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촉탁의’란 무엇일까? 갑자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치과의사들은 이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를 것이다. 필자도 대한여자치과의사회(이하 대여치)의 정책연구팀으로 참가하면서 ‘치과촉탁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올해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시설에서 의사, 한의사뿐 아니라 치과의사도 촉탁의로 활동할 수 있다. 시행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대한노년치의학회의 연구를 바탕으로,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대여치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제도가 잘 정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대여치의 정책연구팀은 2박3일의 여정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2014년에 이미 65세 이상의 인구가 총 인구의 26%가 되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 2025년에는 65세 이상이 30%가 된다. 즉 약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되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의 심각성에 대해 많이 들었으나, 직접 보고 느끼면서 앞으로 우리가 시행해야 할 치과촉탁의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첫째, 치과촉탁의란 요양기관에 가서 단순히 예방차원의 지도만으로는 요양기관에서 필요한 실질적인 효
좋은 의사를 양의(良醫)라 하고, 유명한 의사를 명의(名醫)라 한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명의는 ‘이름이 드러난 의사’라는 뜻이고, 양의는 말 그대로 ‘좋은 의사’라는 뜻이다. 양의나 명의 모두 사회가 바라고 아끼는 존재이다. 옥편을 보면, ‘名’은 저녁이 되어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헛기침을 하면서 말소리로 “나는 김 아무개요”, “나는 이 아무개요”라고 자기를 밝히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고 보니 ‘명’은 남이 나를 알아보라고 내가 나를 초들어 일컫는 말인 셈이다. 그렇듯, 유명한 사람은 남이 알아내기도 하고 스스로가 밝히기도 해서 생겨난다. 세상이 개명되어서 인지, 요즘 신문이나 잡지를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노라면, ‘명’자 붙은 게 많은데 놀란다. 명의, 명약, 유명처방, 유명병원에서 시작하여 명사, 명문학교 등 명자 붙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뿐만 아니다. 세상은 지금 온통 최첨단, 최상, 최신, 최초, 최고, 제일, 극대화 등 최상급 형용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이나 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남에게 뒤질세라 선두 다툼질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높은 것 (至高)’에 사
치과 개원의로 살다보면 때론 아오이처럼 냉정한 모습이, 때로는 준세이와 같은 열정적 액션이 필요하다. 치과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시기 적절히 오가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냉정해야 할 상황에 뜨거운 열정을 보이면 피곤의 연속에 빠져들고, 열정을 다해야 할 때 냉정하게 바라만 본다면 빈곤의 나날을 보낸다. 지난 15년 동안 개원 생활에서 터득한 필자의 깨달음이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개원 초기 흥행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처럼” 냉정한 마음으로 영화도 보고 원작도 읽었다. 아오이와 준세이의 사랑에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었지만 결국 극복하며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었던 것처럼 치과개원 생활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영화 속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애절하고 감미로운 첼로 선율과 피렌체 이곳저곳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당장이라도 이탈리아행 항공기에 탑승하고 싶은 열정을 솟구치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이 열정을 주로 이기는 편이라 바로 실행은 못한다. 하지만 버킷 리스트에 ‘피렌체 여행하기’를 추가함으로써 다소나마 위안을 삼는다. 영화에서 준세이는 오래된 회화를 복원하는 ‘고화복원사’다. 굉장히 생소하게 들리지만 고화복원사는 죽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에, 만났던 협회 이사의 전화에 불법 네트워크 치과에서 뿌린 로비성 자료에 대한 주요 일간지 기자의 확인 전화가 빗발 쳤고, 그 소리가 귀에 포성처럼 들리는 것을 보면 치과계가 전시상태임이 분명한 것 같다.연초에 선배 전화를 받았다. 모 치과전문지 기사의 진위를 알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평소 보지 않던 인터넷 신문인지라 일부러 들어가 보았다. 창간 특집으로 서울 등 수도권 치과 56곳에 대한 최근 3년간의 매출액 분석 기사였다. 평균 월 매출액이 2013년 연간 4,747만원에서 2015년 4,084만원으로 줄었는데, 비급여부분이 감소가 주원인이고,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는 의원일수록 감소폭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서울 등 수도권이라는 곳이 어디인지, 56곳이 전국 혹은 서울이라도 대표할 수 있는 집단인지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근거를 밝히지 않았고, 자료가 국세청 자료인지, 보험공단 통계인지, 그냥 원장에게 물어본 것인지조차 밝히지 않았으며, 당당하게 기사화 할 수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근거 없는 기사로 선배처럼 상처받은 치과의사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매출이 줄어든 것도 맞고, 신규
대부분의 치과원장들은 고용주 입장에서 2016년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알고 있을까? 2016년 최저임금은 2015년보다 8.1%가 인상돼 시급 6,030원, 월급 126만27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월급으로 하는 경우 유휴수당 등이 포함되므로 실제 근무한 시간보다 급여를 더 계산해 지급해야 한다. 최근 연도별 최저임금 인상률은 6.1%(2013년), 7.2%(2014년), 7.1%(2015년)였다. 치과건강보험 수가 인상률은 2.7%(2013년), 2.7%(2014년), 2.2%(2015년)였고, 2016년에는 1.9% 인상됐다. 최저임금은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최소한의 시급이 이 정도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법적 강제제도다. 최소한의 시급을 법률로 강제해, 근로자를 고용하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아무 일을 시키지 않아도 고용상태에 있으면 지급해야 하는 금액인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재산이 많아 다른 소득이 있다 해도 그 금액은 지급해야 되는 것이다. 즉 최저임금은 생활안정을 위한 의미도 있지만 노동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수준의 금액을 정하는 것도 있다.병원입장에서 매년 정해지는 환산지수가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과 같은 것이다. 최저임금에 대해
“나, 쌍둥이 아줌마야. 알아보겠어?” 음색은 예전 그대로였다. 다만 세월의 무게가 점점이 뽀얗던 피부에 내려앉았다. 45여년 만인가, 치과에서 특별한 환자분을 맞이했다. 독일 간호사로 나간 후 사촌형과 이혼하고 그대로 독일에 눌러앉은 형수였다. 사촌형은 10년 전 돌아가셨다. 초등학생 때 나의 엉덩이 종기를 보아주던 형수. 입안은 깨끗했다. 게르만인들 속에서 버텨낸 체력의 저력인 듯 했다. 부담 없이 차라리 잘된 생각이 들었다. 전문용어와 진료비가 개입될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치아 나이는 40대시네요” 민망함을 감추고 구강검사를 핑계로 불쑥 온 형수에게 자존심을 지켜주느라 무심결에 그랬나? 인간 정리(情理)상 그대로 보내면 후회가 남을까봐 점심을 마주했다. 긴 세월이 흐르면 각자 기억되는 것도 다르나 보다. 형수는 필자가 초등학교 졸업식 때 대표로 상 받는데 참석한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단다. 찾아 갈 때마다 김치찌개를 푹 끓여주고 용돈을 챙겨주셨으니 점심을 많이 드시라 했다. 형수는 독일에서 내과병동에 장기근무 하다 비뇨기과 외래로 옮겨 근무했다고 했다. 은퇴 후 병원주택에서 연금을 받으며 지내는데 일 년에 한번 한국에 올 여유는 된단다. 조카를 데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는 과거에는 회원의 관리 정도가 주 업무였지만 지금은 회원관리를 넘어 회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다양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회원고충처리위원회 활동이나 우리동네 좋은치과 사업, KDA 덴탈잡, 치과의료정책연구소의 활동들, 그리고 새내기 치과의사를 돕는 ‘덴탈 시니어 오블리제’ 같은 사업은 물론이고 각 위원회의 활동과 협회장을 포함한 임원 30명의 활동도 그 맥락에 있다고 본다. 또 최근에 개설한 콜센터도 회원을 보호하고 도와주기 위한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치과의사 수가 적고, 경기가 좋았을 때는 개원하고 치과를 운영하고 은퇴하는 것까지 모두 개인이 진행하는 것이 당연했다. 개원도 본인이 혼자 혹은 소개받은 치재상의 도움으로 대충 개원지를 정하고, 장비를 리스하고 인테리어 공사 후 오픈하면 대부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자리를 잡았다. 간호조무사 인력을 고용해도 문제가 없었기에 직원 구직도 어려울 게 없었다. 환자와의 관계도 지금보다는 좀 더 친밀했는지, 진료와 관련된 오해나 소송도 별로 없어 치협의 도움을 요청할 필요성을 크게 못 느꼈을 것이다. 은퇴의 경우도 그렇다. 보통은 개원한 자리에서 본인이 힘들 때까지 진
10여 년 전부터 치과대학 입학 정원 감축에 관해 글을 여러 번 써왔으며 올해 2월에도 입학 정원 감축을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 10여 년 전부터 추진했어야 함에 만시지탄의 느낌도 있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지난달 말에 협회, 한국치과대학장협의회, 치의학전문대학원장 협의회 간의 워크숍에서 치과의사 인력 수급에 관한 국내외 동향에 관해 심도 있게 토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걸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국회 상임위 여야 측과 복지부와 함께 치과대학 정원 감축에 관해 심도 있게 논의했으며 국회 측과 정부 측 모두 공감한 바 있다.당장 시급한 치과의사 인력 수급에 관한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첫째는 치과대학 입학 정원 감축과 10%의 정원 외 입학 감축이고, 둘째는 외국 치대 졸업생들의 국내 유입 문제와 셋째는 국내 치과의사들의 외국 진출 문제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인구 감소가 예상되기에 우리들에게 의료 인력 수급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지난 20여년 세월 동안 필리핀을 비롯한 유럽, 남미 등지에서 유학한 많은 치과의사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어 이래저래 국시를 통과하고 치과의사 면허증을 받은 사례가 많이
연말이 되면,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서로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그것을 저지하려고 하는 난투가 벌어지곤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난투는 없어졌다.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법이 있어서 여당과 야당이 가능한 합의하도록 규범을 만들었다. 개개인들의 국회의원들은 착한데, 집단이 되면 매우 투쟁적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노동법개정을 둘러싸고도 정부와 노조간에 갈등이 심하다. 시위를 하다가 경찰차를 파손하는 위법을 저지르기도 했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군중이 되면 개인으로서는 하지 않을 폭력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개인은 도덕적인데 집단이나 사회는 비도덕적이다’라고 한다. 미국의 학자 중에 라인홀드 리버(1892-1971)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통해 개인보다는 집단 혹은 사회가 더 악하다는 것을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즉 개인은 그래도 양심이나 동정심, 염치, 합리성, 자존심 등이 있어서 못된 짓을 하려고 하다가도 악을 표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이 되면, 집단의 이익과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악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前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민주화의 초석을 만들었고 대한민국 前 대통령이었던 고인께 삼가 조의를 표한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은 고인의 정치적 이념으로써 이제 고인의 평생 살아온 길들을 되돌아보면, 확실히 그 신념으로 일관하였던 것 같다. 야당으로 살아오다가 문민정부의 첫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민주화를 고착시키기 위해, 부패척결과 개혁정책을 통한 신한국창조를 국정 목표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시행, 공직자 재산공개, 군의 정치개입 차단 등을 추진하고 5·16과 12·12 사태를 쿠데타로 공식화했다.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95년 12월 노태우 전 대통령을 부정축재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12·12 군사반란 및 5·18 관련 주동자로 사법 처리하여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물론 IMF와 김현철 비리 개입사건 등 실정들도 많았지만, 새로운 문으로 들어설 때, 자신의 신념에 어긋남이 없다면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점을 본다면, 大道無門의 길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김대중 前 대통령과 함께 경쟁적 협력관계로 양 김의 카리스마 정치시대이자 보스 정치시대를 이끌어왔었다.문민정부 이후부터 지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 서비스 질을 향상하자!” 몇 년 전 대형 병원에 있었던 캐치프레이즈다. 이 표현이 맞는 말인가? 혹시 ‘환자’를 고객으로, ‘의료서비스’를 서비스로 잘못 쓴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 사람은 없었을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서비스’라는 외래어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부터인지 궁금해진다. 서양의료 시스템이 정식으로 도입된 시기는 19세기 말부터인 일본의 식민통치 시대다. 그 당시인 1930년대 우리나라 상업계에 처음으로 각종 ‘서비스 걸’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서비스라는 용어가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병원에서 서비스라는 용어가 사용된 기록은 없다). 이후 미군정 시에도 “서비스가 좋은 곳”이라든지, “그 다방의 아가씨는 서비스가 좋다”라는 상업적 이미지로 우리 국민에게 인식돼 왔다. 하지만 서비스(service)라는 단어의 유래는 고 프랑스어인 service, 라틴어인 서르비띠움(servitium-slavery)으로 신에게 봉사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던 것이 19세기에 이르러 종교적 의미보다는 남에게 베푼다는 의미로 서비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현대는 주로 세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어릴 땐 부모 말, 커서는 부인 말, 늙어선 자식 말을 따라야 행복하다고 한다. 그저 우스갯 소리로 흘려버리기엔 너무 주옥같은 명언이다. 영화 ‘사도’를 보면서 이 말의 효험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도에 대한 평은 가지각색이지만 영화의 백미는 영조, 사도세자, 세손이 내뱉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였던 것 같다. 특히 세손은 사배(四拜)한 이유를 묻는 영조의 물음에 “그날 소손은 제 아비의 마음을 보았나이다”라며 현답을 내놓았다. 치과의사학에 심취되어 기승전치(齒)의 삶을 살고 있는 필자의 눈에 비친 영화 사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4~5세가량 되어 보이는 사도 세자가 손가락을 빨면서 잠자는 모습이 영화에 잠깐 스치듯 지나간다. 아마도 추측컨대 영화 제작진은 과도한 학업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사도세자의 마음을 손가락 빨기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왕가의 법도 때문에 친엄마(영빈 이씨)랑 하룻밤도 같이 보낼 수 없어 정신적 불안감도 겪었을 사도세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영화는 마치 과거와 현재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들린다.사도세자의 손가락 빨기 잔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연히 ‘조선의 민낯(애플북스)’이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60을 갓 넘긴 친구끼리는 우리세대를 ‘낀 세대’라 한다. 위로는 부모님을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고, 아래로 자식에게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음세대가 될 것이라 한다. 개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40여 군데 선배명단 들고 인사 다니느라 발품 팔던 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지금은 옆에 들어온 후배들 얼굴을 모른다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개원하던 시절은 주위시선이 무서워 속 태우면서도 광고를 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 전단지라도 돌렸던 친구들은 윤리위원회에 불려가기도 했고, 동문선배들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사과문까지 내며, 한동안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았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6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학교 로고가 새겨진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고 민원이 제기되어 불려온 갓 개원한 회원은 “동료들하고 같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선배 위원들의 지적에 잘생긴 외모만큼 능숙한 언변으로, “그것은 선배님들의 생각이지, 제 생각과는 다르니 처벌을 준다면 받겠습니다.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겠습니다”라며 오히려 우리를 설득하려 할 때,
의료법 제45조 및 의료법시행규칙 제42조2에 의해 비급여진료비용은 환자에게 고지해야 하고 제증명수수료는 게시하여야 한다. 원내에서 고지·게시하고 홈페이지가 있으면 공개해야 한다. 비급여 진료비용에 대한 내용을 다시 보니 2012년 10월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국민의 알권리 및 의료선택권 보장을 위하여 공개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공개범위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배경이 되었다. 2010년 의료법시행규칙에 고지하고 게시해야 한다고 명문화한 규정만으로는 국민들이 알기 어렵고 의료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았다고 나라님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2013년 1월부터 심평원 홈페이지에 비급여진료비용을 공개하기 시작하였고, 상급종합병원 29개 항목을 시작으로 하여서 점점 그 범위와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같은 해 10월에는 치과대학부속치과병원을 포함하여 치과임플란트 수가가 공개되었고, 올해 9월에는 고지지침을 만들어서 치과병원까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치과에서는 광중합형복합레진충전, 임플란트, 제증명수수료, 상급병실료와 더불어 이번에는 골드크라운으로 공개대상이 확대되었다. 병원급까지 확대가 되었으니 이제 치과의원급까지 공개가 되면 모든 의료기관에서는 심평원 홈페이지에 비급여수
7년 전 현충원으로 부친의 이장을 결심한 것은 부친의 메모집을 접하고서였다. 영어교사 시절, 익숙한 검정표지의 학생들 개인생활기록부에 만년필로 출생부터 상벌사항이 한자로 촘촘히 기록되어 있었다. 검단에 있었던 황해도민묘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개사육장으로 소란스러워질 무렵이었다. 국가유공자 대상여부를 알아보라는 모친의 당부가 있었다. 이제 와서 국가유공자라니… 하지만 그 순간 머리에 반짝 섬광이 스쳤다. 부친메모 중 6·25 전쟁 중 대위로 화랑무공훈장 수여기록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일 년 여간 국방부와 보훈처에 통화·서신도 수차례 왕래하고 집사람도 서류접수로 발품을 팔고, 컴퓨터와 씨름했다. 기록된 군번과 메모를 근거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훈장을 되찾고 무공수훈자 대상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전적지에서 전사한 국군의 유골을 획득하여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는 심정이었다. 그날을 잊지 못한다. 한창 진료 중이었는데 국방부 정훈장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친이 수훈대상자로 인정된 것을 축하드린다고, 왜 이제야 신청하느냐고, 훈장은 사단장이 직접 수여하든가 우편으로 우송해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부모께 할 일을 했구나, 잔잔한 감격이 밀려왔다. 부친이 보성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