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과다(Information Overload)라는 용어는 일찍이 1960~70년대 Bertram Gross (1912-1997)나 Alvin Toffler(1928-2016) 등의 경영, 정보연구들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90년대에 들어와 서적은 물론 대중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며 많은 이들이 보편적 공감을 거쳐 현재는 상식의 범주로 이해하고 있다. 46세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빌 클린턴도 재임 중이던 1995년 9월 23일자 뉴욕타임즈지에 “정보시대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 또는 유사정보,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지나친 노출이 오히려 정보자료들이 지나치게 적은 것만큼이나 나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 동의어로서 ‘infoxication’, ‘infobesity’라는 신조어도 상용되고, ‘information anxiety’, ‘information explosion’과 같은 표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사용되며, ‘그거 뭐, 누구나 다 아는 거 아닌가?’하고 무심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워낙 새로운 것의 유효기간이 짧은 시대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어떤 변화가 다가와도 금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백세시대의 꿈에 취해 있지만 죽음은 벼락같이 온다. 사람 나이 70이 넘으면 아무도 모른다. 치과 역사계의 거장 한 분이 또 가셨다. 7년 전 이병태 선생님에 이어 김평일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은 두 달 전 강진 여행길에서였다. 치문회(齒文會) 좌담회에서 한국전쟁 피란 경험과 중국 동북공정을 실감 나게 말씀하시던 사관(史官)이셨다. 최근 정기모임에 계속 불참하셔서 건강이 좋지 않으신가 했는데, 새삼 선배의 부고는 인생과 역사를 직시하게 한다. 필자가 본의 아니게 서울시치과의사회 회사(會史)편찬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고사하려 했지만 인생 마지막 소명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지금 해야 할 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께 고문을 맡아주시라고 부탁하는 카톡을 보냈는데 응답이 없는 터였다. 고인은 2015년도 편찬위원장을 역임하셨다. 마지막 인사도 못 드린다고 생각하니 급, 마음이 무거웠다. 감투의 중압감이 더해지는 듯했다. 정약용의 다산초당에선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배지에서 제자들을 독려하며 열악한 초가 환경에서 저작에 몰두하던 학자의 인품에 감화와 우울감이 교차됐다. 회사(會史)란 무엇인가? 서울시치과의사회 역사를 10년
필자가 본과 2학년이던 1990년 어느 날, 강의 중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방송이나 신문에서 최고연봉의 직업으로 ‘치과의사’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공부하시고 나중에 사회에 진출하면 개원의나 공직의의 자리에서 국민 구강보건 향상에 매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까마득한 옛날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날들이 있었다는 것은 주위의 선배들에게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치과의사의 직업은 대학입시에 반영되어 경쟁률이 상당 부분 고공 행진하였으며 타 보건의료 직종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또한 결혼적령기의 치과의사들은 최고의 신랑, 신부감이 되어 있었다. 소득의 순위가 반드시 최고의 직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통념상 연봉순위에 맞추어 사회적 선호도가 바뀌어갔다. 그렇게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며 하강 곡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치과대학의 인기가 주춤하면서 입시 커트라인이 떨어지고 직업 선호도도 당연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개원의들은 경영 걱정을 하게 되었고 은행권에서의 대출규모도 축소되었다. 이러한 지각변동의 단초는 거대한 덤핑치과의
지난 2017년 경기지부에도 횡령사건이라는 광풍이 불었다. 사건 초기에는 횡령금액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집행부와 감사 모두가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경기지부의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으나 접근법이 달라 서로 충돌하였다. 이후 보궐선거와 재보궐선거를 매해 겨울마다 치르면서 횡령사건은 모든 선거 쟁점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그 와중에 당시 경기지부 전·현직 감사들은 횡령범에 대한 개인적 고발은 물론, 사태를 수습해보려는 집행부 임원들에게 공범을 운운하며 형사적 책임을 묻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횡령금액을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집행부가 사건을 축소·은폐한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물론 횡령으로 인한 경기지부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들이 충돌한 것으로 회고할 수도 있지만, 당시 보궐선거와 재선거에 후보자로 출마했던 필자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유권자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정견발표회에서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경기지부의 손실액을 받아내겠다”고 외치기도 하였다. 이제 2023년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의 상황을 대비해보도록 하자. 이만규 감사가 내부고발자가 아니라는 성동경찰서의 공문이 노출되었다. 그리
커다란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은 본디 야자수를 비롯한 온갖 나무들로 우거진 생명이 넘치는 섬이었다. 숲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야생 조류와 동물들, 나무로 배를 만들어 고래잡이도 하면서 그 섬의 원주민들은 풍요로운 사회를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인구의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증가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모아이 석상을 각 부족이 경쟁적으로 제작하는 광풍이 섬을 지배하게 되어버렸다. 모아이 석상을 만드는 소모적인 경쟁을 통해 삼림의 무분별한 벌채가 이뤄졌고 이는 사냥, 고래잡이 등 섬사람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릴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그 수백 년에 걸친 변화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삼림의 벌채라는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못 하고 부족 간의 전투와 소모적인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섬에 나무가 한 그루도 남지 않게 되고 원주민들의 문명은 쇠퇴하여 인육 풍습까지 등장할 정도로 섬이 흉흉해지기에 이르렀다. 훗날 서양인들이 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발견한 것은 과거의 비옥했던 섬이 아닌 빈곤하고 황량한 불모지였을 뿐이다. 1995년 Discovery지에 Jared Diamond가 이스터 섬에 관해 당시 상황을 그려본 유명한 글을 인용해
필자는 기존 종이차트에서 전자차트로 전환하여 사용 중이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취미가 생겼다. 바로 기존의 종이차트를 스캔하여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는 일이다. 처음 스캔을 시작하기 전에는 단순 반복작업이라 피곤한 업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하다 보니 예전의 종이차트 중간중간 기록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읽는 재미에 스캔과정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에 직접 기록을 해서인지 대부분의 일화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마치 옛날 학창시절의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는 느낌이다. 며칠 전에는 특이한 차트 한 부를 스캔하였다. 하나의 차트번호에 이름이 다른 두 장의 표지가 붙어있는 차트였다. 처음에는 착오로 묶인거라 생각했지만 몇 장 넘기다 보니 당시 상황이 기억났다. 환자가 무자격 상태에서 건강보험을 적용받기 위해 지인의 명의를 도용했었고, 나중에 자격취득 후 다시 본인명의로 진료를 받은 것이다. 그 와중에 명의를 빌려준 진짜 환자도 본인명의로 진료를 받았다. 이러다 보니 한 차트에 두 명의 이름이 존재하기도 하고, 한 환자의 차트가 두 개가 되기도 하는 복잡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거의 20년 전 일임에도 당시 환자에게 본인확인을 요구하자
의료보험 수가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지정돼 있는 현 시스템에서 원가에 기초하지 않은 수가로 인해 의료보험 수가 항목 간 상대적 불균형이 초래된 부분이 적지 않고,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된 항목들도 많다. 수가가 낮으면 의료기관의 어려움을 초래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수 있고, 환자는 비보험 의료서비스 이용 시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임상현장에서는 자연치아를 가능한 보존하고 오래 쓸 수 있도록 환자를 교육하고 치료·관리를 제공해야 하지만, 낮게 책정된 수가 항목들에 많은 인력과 재료 장비, 노동시간을 들이는 수고를 계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개원의들이 비보험 의료서비스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로의 변화와 치과의사 수의 빠른 증가로 교정이나 임플란트와 같은 대표적 비보험 진료가 급격한 수가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성인환자를 위주로 적용하는 치열교정치료를 동반하는 다제학적 임상기법이나 난이도 높은 교합치료 혹은 full mouth rehabilitation의 경우, 고령층은 노후 여유가 없고 고액의 치료비 감당이 어려워진 국면이다. 환자는 지출의료비는 줄이면서도 더 저렴한 가
지난 10월 말 SBS 8시 뉴스는 3일 연속으로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박태근 회장이 업체로부터 받은 후원금을 포함한 협회비를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현금 인출한 것이 치협 내부 감사에서 공금횡령이라고 판단해 반환된 사안과 함께 이와 별개로 업무추진비를 빼내 정치권 로비에 사용한 의혹에 관해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단독보도를 하였다. 이는 이미 지난해 박태근 협회장이 수차례 공식 기자간담회를 통해 ‘경찰이 내사 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인정한 사안이었다. 또 당시 이만규 충청북도치과의사회장(이하 충북지부장)이 수차례 기자간담회 등에서 이 사실을 공개하며 박태근 협회장의 소명을 요청하고, 이를 전문지들이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치과신문 편집인이었던 필자도 편집인칼럼을 통해 협회장이 회원에게 직접 해명하라고 했던 바다. 그러자 지난해 말 박태근 협회장과 집행부는 본지가 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본지와 발행인이었던 당시 서울지부 김민겸 회장에 대해 경고하고, 편집인이었던 필자와 이만규 충북지부장을 치협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이사회 의결을 한 바 있다. 이만규 당시 충북지부장이 지난해 내내 이 사안에 대해 치과계에 알려왔던 것은 대다수 치과계 대
필자가 대학시절에는 거의 접해보지 못한 시술이었던 임플란트 치료가 이제 치과계에 신세계를 열어준 21세기 최고의 치과 시술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치의학의 역사에서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아말감 재료 개발이 치과치료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사건이었다면 임플란트 시술의 도입은 치과의사들에겐 고수익을 보장하면서 진료정년을 연장시켜주고 환자들에겐 기존의 어떤 시술보다 더 훌륭한 저작기능 회복을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삶의 질을 개선해 우리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되고 틀니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무력감에서 벗어나 정신건강적인 면에서도 활력을 주는 만큼 임플란트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가늠하기 힘들 만큼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지난 9월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한노인회 회장이 노인 임플란트 급여갯수 확대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국회와 정부에 정책 제안을 할 정도로 이제 임플란트는 고령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치료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향후 줄기세포등을 이용한 치아재생기술이 상용화되지 않는 한 임플란트는 현존하는 최고의 치과의료기술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
필자의 기억으로는 치과계가 점점 아수라장으로 변해 가기 시작한 때가 불과 10여년 전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치과계 내부에서 잡음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치과계 내부에서였다. 치과계 내부의 다툼을 사법당국에 고소·고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치과계의 공동체적 인식은 10여년 전부터 파괴되었다. 매 집행부마다 우리 구성원 간에 분란이 일어났다. 심지어 집행부 자체도 갖가지 내홍에 시달려 왔다. 그리고 임기가 끝났어도 전직 협회장이나 임원들에게 횡령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고발하여 곤혹스럽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일을 저지르는 자들은 소수일 것이다. 3만여 치과의사들 가운데 극히 소수가 자칭 정의라는 미명 하에 이런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자신들을 내부고발자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고발을 일삼고 있지만, 실제 이들이 고발하는 내용 중 상당한 건수가 무혐의로 나오는 것을 보면 그저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은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 소수는 스스로 세력화(?)하여 치과계를 난도질하고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벌어진 치협 압수수색 사건도 이런 맥락의 일환으로
필자의 전공은 구강내과이고, 개원해 진료도 전공과목에 한정해서 하는 평범한 치과의사다. 다만 필자가 전공한 학회에서는 매년 레지던트 지원에 대해 걱정과 한숨이 난무하고, 흔히 이야기하는 기피과에 속한다. 속된 표현으로 레지던트들이 안 들어오니 전문의 배출이 되지 않고, 기존 전문의들은 경쟁자가 없으니 좋은 일 아니겠냐는 등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가 막히기도 한다. 치의학의 발전은 각 분야가 골고루 발전하면서 학술적 완성이 되고, 임상에서도 의료기술의 발전이 되면서 환자의 진료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한쪽으로 쏠리게 되는 것은 의료의 왜곡이 나타나게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치과의사의 전공은 경우에 따라 평생 그 진료로 밥벌이를 해야 할 수도 있는 문제다.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해야 하는 일을 전공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보다 그 일에 미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따라갈 수 없기는 하다. 직업선택에 있어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바탕으로 소득 수준이 높고 사회적 대우를 고려한다면 치과의사가 매력적일 수 있으나, 맞지 않아서 안 하는 사람도 있고 면허가 있으나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전공과목을 선택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거센 폭풍우로 조난당한 작은 보트에 순한 오랑우탄과 다리를 다친 얼룩말, 그리고 굶주린 하이에나와 바닥에 숨어있던 무서운 벵갈 호랑이와 함께 227일간 표류하게 된 인도 소년 ‘피신 몰리터 파텔’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휩쓴 영상과 음악이나 영화가 이야기하는 인간 내면, 그것과 작용하는 주변에 대한 메시지의 강렬함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은유와 상징이 가지는 힘의 무한함에 대한 깨달음이다. 영화 마무리 즈음 ‘믿고 안 믿고를 넘어 어떤 것이 더 재미있냐’고 대놓고 묻는 주인공의 대사는 어쩌면 영화의 더 큰 화두는 은유와 상징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일으킨다.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중략)…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것다.’ 50여년 전 참여문학가 김지하는 월간지 『사상계』에 ‘오적’이라는 이름으로 권력과 사회 지배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형식의 시와 그림을 빌어 직설적이면서도 노골적 표현과 한자 부수의 조어(造語)를 통해 비판의 대
지난달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치과신문 창간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초창기부터 발전을 목격하고, 애독하며 원고를 투고해온 필자로서 감회는 특별했다. 서울지부가 서울대 출신 회원에서 5개, 10개, 해외치대 출신 회원으로 다양화된 시점에서 여론을 수렴하는 전문매체의 출현은 필연적이었다. 전문의제 욕구와 치과의사회관 이전 문제에 따른 토론장이 필요했다는 치과신문 초대 발행인인 서울지부 안박 前회장의 소회도 절절했다. 예전 같으면 직접 선후배요 동창이라서 용비어천가적 기사만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치과신문은 엄혹했던 일제치하에서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했던 <황성신문>과 <매일신보>에 비유될 수 있다. 이젠 협회나 서울지부의 활동과 업적을 단순 보도하는 역할에서 탈피해 비판과 지적, 대안을 수렴하는 매체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치과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한 것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탁월한 결정이다. 전국 배포의 당위성을 확보한 셈이다. ‘치과’라는 것이 축소지향적 어휘이긴 하지만 대중 인식에 기반한 총괄적, 일상 어휘이기 때문이다. 또한 뭐든 검색해보는 대세에 발맞춰 인터넷판을 개설해 포털사이트와
비행기에는 조종석(cockpit)이 있다. 탑승객은 물론 승무원들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기장과 부기장이 비행기 보안과 순항을 책임지는 곳이기에 통제구역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같이 식사도 할 수 없다고 한다. 한 사람이 운항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사람이 대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승객들의 안전을 위한 소통과 견제가 매우 중요하므로, 이들의 지위는 다르지만 대등한 관계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렇기에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조종사를 선발할 때 원칙적으로 군(軍) 출신을 배제한다고 알려졌다. 기장, 부기장이 예전 계급이나 사관학교 선후배로서 견제를 하지 못하면 항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치과신문 논설위원일 때 ‘리더론’이라는 제목으로 몇 번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리더가 충분히 훌륭하고 판단력이 뛰어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에 관점을 달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리더 자체의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초심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처음 마음 먹었던 말과 행동이 계속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힘들거나 욕먹는 일을 하기 싫고, 돋보이고 싶은 자리만 찾아다니게 된다. 마키아벨
지난달 21일, 치과신문 창간 30주년 기념식이 개최됐다. 비록 서울시치과의사회 회원은 아니지만, 이미 전국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성장한 치과신문의 치과계를 위한 역할을 축하드리는 바다. 당일 치과신문 논설위원으로서 참석해 다른 위원들과 기고 논단의 ‘시의성(時宜性)’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또한 대선배님이신 양영태 논설위원님께서 치과신문 창간 축하의 덕담과 함께 최근 치협을 비롯한 치과계가 소송에 휘말리는 부분에 대한 걱정의 말씀을 해주셨다. 치협 회원의 일원으로서 충분히 공감이 가고, 얼마전 전·현직 의장단 선배님들의 성명서와 같이 매번 반복되는 선거 후유증에 대해서는 과연 우리 모두가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걱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 치과신문 박태근 협회장 인터뷰 내용 중에서 ‘누가 독립군이고 누가 밀정이었는지 기록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을 접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암살’에서 소위 밀정 역할 배우의 명대사가 기억난다.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해방이 되고 나서 누가 독립군이고 누가 밀정인지 대부분 판가름이 났지만, 영화 내용과 같이 결국 무죄로 판결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판결과는 무관하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