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1853-1890)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필자의 2017년 새해 첫날은 시작되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는 ‘야구장 안 전시관’이 있다. 작년 이곳에서 우연히 들른 클로드 모네 전시회가 유익해서 이번에는 작정하고 반 고흐의 인생을 알아보기 위해 갔다. 공교롭게도 모네와 고흐는 유명한 인상파 화가였지만 서로 정반대의 인생을 살았다. 돈, 명성, 건강, 사랑 등이 모네에게는 모두 있었지만 고흐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화가와 치의는 별개가 아니기에 치과의사의 인생은 어떠할까 새해 벽두부터 곰곰이 생각해본다. 고흐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는 무엇인가를 이미 완벽하게 발견했다고 말하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끝없이, 치열하게, 철저히 탐구했다. 어떤 치과의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듣곤 한다. “나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에 자신이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영화 킹스맨의 대사를 이렇게 바꾸어 속으로 되뇌어 본다. Manners makes man but mannerism spoils the dentist. 고흐는 예술만이 아니라 인생도 탐구했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는 촛불시위를 지켜본 한 독일외신이 나름대로 분석을 내놓았다. 독일 차이퉁지 언론사 기자는 “어떻게 하면 최고 권력의 부정과 무능을 평화적이고 규율을 지키면서 바로 잡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며 “멀지 않은 과거에 독재를 경험한 한국에서 수준 높은 시위와 민주주의를 보여줬다. 오히려 민주주의 역사가 긴 유럽과 미국이 배워야 하겠다”라고 하면서 “한국의 광장과 거리는 의견을 나누고 표현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아고라가 되었다”라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논평도 함께 실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는 아고라에서 참정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 자기의사를 반영시킬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는 의사결정과정에서 말솜씨가 뛰어난 소수에 의해 다수가 생각 없이 설득당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중우정치(衆愚政治 :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를 말함)가 이뤄지는 문제점이다. 심지어 플라톤 같은 철학자는 최초로 직접 민주주의를 시도한 아테네의 몰락 원인으로 중우정치를 꼽았을 정도다. 그는 폐단을 ‘첫째로 대중적 인기에 집중하고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이라 하고, 둘째로 개인의 능력과 자질 그
해방 직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다이아 찡’이라는 약을 상비약으로 가져왔는데 이 약은 폐렴, 임질, 이질, 설사, 곪은 곳에 특효약이었다고 한다. 변변한 약이 없었던 시절에 새로운 획기적인 결과에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되면서 시장에서도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으며, 경험적 기억으로 먹으면 무언가 건강해질 것 같은 약으로 각인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염에 대한 살균제였고, 약에 대한 내성이 없을 때라 어떤 상황에서도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 한국전쟁 후에는 내성환자가 생기게 되면서 치료가 잘 안 되는 환자들에게 ‘페니실린’을 투여하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다시 경험하게 됐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페니실린은 항생제다. 여러 감염을 단숨에 치료해 사람들의 기억에 무한한 신뢰를 주면서 상처가 나면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하고, 감기로 열이 나도 당연히 항생제 주사 한방을 맞아야 했다. 이런 기억과 경험으로 ‘마이신’ 하나면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낸다는 이야기와 적응증과 관계없이 무조건 마이신을 찾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피곤하거나 몸이 안 좋은 것 같을 때 ‘링게루’를 맞으면 몸이 날아갈 듯이 좋아진다고도 했다. 포도당이나 아미노산도 그
아는 후배로부터 급히 연락이 왔다. 60대 환자 단순발치를 한 개 했는데 며칠 후 상태가 급속히 악화돼 대학병원 구강악안면외과를 거쳐 감염내과에 입원했다고 한다. 원래 신장과 심장에 기저질환이 있었는데 바이탈마저 우려됐다가 고비는 넘겼다고 한다. 환자 가족들이 몰려와 항생제 처방을 안 해줘 이 지경이 됐다고 여러 차례 난리를 쳤단다. 후배는 멘붕(정신이 무너진) 상태였다. 나는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배상은 보험사에 맡기면 되니 행패엔 담담히 대처하라고 일러뒀다. 발치는 치과의사라면 매일 밥 먹듯 하는 안전한 수술이다. 중국오지의 발치사(치의 없는 지역에서 발치만 전문으로 하는 기능사)가 완전 멸균이 안 된 기구로 시술하고, 남미에선 토픽뉴스에 나올 정도로 진료봉사 때 동산만큼 발치를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치의에겐 진료의 중심이고 그 자체로 생명의 근원이던 치아가 수(壽)를 다해서 악의 근원이 되면, 발치할 때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사자의 마음, 여우의 말, 원숭이 손으로 소임을 마치면 조폭두목 잡은 검사의 기분이 된다. 그러나 그 안전한 발치가 간혹 사람을 잡는다. 최악은 사망이다. 발치 후 급격한 전신악화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드라마
먹튀라는 말이 유행했던 때가 박찬호 선수의 연봉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때 먹튀는 외국에서 외화를 벌어오는 참한 먹튀였기에 우리들에게 다소 귀여운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 치과계의 먹튀라니? 오래 전부터 임플란트는 이벤트성 덤핑 할인행사가 있어 왔고 지금도 지하철역마다 임플란트 60만원 대의 시술비를 외치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같은 의료인 입장에서 볼 때 그 치료비에 어떻게 임플란트 시술이 가능한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 내막을 알고 보니 환자는 싼 시술비에 혹해서 내원하게 되고 병의원 측에서는 다양한 내용의 픽스쳐 및 상부구조, 뼈수술 등으로 차등을 두어 환자들은 결국 100만원을 훨씬 상회하는 청구서를 받아들게 된다.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먹튀치과의 사기행각은 치과의사의 짓이 아니고 사무장의 사기극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두 사람 다 잠적한 상태여서 그 속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사무장이야 계획적으로 했다 하지만 먹튀 후 뒷감당을 해야 할 대표원장도 있고 페이닥터들도 여러 명 있었는데 그런 터무니없는 치료비 구조에서 얼마나 버틸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는다. 치료비 먹튀! 그 발상이 기발하기도 하지만 피해자들은 그런 터무니없는 치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다른 뉴스는 묻히고 온통 이 얘기뿐이다. 잘못 뽑은 대통령으로 인해 모든 국민이 힘들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것은 촛불민심이 국회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의원들도 있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지만, 국회의원들이 가장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민심인 것은 국민들의 투표로 인해 선출된 선출직이기 때문이다. 치과계도 드디어 회원들이 직접 우리의 수장을 뽑는다. 2014년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회장단 선거는 4월 대의원총회 당일 선거인단제로 뽑았지만, 내년 3월에는 회원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잘못 뽑은 책임으로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야 하는 작금의 사태에서 교훈을 얻듯이, 치과계도 많은 현안들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하는 협회장을 뽑을 때 혈연, 지연, 학연을 탈피하고, 치과계의 수장으로서 꼭 필요한 일꾼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출마하는 회장과 3명의 부회장 후보들은 다양한 회원들의 뜻이 반영될 수 있도록 공약을 준비 중일 것이다. 과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회원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정책이 되도록 힘쓸 것이다. 직선제의 힘이다. 이번에 바뀐 또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가결됐다. 아직 헌재의 결정이 남아있지만, 오로지 촛불시위의 힘만으로 이런 큰 변화를 가져온 것에 대해 놀랍다. 과거엔 처벌받지 못하고 묵인되어왔던 여러 형태의 권력형 비리와 비자금 조성들이 국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표출된 촛불시위 앞에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 처음 촛불시위 때, 2만명으로 시작해 6차 촛불시위 때는 200만명으로 참가자 수가 늘어났다. 6차까지 촛불시위를 거치는 동안 참가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더 위대한 점은 평화적인 시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놀라고 있다. 분노를 축제로 승화시킨 한국형 촛불시위!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인내력, 단결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자부심이 느껴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던 살벌한 폭력시위가 한국을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한국은 역시 후진성을 면치 못했구나” 하는 무시를 당해왔고, 무역에서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갑자기 이렇게까지 비폭력으로 바뀐 것은 다양한 계층과 가족들의 참여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세상 어느 곳에서
이제 2016년 한해가 저물고 2017년 새해가 밝아오는 시점이다. 새로운 한해에 대한 부푼 기대와 희망에 가득 차 있어야 할 시기에 2017년의 의료계의 방향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국민의 삶에 있어서 ‘의료’와 ‘건강’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고, 보건의료기본법에서는 ‘보건의료를 통해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 개개인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며, 보건의료의 형평과 효율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기본이념을 정의하고 있다. 보건의료기본법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건강권’을 강조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 장과의 협의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건의료발전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 정부는 물론이고, 이번 정부 역시 보건의료발전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법으로 세우도록 규정한 보건의료발전계획이 없다는 것은 국
여성은 수 세기 전부터 치과 치료를 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는 문헌상의 언급은 빈약하지만 14~15세기 그림에서 여성 치과의사가 진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 속에 특출한 여성 치과의사는 없을지 몰라도 묵묵히 치과의사로서의 임무에 충실한 여성들의 숫자는 밤하늘을 수놓는 이름 없는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최초에는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한국인 최초의 여성 치과의사는 누구일까? 1925년 경성치과의학교를 졸업한 강흥숙과 김름이가 그 주인공이다. 1940년 만주에서 개원했다는 김름이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지만 부산에서 개업한 강흥숙은 여성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음을 신문 지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25년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직업에 첫 거름’에서 두 분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시야를 넓혀 다른 나라를 살펴보자. 세계 최초의 여성 치과의사는 1865년 미국 Ohio Dental College를 졸업한 Dr. Lucy Hobbs(1833-1910)이다. 미국여자치과의사협회는 매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여성 치과의사에게 Lucy Hobbs T
우리는 일이 풀리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늘을 쳐다보며 답을 구하고자 할 때가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지극히 헤쳐 나갈 방도가 없을 때면, 막연한 바람으로 하늘에 계신 어떤 절대 권력으로부터 신통한 해결책이 뚝 떨어지지 않나 싶은 심정에서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요즈음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저절로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파란 가을 하늘엔 어떤 희망 대신 국민들의 원성과 한숨이 가득 배어있는 낙엽들만 떨어지고 있다. 해도 해도 안 되고, 안 되는 이유도 모른다면 정말 답답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 지역 최고 원로 선배님께서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나가보니 “오늘로 치과를 접게 되었다”고 하시며 겸연쩍어 하시는 눈가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아직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였고, 젊은 후배에게 자리를 넘겨 주고 나오는 서글픈 표정도 엿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선배님은 1세대 은퇴 그룹에 속하고, 검진 기관에서 나름 경쟁 없는 노후를 보내셨다. 몇 년 뒤 베이비붐 세대 원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때,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검진기관 일자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이미 나이든 노인 치과의사들의 몫이 아닐 것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 결의로 내년부터는 직선제가 전면 실시된다. 치협 유사 이래 대의원에 의한 간선제는 극소수 몇몇의 축제였지만 이제는 전 회원이 참여하는 성대한 축제의 한마당이 됐다. 이미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직선제를 실시해봤고 또 의외의 인물이 급부상하는 등 예측불가의 결과도 있었으며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겪으면서 몇 번의 번복도 있었다. 우리도 그 모습을 지켜보며 직선제에 관한 부작용은 많은 부분 예상하고 있지만 진정 민의를 대변해주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예측 불가능한 의외의 변수가 나올 수 있는 전면적인 직선제보다는 대규모 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를 선호했다. 하지만 다소간의 부작용이 있다하더라도 언젠가는 직선제를 선택해야만 할 일이었다. 수년간의 연구와 우여곡절 끝에 올해 초 총회에서 회원에 의한 직선제가 채택됐는데 이는 대다수 회원의 직선제 염원이 워낙 컸기 때문이며, 기득권을 버리고 대한민국 치과계의 백년대계를 위해 과감히 전면적 직선제를 채택한 2016년도 치협 대의원과 치협, 지부, 각 분회 임원의 노고가 가장 크다 하겠다. 직선제 선택은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이지만 직선제를 실시
제1차 세계대전 중 치과가 미국 일반 의학계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치과의사(구강외과의사)들이 악안면 손상환자 처치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공식적으로 5,000여명의 치과의사들이 참전하여 안면골 골절수술 2,000건, 하악골 총상 1,123건, 골이식 125건을 기록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2차 대전 중에는 성형외과, 구강외과, 간호사, 마취사로 구성된 악안면손상 외과팀이 야전병원에 배치됐다. 전쟁 후, 전쟁외과의 발전에 자극돼 치과계에서는 새로운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이 정립됐다. 이는 1946년 창립된 미국 구강외과학회의 요구조건을 이수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1950년 미국 육군 치무대장 Smith는 피츠버그 치과대학 및 가맹병원과 협력해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때 배출된 치의들이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한국의 구강악안면외과 발전에도 기여한다. 필자도 30여년 전 강원도 현리 제102 야전병원 군의관 시절, 전쟁 상황 시와 비슷한 악안면 손상환자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후송계로가 12사단·21사단 치과, 원통 이동외과병원에서 응급처치된 환자가 왔고 여기서 필자가 해결 못하면 국군원주후송병원, 수도통합
의료보험제도 도입초기 치료재료는 실구입가로 책정이 돼 구입금액을 인정했으나 현저히 고가인 경우에는 전체 병원의 평균이나 최저금액을 기준으로 조정한다는 원칙으로 제도를 운영했다. 1984년부터는 사용빈도가 높은 치료재료의 경우 ‘협약가’라고 해서 진료비심사기관장과 의료단체의 장이 협약한 가격으로 정해 금액을 책정했다. 1998년에는 단일상한가라고 해서 해당제품의 경우 단일상한금액을 정한 후 금액 범위 내에서 구입한 실거래가로 금액을 책정했고, 2000년 11월 1일부터는 정액고시 품목을 제외한 상한금액 범위 내 실구입가 상환제도로 운영하게 된다. 협약가제도에서 문제는 협약가로 그 재료를 구입할 수 없다는 시장가격이 문제가 됐다. 특히 치과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크게 다가왔는데 치과재료의 경우 다양한 종류가 소량으로 사용되고 술자의 선호도에 따라서 타제품으로 대체하지 않고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의과의 경우 단가가 맞지 않으면 타제품을 사용하면서 협약가 내에서 공급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치과에서는 협약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구입해서라도 일단 진료를 하고 실제 상환은 협약가로 받다보니 금전적 손해가 발생했다. 또한 같은 재료라도 급여와 비급여에서 같이 사
개인적으로 최근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지나친 권한을 가지게 되면, 왜 타락하게 되는가’라는 문제다. 그것도 ‘거룩’과 ‘성결’을 생명같이 여기는 종교적인 곳에서 조직운영의 권한이 집중되고,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이것을 공적인 자산으로 민주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사적으로 유용한다든지 제왕적으로 관리하다가 결국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무너져 내린 경우를 만나면서 생긴 의문이다. 양심과 이성에 입각한 조직관리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면 보통의 사회조직이나 기업조직, 정부조직에서는 더 심각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하여 인류의 역사는 ‘제도’와 ‘법’을 만들었고, 이것이 우리 인간의 죄성과 나약함을 제어하게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치사회의 구축이다. 윤흥길 작가의 ‘완장’은 80년대, 태생부터 잘못된 권력을 야유할 속셈으로 집필했다한다. 완장 속의 주인공인 임종술은 본인에게 주어진 저수지 감독관이란 완장이 사용하기 나름으로, 서푼과 천금 사이에 걸친 무한한 가능성임을 깨닫는다. 종술의 어머니 운암댁은 완장은 원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그런데도 완장이란 것이 하늘같은 벼슬이나 딴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이건 아니잖아!” 얼마전 개그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멘트다. ‘아니요’라고 거절하는 것에 유달리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기왕에 ‘이건 아니잖아’라는 거절의 유행어가 나왔으니 이것을 잘 이용한다면 부드럽게 거절하는 예스맨이 될 수도 있겠다고 혼자서 생각해본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부모님, 선생님, 주위 어른들에게 순종을 강요받는다. 조금씩 눈뜨는 자아를 억제하면서 제도권의 울타리 속에 기꺼이 안주하는 아이들은 착한 아이들이다. 이들에겐 여러 가지 달콤한 포상들이 주어진다. 칭찬, 용돈, 보호막 등이 그것이다. 이른바 착한 아이 콤플렉스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착한 아이 가면을 쓰고 내면의 소리는 무시한다. 아이에게 주어지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아이들이 하나씩 선택하고 여과해서 개개인에게 맞는 창조적 삶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생략되고, 기성세대들의 경험 울타리를 절대 불변의 막강 진리인 양 강요받는 정신적인 종속에 이르게 된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일류 학교에 입학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기르고, 집을 사는 것들이 사회통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