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산(876m)과 발교산(998m)은 강원도 홍천군 동면에 있는 수타계곡으로 유명한 공작산(882m) 동쪽에 위치한 응봉산과 444번 지방도로로 나뉜 남쪽에 위치한 고산이다. 고개가 너무 험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기에 오지 중의 오지로 불리는 곳이다. 대학산은 백두대간의 두로봉에서 계방산을 지나 용문산을 거쳐 양수리에서 끝나는 160㎞의 한강기맥이 지나는 지점으로 수리봉(960m)과 오음산(930m)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산이다. 한강기맥라이딩, 이제 그 길을 간다.
지난달 13일 일요일 새벽 항상 오지를 같이 가는 친구와 함께한다. 이 친구는 육사를 나와, 부사단장까지 지내고 예편한 차 대령으로 군인 출신이라 군인정신이 투철하다. 군인정신이란 제정신이 아닌 것이라고 농담을 건네는 친구, 이 친구와 함께하면 의견 충돌이 없고 모든 것을 순리로 생각하기에 여행할 때 모든 면에서 순조롭게 여행을 끝낼 수 있다. 인터넷 위성지도를 검색해 응봉산, 대학산 임도 출발지점을 찾았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임도라이딩의 즐거움을 느끼는 관건이다. 동홍천 IC에서 56번 국도를 따라 솔치재 터널을 통과해 송재초등학교에서 444번을 타고 고도 600m의 부목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경사를 줄이는 요건이 된다. 이에 부목재를 출발지점으로 대학산, 발교산 임도를 돌아 406번 도로로 화방재를 지나 444번 지방도로 회귀하는 30㎞의 코스를 끝낸 후 다시 부목재에서 응봉산 임도, 남서쪽 임도 18㎞를 달리기로 했다.
800m 이상 고산이 즐비한 천산만악(千山萬嶽)의 산군들이 솟아있는 강원도 홍천! 우리는 동홍천IC에서 솔치재를 통과해 서석면의 초원기사 식당에서 두부찌개로 순식간에 아침식사를 하고, 444번도로 부목재로 향했다. 부목재에는 안개만 자욱한데 대학산 임도 들머리가 있었다. 입구엔 대학산 임도 안내 지도판이 서 있었다. 600m 고지의 부목재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차도 지나지 않는 적막의 고지였다. 지금 시간이 9시. 6시에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이 첩첩산중에서 산악임도라이딩이 시작됐다. 임도관리가 되지 않은 오지라서 길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달리는 우리에게 날카로운 풀잎이 다리를 스치며 핏자국을 만들고, 눈앞을 스치는 나뭇잎은 헬멧을 때린다.
멀리 응봉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임도 500~600m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신나게 달린다. 잡초들이 자전거 스프라켓(뒷기어)에 끼어들어 기어조작이 어려워진다. 그저 길의 윤곽을 따라 장님 코끼리 만지듯 길을 따라 업다운을 계속한다. 이것은 라이딩이 아니라 잡초들과의 전쟁이다. 흔들리는 자전거를 바로 잡으려, 어깨와 손목의 고통이 엄습한다. 7㎞쯤 가니 하늘이 열리고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임도 4거리였다. 여기서 직진하면 화방재, 왼쪽으로 가면 발교산 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444번 도로가 나온다. 우리는 왼쪽 길로 들어섰다. 조금씩 내리막이 계속되더니, 산굽이 돌아 다시 오르막이다. 경사 7~8%의 오르막을 있는 힘을 다해 오르면 또 구비 돌아 오르막이다. 얼마를 올랐던가, 하늘이 열리고 임도 옆에 통신시설이 있었다. 여기가 대학산 임도 정상이었다. 가져온 꿀물로 카보로딩(탄수화물 섭취)하니 혼미해진 머리가 점차 맑아지고 흐리던 눈도 밝아졌다. 한참을 쉬며 멀리 보이는 대학산을 본다. 우리가 저 산 머리를 돌아왔던가, 감개무량하다. 산아래는 운무가 피어올라 마치 내가 신선이 된 듯하다. 다시 페달을 밟는다. 벌써 18㎞, 세 시간 가까이 달렸다.
다시 시작되는 원시림. 완만한 내리막을 달려 내려가는데, 앞쪽 수풀 속에서 큰 고양이 같은 것이 필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개 크기만 하다. 자세히 보니 삵이었다. 그 눈빛에서 살기를 느꼈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니 슬그머니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조금 가니, 앞에 1m 길이의 뱀이 숲길을 갈로 질러 지나간다. 머리가 삼각형인 것을 보니 독사가 분명했다. 쉴 틈도 없이 이곳을 허겁지겁 빠져 나왔다.
이제 또 오르막이다. 죽을 힘을 다해 몇 구비의 오르막을 오르니 다시 하늘이 열리고 산아래 임도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다시 풀이 없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경력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동료도 꽤 힘든 모양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따라와 주는 것은 아마도 군인정신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양갱과 꿀물로 원기 보충하고, 다시 내려갔다. 저만치 앞에 보라색 꽃이 피어있다. 칡꽃이었다. 우리는 잠시 머물러 칡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지금까지의 두려움이 가시기 시작했다. 다시 달린다. 조금 내려가니 이정표가 나왔다. 이제 20㎞를 온 것 같다. 더 내려가니 개울물이 흐르는 쉼터가 나왔다. 우리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온몸에 퍼진 피로를 풀었다.
이곳에서부터 발교산 대각정사까지는 급커브 내리막길이다. 우리는 파밭 밟듯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내 자전거는 앞뒤에 샥옵서버가 두 개 달린 풀서스펜션자전거이기에 이런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최대의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대각정사에 들려 잠시 쉬었다. 앞으로 전개될 늘목재에 대한 긴장이 컸기 때문이다. 다시 늘목재에 도전한다. 2㎞의 15% 경사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우리에게 벅찬 오르막이다.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타기를 반복하며 늘목재에 올랐다. 뒤에서 1,000m 가까운 발교산이 우리를 환송해주었다. 우리는 힘차게 내리막을 내려와 406번 도로로 화방재를 올라 다시 임도로 들어가 7㎞의 오르막 내리막을 계속하며 444번 도로에 도달했다. 30㎞를 5시간에 달렸다. 우리를 싣고 응봉산 임도 들머리로 갈 밴의 고장으로 응봉산 임도(19km)는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는 응급 처치한 밴을 타고 자동차 서비스공장에서 배터리를 교환했다. 자동차 공업사 사장은 “강원도 산을 70대가 자전거로…”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귀로에 홍천의 명물 양지말 화로구이 집에 들러 오늘의 라이딩을 자축했다.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한 방, 산악라이딩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