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의료계에 우려를 자아내는 굵직한 사안들이 두 가지 있다. 녹지국제병원, 규제샌드박스가 그것이다. 모두 의료영리화로 수렴되는 것으로 자세한 내용은 여타 언론에서 많이 언급됐다. 여기서는 과정과 지향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논의에 누가 참여하고, 어떤 논의과정이 있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녹지국제병원이 개원하게 되면, 우리나라 첫 영리병원이 될 것이다.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측은 투자유치를 통한 시설확충과 경쟁을 통한 서비스와 의료의 질 향상, 고용창출 등의 장점을 주장하나 이는 실증된 바 없다. 오히려 과도한 영리추구로 인한 의료의 질 하락, 과잉진료, 노동의 질 하락 등이 예상되는 모습이다. 주지하다시피 제주도는 이 문제를 공론조사에 부쳤다. 공론조사를 위해 200여 명의 제주도민이 두 달에 걸쳐 3번 주말에 모여 16시간을 토의했다고 한다. 그렇게 결정된 것이 영리병원 허가 반대였다. 애초 무응답이 40%에 가까웠다가 점차 반대쪽으로 기울어 최종적으로 20% 차이로 허가 반대가 앞섰다. 그러나 원희룡 지사는 이를 무시했다.
규제샌드박스는 핀테크와 같은 신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소개됐던 정책으로 아이들이 모래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놀 듯이, 사업자는 불합리한 규제 없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맘껏 펼칠 수 있게 한다고 하여 이름붙여졌다. 2월 11일 규제샌드박스 1호 가운데 하나로 DTC(Direct To Customer) 유전자검사 항목의 확대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에서 허용됐다.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정부, 과학계, 윤리계 인사로 구성되어 첨단생명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안전과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기관으로 유전자검사 확대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으나 금번 결정에서 이는 무시당했다.
의료와 건강에 관하여 그 당사자인 시민이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은 국민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는 이것이 잘 실현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공론조사의 결과를 뒤집은 원희룡 지사, 국가생명윤리위원회를 무시하고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고위공직자들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럼 이들 정책의 지향은 무엇인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인가? 아닐 것이다. 특히 규제샌드박스와 관련된 부서나 심의위원회의 구성 등을 보았을 때, 더욱더 그러하거니와 사실 이것들이 4차 산업혁명에 묶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는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 경제적 빈곤이나 상대적 불평등이 건강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료영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미미하며, 그 경제적 효과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경제적 실효가 없다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이득이 있더라고 건강과 안전, 인간의 존엄을 해칠 수 있다면, 우리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 주체인 국민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건강과 안전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향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