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치과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여러 상황을 보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거와 달리 치과계가 이젠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세상이 되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과거부터 우리의 문제는 내부 토론의 장에서 해결해 왔다. 때로는 더디 가는 것 같아도 그런 방식이 그나마 빠른 길이었고, 토론의 과정 속에서 서로의 갈등을 다스리는 시간은 물론 양해와 이해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러기에 우리 치과계는 그동안 많은 문제를 무리없이 해결해 왔고 그것을 치과계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여겨왔다.
치과계 최고 의결기관인 대의원총회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해 왔다. 여기서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이의와 불만은 있을지언정 이를 밖으로 끌고 나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동료, 선후배들에 대한 예의이자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의료동업인(?) 정신문화였던 것이다.
그간 우리 치과계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기에 전문의 시행 문제만 해도 1999년 헌소에서 결정나기 전까지 무려 30~40여년간 공방을 해 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논의가 대의원총회 석상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물론 헌소제기로 인해 치과계 내부 논의는 종지부를 찍고 전문의제도는 본격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돌이켜보건데 그 기나 긴 시간의 논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이후 치과계는 변하기 시작했다. 매우 안타까운 상태로 변하고 있었다. 이젠 서로 간의 논쟁과정 속에서 결정난 사안에 대해서조차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법으로 가고 있다.
우리가 논쟁을 벌이는 것은 갈등의 폭을 줄이고 서로 가장 큰 교집합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 많은 갈등과 불만이 있을지언정 결정난 사항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것이 치과계의 모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풍토는 이제 치과계에선 사라진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만하다.
지난해 협회장 선거에 대한 무효소송을 낸 것도 그런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고, 이 문제가 아직 수습단계에 있어 치과계 전체가 어수선한 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현재 경과조치로 진행되고 있는 통합치의학과전문의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도 그런 측면에서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헌소를 제기한 학회의 주장은 통합치의학과전문의가 진행돼선 안 된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이미 대의원총회에서 몇 차례 논의를 거쳐 치과계 합의로 진행되고 있는 것임에도 이제 와서 중단해야 한다고 하면 그간의 대의원총회 결정사항은 어떻게 되는 것이고 그동안 공부해 온 등록자들은 또 어떻게 되라는 것인지 매우 걱정스러울 뿐이다. 현재 헌소에 제기한 일부 학회의 이유 있는 항거(?)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 주장이 틀렸다고 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필자는 원래 기수련자에게까지만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과거 가정의학과전문의처럼 경과조치를 두고 미수련자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결정이 난 이상 이에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보았다.
해당 학회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한다. 그러나 이 헌소 제기는 이겨도 부담, 져도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다시 내부로 돌아와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치협도 무작정 추진하기보다 이유 있는 학회의 주장과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학회에서 염려하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 다각적인 방향으로 돌파구를 고민하고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작정 법으로 눌러서 이기려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해당 학회도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상생의 인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며, 치협도 전문의제도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또 다른 장치, 이들에 대한 배려정책을 고민해 봐야 한다. 제도가 완벽하게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항상 어느 한두 곳에서는 희생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번 사태를 진정시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
치과계는 언제나 갈등을 극복하고 주력해왔던 위대한 의료인들의 상징적 존재였음을 필자는 무척 자랑스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