이 우리를 환영한다. 우리는 함백의 위대함에 겸손해지기 시작하였다. 1,573m의 함백은 그 정상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자전거를 들고 하늘에 감사를 외쳤다. 자전거로 오른 생애 제일 높은 함백에서….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어쩐 일일까?
정상 표지석과 돌탑 앞에서 한동안 우리는 1,573m 높이에 사는 신선이 되었다. 우리가 올랐던 길이 발아래 실처럼 구불거리고 저 멀리 우리가 가야 할 하늘길이 보이는 곳, 구름 사이의 백운산, 고봉인 두리봉이 물결 같은 산군(山群)위에 아스라이 우뚝 서 머리를 조아린다.
몇 분을 있었던가, 환희의 기쁨과 함께 순식간에 시간이 흐른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하고 급경사 다운힐을 시작한다. 산을 오를 때 강인함과 지구력이 필요하다면, 내리막에선 균형감과 힘의 분배, 하체의 버티는 힘과 순발력이 필요한 위험한 라이딩이다.
특히, 오프로드(비포장도로)에서는 타이어의 접지력과 충격을 흡수하는 자세와 장치가 중요하다. 나의 캐논데일 풀샥은 마치 세단을 탄 것처럼 충격을 흡수하며 비호처럼 구불거리는 길을 달려간다. 오를 때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그 입도가 마치 비단결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의 애마는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솟대가 보이는 만황재로 다시 내려왔다. 옛날, 이 고개를 넘어 동해안으로 가던 장사꾼들이 무사안녕을 기원했던 수십 개의 솟대가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만황재다. 우리는 허기를 달래고 두 번째 코스인 하늘길로 들어선다. 티벳의 차(茶)를 말을 이용해 운반하던 차마고도(茶馬高道)를 빗대 함백의 하늘길은 석탄을 나르던 길이라고 운탄고도(運炭高道)라고 한다. 우리는 3,000m의 티벳 차마고도(茶馬高道)에서 자연의 경이로움 속에 샹그릴라를 찾던 나시족처럼 1,000m 이상의 석탄을 나르던 운탄고도(運炭高道)의 하늘길에서 진리를 찾는 수도승이 되어 자연과 가까워지려 한다.
원래 자연은 인간과 친구였으나 인간의 이기적 욕심이 자연을 침범하여 자연의 분노가 인간세상을 뒤덮었다고 한다. 그나마 자연의 경외감을 느끼며 진정한 자연의 교훈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 했다. 그래서 신의 영역인 하늘이 가까운 곳에서 인간세상을 벗어나려 한다. 모진 고통을 이겨낸 그 결과 하늘길에서 자연이 말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잘 다듬어진 풀밭이 양탄자처럼 우리를 이끈다. 산새소리, 풀벌레 우는소리 이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바퀴 구르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곁에 지나치는 풀밭에 무수한 야생화가 하늘길 시작을 반기는 듯 계속 완만한 다운힐이다. 한편으로는 걱정된다. 내려감은 다음에 오르막이 있다는 것 아닌가? 산악 라이딩은 마치 인생과 같다. 즐거운 내리막이 있는가 하면 고난의 오르막이 있고, 고난에는 고통이 있으나, 기쁨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고진감래 풍진비래(苦盡甘來 豊盡悲來)라고 했던가. 계속 내려가는 오솔길, 그 옛날 석탄을 나르던 트럭의 바퀴자국으로 가운데는 풀이 나 있다.
길의 양쪽으로 나 있는 거친 비포장도로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내리막 라이딩은 밑을 보는 것이 아니라, 20~30m 앞의 상황을 미리 판단해야 위험하지 않다. 워낙 빠르기 때문에 갑자기 상황 변화가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다. 앞뒤의 양쪽 쇽오서버는 연신 충격을 흡수하고 타이어에 튀어 나가는 자갈과 모래가 수없이 바위에 부딪힌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멀리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다. 혜선사 삼거리다. 먼 아래 숲 속에 수줍은 듯 외로운 혜선사가 보일 듯 말 듯, 길가에 핀 노란 야생화는 척박한 땅에서 그렇게 끈질긴 삶을 예쁜 꽃으로 화답해준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된다. 지금 우리는 1,000m의 하늘길을 달린다. 울창한 숲 속에 햇빛은 없고, 숲 속 그늘의 상큼한 테르펜향이 진동한다. 오직 산새들의 지저귐만이 이 산속에 움직이는 생명이 있음을 말해준다.
저 멀리 햇빛이 비치는 앞으로 올라가야 할 길은 한쪽은 산, 다른 편은 천애의 낭떠러지다. 숲 그늘 속에서 한숨 쉬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