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과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보타이를 매는 것이다. 흰 가운만으로도 근엄해 보인다고 집사람은 말하지만, 스스로나 환자가 보기에 격조 있게 보이기 위해서다. 나의 페르소나는 금방 진료모드로 전환된다. 보타이는 매기 쉽고, 덜렁대지 않아 편하고, 교차 감염 우려가 없다. 축제 기분이 드니 분노조절에도 도움이 된다. 그걸 매고 환자에게 화를 낼 수는 없지 않는가. 중세유럽 화가 그림에도 치과의사는 귀족풍 차림새를 하고 있다. 고급식당 사장·지배인 보타이는 신뢰감을 준다.
출근 후 두 번째 일은 기도를 한다. “오늘 귀한 시간과 공간과 천직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오는 환자들에게 사랑과 존중, 동등한 마음을 갖고 긍정적인 자세로, 품위 있는 말씨와, 행복한 마음으로 이들을 진료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용기와 지식을 부여하여 주옵소서. 아울러 도와주는 직원들, 만나는 모든 분들, 전화·문자하는 분들, 그리고 가족에도 최선을 다하는 힘과 지혜를 실천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실 나의 종교적 심성은 부족하다.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부인에 맞춰주느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갈 뿐이다. 하지만 기도가 자기암시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 주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커피 한 잔, 글 쓰고 독서하는 것이다. 목사님께 미안하지만 칼럼은 일요일 교회 불출석 소산이다.
개원 33년차, 좀 품격 있는 진료를 해야 하는데 평생 하는 일은 같은 자리에서 똑같다. 사실 뭐가 품격진료인지 기준은 없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아말감 하나를 해도 의미를 부여해서 훌륭한 진료가 될 수 있고 골드인레이를 하더라도 격 낮은 진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출한 진료 실력이 받쳐주고, 언변 좋고, 건물·인테리어도 근사하다면 세속적 기준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없다. 보타이는 그걸 상쇄시키려는 상징적 자아방어기제 수단이고, 기도는 정신수양의 일환인 셈이다. 고로 만족한다.
지난 구정 때 외손주 덕에 품격생활을 했다. 초등 3학년생이 LA로 겨울방학 두 달간 영어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다. 처음엔 무얼 거기까지 가나, 마뜩치 않았으나 딸·사위 일은 간섭할 수 없는 법, 내친김에 같이 가기로 했다. LA에 사는 고교동기에게 연락하니 그 곳 네 쌍 동기부부들과 골프와 식사를 준비하면서 누구 또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는가 물어왔다. 학생회장 했던 C군과 그 부인이 내 초등학교 짝이었던지라 궁금하다고 하니 알았다고 했다. 수영장, 손님용 별채를 갖춘 친구 저택에 다섯 부부가 모였는데, 만찬 전 C군이 장로님답게 중후한 음성으로 기도를 했다. (딸과 외손주도 동석했는데)식사하며 환갑 지난 동창들이 초등학생 때 일화를 안주삼았다.
지난주 반회 점심 모임에 갔더니 50대 후배가 슬며시 물어본다. “선배님이 만약 50대라면 하고 싶은 것 있으세요?” 글쎄, 생각해본 일이 없다고 했더니 아마 원하는 거 다 해보신 모양이라며 웃는다. 그래서 그런 편이라면서 후배님도 몸과 마음이 이끌리면 그 때 그 때 쉬고 싶으면 쉬고, 놀고 싶으면 놀라고 조언했다. 자식 학교 졸업하면, 자식 결혼하면 등으로 미루지 말라고, 그러면 후회가 되고 허무한 느낌이 든다고. 그러면서 혼자 실크로드 여행한 경험이며 이번 미국여행에서 초등학교 짝 여자동창을 50년 만에 만난 얘기를 해주었다.
어느 후배는 내가 매일 보타이 매고 나타나니 그거 귀찮지 않은가 물어본다. 하나도 그러지 않다고, 오히려 안 하면 허전하다고 했다. 치과의사는 엄연한 전문직으로 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기회인데 왜 안 하냐고 반문했다. 이것 한다고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복장은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 국립경찰병원 인턴 시절 출근 첫날 선배를 따라 각 과를 돌며 인사를 드리는데 무심결에 실내화를 신고 병원장실에 들렀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이발사도 아니고 의사가 복장이 그게 뭐냐고….”
나의 보타이 착용은 그 때 혼남의 산물이다. 모든 개원의들도 애용하면서 진료를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