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정시인 프로스트가 방황하던 20대 시절에 썼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주었고, 필자 또한 읽을 때마다 지난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다양한 회한을 느낀다.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늘 크고 작은 길을 선택한다. 어떤 때는 사소하고 어떤 때는 삶의 방향이 전환된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난 뒤 되돌아보아 선택이 성공한 경우엔 기뻐하고 잘못된 경우엔 후회도 한다. 하지만 길은 성공과 실패와 같은 극단적 선택의 경우보다는 ‘같은 듯 다른 삶’ 혹은 ‘다른 듯 같은 삶’의 선택인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그의 시가 잔잔한 공감을 준다. 누구나 삶을 뒤돌아보면 잔잔함 속에 역동적인 전환점들도 있다. 어떤 때는 우연처럼, 또 어떤 때는 필연처럼 오기도 하고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강요당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길을 걸어 왔고 그렇게 갈 것이다. 늘 같은 길인 경우가 더 많다. 늘 같은 길이더라도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같은 길은 없다. 어떤 때는 꽃이 피어 있고 어떤 때는 눈길이기도 하다. 똑같은 모양의 은행잎도 없지만 아주 다른 모양도 없듯이 매일이 같을 수도 있으나 똑같지도 않다. 늘 크고 작
시련과 감수는 자연의 법칙이다. 겨울의 혹독한 맹추위를 겪은 딸기가 맛있다. 수많은 망치질을 겪은 칼이 명검이 된다. 이를 재련(再鍊)이라 한다. 자연은 상생상극의 조화로 만물을 육성한다. 상생은 도움을 주고 용기를 주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면 상극은 지적도 하고 힘도 들고 마음이 아프기도 한 것들을 말한다. 이 두 성질이 적절하게 배분된 것이 사물에 대한 자연의 법칙이다. 사물이 아닌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적절한 시련이 내면의 성숙을 만들고 튼튼한 마음의 프레임을 만들어준다. 시련을 만나면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마음이 감수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상극에 의한 시련을 감수하고 극복하고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 상생이다. 이렇게 마음이 상생상극을 거치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요즘은 성숙한 인간형을 만나기 쉽지 않다. 다양한 이유가 있으나 어려서부터 엄마들이 아이가 감내할 시련을 제거해준 이유가 가장 크다. 시련을 경험하지 못하면 감수에 대한 사고가 형성되지 못하고 취사선택에서 주저한다.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포기한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마마보이가 보이는 일반적 문제다.
요즘 대한항공 오너 가족 갑질 문화(?)가 세간의 화제다. 까도 까도 나온다고 양파 갑질 가족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들 가족 행동 양상은 대부분 화를 표현하는 방법에 문제를 보인다. 화(火)는 한의학 용어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오장육부에 모두 화가 들어 있으며 그것은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인간의 온갖 욕심과 감정이 지나치면 나타나는데 그 발동 장소가 모두 다르다. 몹시 화를 내면 간에서 발동하고 자주 화를 낼수록 간이 손상을 받는다. 과음이나 과식을 하면 위에서 발생하며 위장을 해친다. 성욕이 지나치면 신장에서 발생하며 신장이 상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모여서 몸의 군주인 심장에서 화가 발생하면 사망한다.」 즉 현대식 표현으로 심장마비 돌연사이다. 화(火)가 온화하면 온기로 사람 몸의 움직임을 주관한다. 격화되어 지나치면 병이 된다. 화의 성질은 온화하면 생명의 원천이 되지만 강하면 다른 물질(오행)을 태워버린다. 금(金)의 기운을 녹이면 폐가 손상되고, 토(土)의 기운을 증가시키면 비장이 상하고, 목(木)의 기운을 태우면 간이 상하고, 수(水)의 기운을 말리면 신장이 상한다. 따라서 화가 강하면 해로움이 매우 크고 변화가 매우 빠르며 증상이 뚜렷하
며칠 전 약국에 들렀을 때 약사는 조제실에 있었고 대기실에는 다섯 살 정도 여아와 초등학교 2~3년 정도로 보이는 오빠, 그리고 30대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딸이 아파서 약을 타려고 온 듯 했다. 필자도 같이 기다리게 되었고 그동안 본의 아니게 듣게 된 그들의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아픈 딸에게 건넨 엄마의 첫 말은 필자에게 충격이었다. “○○야, 아파서 우울하지 않아? 엄마는 네가 아파서 아주 우울해” 말 한마디에 우울이란 표현이 두 번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아픈 아이를 대하는 엄마는 “많이 아파? 기운 없어? 힘들지? 약 먹으면 좋아질 테니 조금만 참아”처럼 몸에 대한 이야기와 위안을 주는 대화를 한다. 그 엄마는 자신의 우울 원인 제공자인 딸이 우울하기를 바란 듯한 질문을 던져 놀랐다. 그 때 오빠의 말은 필자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엄마가 ○○해주기로 했는데 여기 와 있어서 나는 정말 우울해” 오빠는 ‘우울’이란 표현을 당연한 듯 강조하며 감정을 나타냈다. 불과 3분 동안 그들 가족 대화에서 ‘우울’이란 표현이 10번 이상은 나왔다. 5세 딸도 초2~3년 오빠도 아직 ‘우울’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이다. 그런 아이들이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구속은 신해철 집도의 구속과 다르다. 작년 12월에 발생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신생아 4명 사망사건과 관련된 의료진으로 교수 2명과 수간호사 1명이 구속되었다. 우선 사망한 신생아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오염된 주사제가 투여되어 신생아가 사망한 것은 분명하고도 명백한 의료진 잘못이다. 그 잘못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한다. 법이 지닌 단죄의 기능과 재발 방지의 기능에 의하면 이대병원과 신해철 관련 의료진 구속은 옳다. 하지만 중환자실 근무자와 개인 이익 추구 의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달라야 한다. 법원은 장기적으로 사회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옳은 판단을 해야 하고 전문가는 그런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구속에는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법원이 미흡했고 그런 법원을 설득할 전문가 집단의 대처도 서툴렀다. 장기적으로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목동병원 의료진 구속은 타당하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의료 3D 업종 중환자실 근무자를 구속시키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중환자실과 응급실은 의료 최전선이다. 전쟁에서 최전선 근무자에게 예외적인 혜택이 있어야 병사들이 지원한다. 후방과
모 치과 관련 신문 기사가 눈길을 잡는다. ‘73년에서부터 93년간의 치과대학 졸업자 중 작고회원의 평균 사망연령은 50.2세로 나타났으며, 이 중 혈액암 사망은 유의미하게 다수 포착되었다.’ 2016년 연세대 자료에 의하면 의사 평균수명 61.7세로 일반인보다 낮으며 남자의사 사망 원인은 뇌졸중, 간암, 위암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자료에 의하면 치과의사 사망자 1,000여 명을 분석한 결과에서 사망자 평균연령은 65.2세였다. 모 신문 기사는 50대에 사망한 치과의사의 1인칭 독백 형태로 만약에 살았다면 하였을 일을 적은 글로 공감을 주었다. “△평생 볼 환자는 정해져 있으니 절대적인 환자 수에 욕심 내지 않고 자신 있고 스트레스가 적은 진료를 주로 했을 것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해 왔던 야간진료 대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진료실의 미세먼지, 분진 등 위해요소에 적극적으로 대처했을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가졌던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봉사를 했을 것입니다. △자연과 가족을 벗 삼아 많은 여행을 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보았을 겁니다.” 비록 이 글이 공감을 주
나와 너는 독립 관계다. 그러나 ‘우리’가 되려면 나와 네가 모여야 한다. 그런 ‘우리’ 속 관계는 복잡하다. 친밀한 유대관계, 무관심한 독립관계, 치열한 대립관계 등등 다양하다. ‘우리’는 구성원이 유대관계일 때 큰 힘을 발휘하고, 대립관계일 때 약화된다. 특히 대립관계가 도를 넘어 ‘우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면 치명적인 문제점을 ‘타=외부=적’에게 노출시키기도 한다. ‘우리’ 안에서는 생각도 ‘우리’ 속에 머물기 때문에 상대방이 보는 기준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솝우화 ‘개구리들의 임금님’은 이런 문제점을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매우 평화로운 개구리 마을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 자기들끼리 잘 살면서도 지도자가 있으면 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한 개구리들은 하느님에게 지도자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느님은 지금 잘살고 있으니 그냥 지내라고 설득하지만 개구리들의 강한 요청에 나무토막을 연못에 던져주었다. 개구리들은 처음에는 나무토막을 지도자로 섬겼으나,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알고는 하느님에게 힘세고 똑똑한 지도자를 다시 요청하였다. 짜증난 하느님은 황새를 보내주었다. 개구리들은 아름다운 황새를 칭송하고 기뻐하며 섬겼으나 결국엔 모두 잡혀 먹혔다.』 개구
글을 잘 쓰는 방법 중의 하나로 주어를 잘 정하는 방법이 있다. 주어에 따라서 문장과 문맥 그리고 강조되는 것과 주장하는 것의 강약이 달라진다. 물론 끝맺음도 마찬가지다. 영화 ‘내부자들’의 명대사 중 “끝에 단어 세 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에서처럼 단어 사용 방법에 따라 전달되는 느낌이 달라진다. 말도 이와 유사하다. 주체를 누구로 정하느냐에 따라서 대화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대화 주체는 자신(본인)이다. 본인이 주체가 되어 대화가 진행되면 생각의 흐름도 의도한 것과 무관하게 무의식적으로 자기중심적이 된다. 대화 중에 나와 너로 구분된다. 나와 너로 구분되는 순간 대립관계가 성립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면 대화의 주체가 내가 아닌 상대방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방이 주체가 되면 생각도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띠게 된다. 이때 상대방과 ‘너와 나’가 아닌 ‘우리’의 개념으로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 치과의사는 일단 ‘환자의 욕구’에 의해 환자를 처음 만나게 된다. 환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치과에 내원하면서도 마음은 마치 상점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처럼 흥
환자가 처음 내원하여 상담을 시작하면 필자는 늘 첫마디로 “무슨 일로 내원하셨나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환자에게 내원한 이유를 직접 묻는다. 이런 직접적인 질문에 많은 환자들이 “부정교합을 개선하고 싶어요”라는 답변을 한다. 마치 모범답안을 이야기 하듯이 대답한다. 이 때 필자는 다시 한 번 더 “정교합이 아닌 상태를 부정교합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시험에서 100점인 정교합과 100점이 아닌 모든 점수를 부정교합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답변 말고 무엇을 개선하고 또 고치고 싶으신 것인지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 두 번째 질문에 다수가 “교정치료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답한다. 필자는 다시 “필자는 교정의사여서 교정치료 밖에는 행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저를 만난 것은 교정치료를 위한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는 택시를 타고 어디로 ‘모실까요?’라는 질문에 ‘운전해!’라고 답변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택시의 목적지를 질문합니다. 교정치료는 수단입니다. 수단을 통하여 당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3번째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질문을 3번 받은 환자들은 보통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말문을 닫
‘격동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4.19 이후 군사정권부터 문민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경제적 고도 성장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은 격동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예전에는 경제적인 면이었다면 지금은 정신·정서·문화적인 면에서 격동의 시대이다. 요즘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은 정신문화적 격동의 시대를 보여준다. 미투 사건은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어느 사회든지 비열한 인간들이 있다. 많고 적음이 문제이다. 비열한 인간은 대상에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들이 여성에게 행하는 비열함의 하나가 미투이다. 두 번째 사회적 면에서 보면 한국 여성들이 그동안 변질된 가부장적 폐습 아래에서 고통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가부장 사회의 기본은 가부장의 철저한 도덕성에 기초한다. 그런 사회에서 도덕성 변질은 심한 사회적인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사회는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유교의 도덕성을 기본으로 한 가부장적 사회였다. 유학 중에서도 가장 도덕성을 강조한 주자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학을 전공한 일본인 교수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
청주 치과의사 피습사건에 대해 생각하면서 참담한 심정에 한동안 이 글을 시작하지 못했다. 우선 피해 선생님이 빨리 회복하시기를 기원한다. 2016년 광주에서 발생한 피습사건 이후 2년 만에 재발한 흉기 피습이므로 걱정이 앞선다. 광주와 청주라는 연관성이 없는 지역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우연적 일과성이 아닌 향후 전반적이면서 반복될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하기 때문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 글이 치과의사들에게 범인들의 심리상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다시는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발생되지 못하게 예방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두 사건을 비교해보면, 크게 범인이 흉기를 사용한 점, 40대와 60대의 성인남자, 지속적인 불만을 토로해온 것, 치료 중인 의사를 뒤에서 공격한 것 등이 유사하다. 이 4가지 요소를 분석해보면, 40대 이후의 성인 남자가 등 뒤에서 흉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상대가 강자이고 자신이 약자라는 동물적 본능을 암시하고 있다. 이 두 사건의 두 번째 유사성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범인들은 자신들의 요구나 주장이 더 이상 개선될 객관적 가능성이 없음을 인지했기 때문에 미리 흉기를 준비하고 피해자들이 모르게 접근해 가
시대가 변했다. 무술년 첫 번째 이슈가 ‘me too’로 시작되었다. 시대의 변화는 생각과 사고의 변화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세대는 과거 자신들의 사고를 바꾸지 못하여 습관적으로 상투적인 말과 행동을 행하지만 이미 시대는 인정하지도 용서하지도 않는다. 예전이었다면 올림픽 남북단일팀이라는 정치적 이슈가 나오면 막연한 기대와 희망의 이슈가 되었지만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이라는 구세대의 정치적인 판단은 2030세대의 강한 저항을 직면하고 놀랐을 것이다. 그들은 남북단일팀의 정치적인 목적보다 그동안 선수 각자가 노력해온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me too’도 이런 생각 변화의 선상에 있다. 조직이나 사회 권력을 등에 업고 개인의 가치를 침해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에 가능하다. 예전이었다면 평창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뒤쳐진 한 명의 선수를 버리고 오는 것도 불가능하였지만 해명 기자회견에 그 한 명이 참석하지 않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평창올림픽 여자 팀추월 사건은 확실하게 시대가 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변화에 대한 각 세대 간의 인식 능력 차이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감독은 과거의 행태를
미국의 시인, 작가, 배우, 가수, 인권운동가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여성 중 한 명이며 오프라 윈프리의 멘토였던 마야 안젤루는 자신을 만든 사람이 엄마였다고 했다. 그녀는 부모가 선택해 하는 말이 자녀에게 강한 영향을 준다고 하면서 “말은 몸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희망적으로 만들고, 행복하게 하고, 높은 에너지를 갖게 하고, 놀랍게 하고, 재미있게 하고, 명랑하게 만들어준다. 반면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말은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못마땅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마침내는 아프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마지막 저서인 ‘Mom & Me & Mom(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엄마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준다. 일상에서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나이는 10대이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부모들이 이해하고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0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일단 10대의 대부분은 성숙하지 않은 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뇌의 감정중추는 12세가 되어야 발달하고 감정중추가 발달해야 EQ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10대의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중, 스마트폰 진동이 온다. 집에 도착할 시간과 필자가 탈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할지 가르쳐준다. 필자의 이동 방향과 위치를 파악하여 구글신이 가르쳐준다. 필자는 구글신(神)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신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인류에 등장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예언으로 신의 영역이었다. 그런 신의 영역이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왔다. 역으로 보면 신의 영역이 줄어들었다. 모든 종교의 신들은 인간의 한정된 수명에 따른 죽음이라는 미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글신은 반대로 철저하게 지금과 현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신앙을 강요하지도 않고 헌금도 없다. 하지만 개개인 각자의 삶 속에 점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특히 청소년에서는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가 많다. 구글신은 일반 종교의 신들과 달리 응답이 빠르고 생리학적으로 바로 전두엽에 도파민을 생성해준다. 이것이 구글신 즉, 인터넷교로부터 탈출하기 힘든 이유이다. 마약중독이나 도박중독과 같은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뇌는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마약이나 도박은 뇌에 행복과 만족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을 과다분비하게 하여 뇌의 전두엽을
모 방송국 개그 코너를 보고 요즘 젊은이들 생각이 기성세대와 너무도 다른 것을 실감했다. 최근에 개그 코너를 보면서 젊은 층의 유머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간간히 젊은 세대의 생각을 엿보기 위해 일부러 보기도 한다. 얼마 전 한 개그맨의 멘트 한마디가 세대 간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주제는 “왜 졸업식 날이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고 했을까?”였다. 답변은 “돈이 많이 안 들어서”라고 했다. 그들은 진짜 짜장면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2학년인 1970년에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278불이었다. 고3이던 1980년에는 1,559불이었다. 70년대에 국민소득 1,000불에 100억불 수출이 국가의 목표였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수제비를 먹었고 심지어 국가에서는 분식장려운동과 혼식장려운동까지 했었다. 그 시절 짜장면은 외식의 대명사였고 외식은 1년 중 큰일이 있을 때만 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가장 큰 행사인 졸업식에 짜장면을 먹었다. 짜장면을 가장 싼 음식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는 지금 세대가 이런 사정을 모르니 그리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개그를 보던 필자의 마음은 씁쓸했다. 요즘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