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모든 눈과 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쏠려있는 와중에 대통령 측근 특별사면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와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일에 인수인계를 하면서 성장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도 군의관 인수인계부터 조그만 클럽회장 등 수많은 인수인계를 하면서 받을 때 보다 줄때가 더 신경 쓰였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후임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해서 일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번 정권에 대한 임기 중 따라다녔던 불통이나 4대강 문제 등에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조차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는 선임자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바라보면서 혀를 차고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정권인수인계를 태종에서 세종으로의 양위라고 꼽는 역사학자들이 많이 있다. 태종은 태조이성계를 도와 조선의 개국을 앞장서 풀어헤친 개국공신중 한 명이며, 1, 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악역도 본인의 타고난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왕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섰다. 정종의 후임으로 왕이 되고 난 다음 왕권강화를 위해 공신들은 물론 본인의 외척, 처가, 심지어 세자의 처가까지 후임자에게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제거 해주어 폭군의 이미지를 얻었지만 행정부의 육조 직계제를 활성화 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토지개혁, 세금, 호패법 등을 강화했고 신문고를 설치해 시정을 살피고 백성들과의 소통을 꾀하고자 했다. 악역도 개국 초의 기틀을 잡아 나가는데 필요한 시대적 소명으로 믿고 감수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나갔고 후계자 선택에서도 세자(양녕대군)의 자질이 부족하자 충녕대군(세종)으로 교체하고 국왕수업까지 시켰다.
“권력은 칼로 창출하지만 유지는 독서로 한다”는 생각으로 부단히 독서를 했고, “호랑이새끼를 키우는 것처럼 세자를 엄하게 키우려한다”고 할 만큼 세자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양녕대군이 잡기에만 열중하고 거듭 실망시키자 과감하게 폐위시켰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때도 독서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 선택의 중요한 이유였다. 세종의 장인(심온)을 사사시킴으로서 권신의 발호를 억제하는 법을 가르쳤고, 군사를 동원해 왜군을 소탕하는 법을 가르쳤으며, 오명은 자신이 받고 영광은 세종에게 물려준 것이다. 오늘의 영광에 집착해 미래를 망각하는 현재의 정치가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사례다. 세종3년 허물어진 도성의 수축문제가 나오자 상왕 태종은 눈물을 흘리며 “도성을 수축하지 않을 수 없는데, 큰 역사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반드시 원망할 것이다. 내가 수고를 받고 편안함을 주상에게 물려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라고 했다. 악역은 자신이 맡고 공은 후계자에게 돌리겠다는 뜻이었다. 태종은 측근공신을 제거하고 후계자를 미리 양성했으며 자신을 희생해 내일을 준비하였고 신생왕실과 국가를 반석위에 올려놓기 위해 악역을 자처한 태종의 결단위에 조선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고 세종이라는 성군이 나올 수 있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이 조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 피웠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 모범이 되는 성군으로 기억되는 것은 이처럼 역사적 소명은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역할만을 충실히 해낸 태종의 희생이 뒷받침 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월말에는 임시대의원 총회, 그리고 4월에는 회장 직선제를 포함한 미래를 결정할 대의원 총회가, 내년에는 회장단이 바뀌는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짧은 임기 내 무엇을 이루려고 서두르다보면 평양의 바벨탑인 유경호텔처럼 허울뿐인 골조가 몇 년 째 방치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영원할 협회를 위해 2-3층의 건물일지라도 그 위에 200층 300층을 지을 수 있는 기단을 한칸한칸 쌓는 일일 것이다. 600여 년 전의 태종이 역사 속 자신의 역할을 직시하고 악역을 맡았듯이 우리도 치과계의 현실을 냉정이 파악하고 있는 지도자가 나와 후배들을 훌륭하고 준비된 후계자로 잘 이끌어주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