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이 프랑스에 전쟁을 선언하자 동맹국인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로 맞대응하며 전쟁에 참여했다. 강대국인 영국 국민은 자국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곳곳에서 영국군은 밀리고 있었다.그런데 국민의 사기를 우려해 정부의 발표와 신문 보도는 사실과는 반대로 영국이 전투에서 이기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데일리 메일’은 사실을 보도하였다. 국민은 연일 신문사 앞으로 몰려와 신문을 불태우며 ‘매국신문’이라고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데일리 메일’은 ‘신문은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것. 진실을 전하지 않는 신문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신념으로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실을 보도하였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된 국민이 정부와 다른 언론들을 압박했다. 총리는 바뀌고 새로운 내각이 들어서는 진통을 겪으며 결국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 황제 카이젤은 “나는 연합군에 의해 패배한 것이 아니라 ‘데일리 메일’에 진 것이다”라고 하였다.치과의사들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고 싶은 단체는 대한치과의사협회다. 그리고 그 협회가 치과의사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외부에서 공격이 온다면 가장 앞에
이제 70세 이상 환자들은 틀니와 임플란트를 의료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다. 관행수가에서 대폭 낮춘 보험 수가로, 그것도 본인 부담액을 50%로 정했다. 의료보험 제도가 공급자인 의료인은 도외시한 채 의료소비자 편의만을 위해 시행되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평균 수명의 연장과 더불어 70세 이상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틀니와 임플란트 보험 급여는 앞으로 치과 경영에 무시 못 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틀니의 경우에는 관행 수가를 떨어뜨린 결과가 되었지만, 지역적 특성에 의해 다양한 관행 수가가 정해져 있음을 고려한다면 정부에서 제시한 그 보험수가 또한 수긍치 못할 이유도 없고 임플란트 경우에도 서울 강남 중심지까지 임플란트 한 개당 백만 원 미만의 덤핑 치과들이 많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보험 수가가 고맙기까지 하다.한때는 치과의사들이 의료보험 환자를 등한시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험급여가 치과의 주 수입원이 되어가는 과정인 듯하다. 아직은 일반 관행수가보다 많이 낮은 보험수가이긴 하지만 보험청구 강좌가 인기리에 열리는 등 제도권의 의료보험이 치과 경영에 가장 중요한 요
인생을 살아갈수록 중요하게 다가오는 주제는 소통이다. 소통을 잘하기 위해 고대에도 원탁을 이용하여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관점을 말할 수 있게 하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바퀴돌며 걷기(Walking around the wheel)’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원형의 가운데에 종이반죽으로 만든 큰 조형물을 놓고 각 사람들에게 본 것에 대해 리더가 묻는다. 그러면 동그랗게 서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본 것에 대해 얘기하는데, 내용이 모두 다르다. 즉, 같은 물체를 어디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각자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행하는 이유는 모든 주제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정신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 한다.동상이몽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부모와 10대 자녀가 만나서 서로 고민하고 있던 문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갈등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재석과 김구라가 문제상황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면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게 해줌으로써 고민과 갈등을 해소해주는 버라이어티 쇼이다. 이 쇼를 통하여 우리가 교훈을 얻는 것은 아무리 해결되기 어려운
2015년에는 서울치대 클래식기타반 오비(졸업생)회장으로서 창립40주년 기념행사 준비가 숙제로 주어졌다. 그래서 오랫동안 구상해온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 어우러진 세대공감연주회와 기념축제를 하기로 마음먹고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부분 졸업생들은 기타를 연주한지가 오래되었던 터라 다시 기타를 치도록 독려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나부터도 기타를 다시 친다는 것에 굉장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기타반 동아리를 만든 창단멤버들의 열정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고 적극적인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그분들의 순수열정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나의 미약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열화와도 같이 기타에 몰입했다. 합주곡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위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브람스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브람스 현악6중주곡을 합주곡으로 선정하고, 어렵게 편곡과 연습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무사히 성공적으로 연주회를 마칠 수 있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장대하게 끝났다. “될까?”하는 회의감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힘을 합치고 점점 더 많은 정열과 꿈을 가지고 연주회를 만들어나갔다. 때론 학창시절의 연주회를 회상하면서 “그땐 좋았었지
시인은 일상에서 만나는 하찮은 물건, 시들어 있는 사람들, 죽어있는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여 노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우리 또한 모두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일상에서 만나고 겪는 것들을 평소와 다르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시를 창조하는 즐거움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치과의사로서 치과를 운영하며 살면서 정해져 있는 업무와 비슷비슷하게 돌아가는 하루는 나 자신을 매너리즘에 빠져들게 만들어 하루하루가 재미없고, 그것이 쌓여 시들어져 가는 인생을 살아가게 만들곤 한다. 꼭 나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치과의사뿐만 아니라, 직장인, 주부, 학생 가릴 것 없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반복되고, 특이할 것 없고,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이러한 생각이 들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 시인과 같은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나의 주변을 감싸고 있고, 매일 부대끼는 자기주변의 그 어떤 것이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즐거움과 감사함을 만끽할 수 있다면, 새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진료를 하며 만나는
영화 암살을 관람하고 독립운동가의 희생에 국민의 일원으로서 죄송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특히 영감(오달수)이 안옥윤(전지현)에게 다짐을 요구하는듯한 대사 ‘삼천불, 우리 잊지마?’는 지금도 귓속에 맴돈다. 대한 독립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친 분들께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는 그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필자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 팔에 총을 맞은 안옥윤을 치과에 데려가 치료받는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선명하게 비춰진 ‘자애병원(慈愛病院)’ 간판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왜 총상 치료를 외과가 아닌 치과에서 받는 모습으로 묘사했을까? 총알을 꺼낸 후 못이 박혀있었다고 설명하는 치과의사는 국적이 한국일까? 일본일까? 선학들이 정리하신 치과의사학 자료들을 바탕으로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한다.안옥윤, 하와이피스톨, 염석진(이정재), 강인국(이경영)은 허구 인물이지만, 그들의 스토리를 통해서 떠오르는 실존 인물이 있다. 비슷한 이치로 자애병원은 ‘자혜의원’을 연상시킨다. 국어사전은 자혜의원을 대한제국 융희 3년(1909년)에 가난한 백성의 질병을 고쳐 주려고 세웠던 근대식 국립 의료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는 담배 연기처럼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구나. 요절 가수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란 노래의 가사 말이다. 왜 서른, 그 좋은 시절을 이런 노랫말로 읊조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올해 환갑이 된 필자의 마음에는 치과의사로서 살았던 30여년을 이 노래에 오버 랩 시켜보니, 한편 이해가 되면서 그 심정이 남달랐다. 특히 청춘, 사랑이란 단어에 ‘치과의사 위상’을 대입시켜 보면, 요즘 치과의사 현실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하기까지 하다.돌이켜보면, 우리의 서른 시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란 아예 존재치 않았었던 것 같다.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대학 시절부터 치과대학에 대한 자부심으로 모든 일이 즐거웠고, 선배들처럼 개업하면 경제적, 가정적 안정이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따라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 한때는 그렇게 되어가는 듯
대한민국의 6월은 5월 20일 시작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전국민이 패닉에 빠지고 경기는 엉망이 되었다. 메르스 대란이라는 국가적 재난 사태로 인하여 국민들이 느꼈던 공포는 엄청났지만 그 평지풍파 뒤에는 많은 ‘미담’이 존재하게 되었다. 최일선에서 메르스와 사투를 벌인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은 메르스 앞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환자 곁을 지키는 노력을 했다. 의사나 의료진은 메르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나 정보도 없었고, 경험해 보지 못한 질병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쉽지도 않았고, 도리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메르스 감염자 중에서 많은 숫자가 간호사와 의사에서 나온 것도 자신의 몸을 던져서 메르스에 맞서 싸운 결과이다. 옆에 있는 동료가 메르스에 감염되어 격리되고, 환자를 진료하는 일선의 모든 의사들과 의료진들은 그 격리된 동료가 내가 될 수도 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의료진들만 그랬을까? 환자를 이송하는 119구급대원도 마찬가지로 최일선에서 메르스에 맞서게 되었고, 보건소와 지방자치단체의 수많은 공무원들도 24시간 비상체제로 밤낮 없이 업무에 집중해야 했다. 중앙
서울 외곽 작은 치과지만 29년째 한자리에서 유니트 체어두 대로 운영하는 필자의 일터에는 엄연히 원훈(院訓)과 미션이 있다. 십여 년 전 인테리어를 할 때 접수대 벽이 무언가 밋밋해 평소 마음에 두었던 ‘인간적· 포괄적· 실용적 진료’ 란 원훈을 붙였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스스로 경종도 울릴 겸 직원들에게 응급 시 심폐소생술 훈련을 연습시켰다. 유니트 체어에서 하면 꿀렁꿀렁해서 안되니 실제 환자를 누가 어디를 잡고 바닥으로 내리는 연습, 소생술 하는 동안 무슨 약물을 준비하고, 누가 119로 전화하나를 구체적으로 실습했다. 이참에 미션도 만들었다. “우리는 최선, 양심적인 구강병 진료를 통하여 인류의 생명과 먹는 행복에 기여 한다” 원훈과 미션을 드러내거나 자랑함이 아니다. 그저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명기해 놓았을 따름이다.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이 표방하지 않았을 뿐이지 비슷한 심성의 소유자라 생각한다. 사실 이리 해놓아도 이런저런 이유로 최선, 양심적인 진료를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오가며 볼 때마다 반성과 각성의 기회는 된다. 치협의 캠페인중 5가지 슬로건(꼭 필요한 진료만 하기, 치의가 직접 상담, 위임진료 안하기, 검증된 재료만 사
2014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46조 8995억원이다. 이중 건강보험을 제외한 보건의료예산은 1조9284억원으로 4%정도에 해당한다. 전국의 의료기관은 60,000여개소이다. 이중 군병원을 포함한 공공의료기관은 2014년12월 기준으로 213개소로 전체 의료기관수 의 0.3%에 해당한다. 건국초기의 사회부나 보건부 시절의 장관 중에는 의료인 많았다. 그러나, 보건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로 개편된 1994년 이후 23명의 장관 중 의료인 출신은 간호사2명과 의사1인이 전부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다. 4%와 0.3% 그리고 23명 중 3명은 한국의 정부가 보건의료를 바라보는 시각과 정책의 기조를 고스란히 드러낸 숫자들이다. 차기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병원장 출신의 의사를 내정하고 있지만, 단순한 면피성 인사라는 말도 있고, 원격의료와 관련된 “의료규제완화”를 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말도 들려온다. 의료혜택을 확대한다는 생색은 내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더 많은 돈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이 지금 정부의 속내가 아닐까.근대사회 이전까지 의료는 특권층이 누리는 혜택의 하나였다. 훈련된 전문인력이 소수였고, 의료장비나 약품도 보잘 것 없었으니 치료를 위하여 많은 돈과 자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을 때 메르스의 영향으로 병의원 매출은 급감하여 바닥을 친다. 오랜 개원 경험으로 어려울수록 무리하지 말아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개원의들이 서로가 비밀리에 말은 안하고 있지만 오랜 개원의 생활동안에 환자와의 마찰 한번 없이 지낸 개원의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실력 있고 훌륭한 의사라 하더라도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진이나 사소하지만 잘못된 시술로 인한 당황스러움은 한 두 번씩 다 겪어 봤을 것이다.이때 훌륭한 의사와 스탭들은 그 뒤처리를 깔끔하게, 솔직히 시인하고 환자에게 양해와 동의를 구하고 잘못된 점을 시인하거나 잘못된 점이 없다면 정당하게 환자를 설득 시켜 사안에 걸맞은 후처리를 하지만 환자와 갈등 내지는 고소, 고발까지 가는 경우나 중재위원회까지 가는 경우를 보면 대개 환자의 과욕은 물론이고 의사나 스탭들의 참을성 부족에 기인한 경우도 많으며 쉽게 끝날 일도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안 좋은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불경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환자를 무리하게 붙들거나 치료 받는 쪽으로 유도하다 보면 환자들의 컴플레인이나 의료 사고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원장과 환자 간의 분쟁을 자세히 보면 그 시발점부터 아니면
8·15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은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소득양극화라든지 금전만능주의에 빠져서 이웃을 상실하고, 함께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잃어버리는 문제점을 가지고는 있다. 정말 행복이란 무엇일까? 올바른 정의란 무엇일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한가지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달리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가족도 잃고, 삶의 즐거움도 잃어버리고 객체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에도 빠지게 되고, 남이 심어준 기준에 자신을 치장하다보니, 남의 기준에 못맞추면 두렵고 스트레스가 되어 한번밖에 없는 인생의 행복을 놓쳐버렸다는 것이다.아리랑 뮤지컬을 보았다. 3년의 준비기간과 제작비 50억원이 들었다 한다. 1000만부가 팔린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뮤지컬화 한것이다. 무대는 전북 김제 죽산면, 때는 1905년 일사늑약(조약) 직전부터 1920년에 이르는 항일의 시기이다. 주요인물들은 죽마고우로 자란 친구들과 이웃에 살았던 마을 주민들이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감골댁 중심의 가족사로 압축시켜 표현했다. 빚이 많
의료현장에서 질병의 치료보다 환자와의 관계가 더 힘들다는 것을 느끼는 의사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러하다. 갈수록 환자들의 의료지식 수준이 높아지고 병원의 문턱이 낮아지는 시점에서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진과 환자들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에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의 만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불편한 관계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또한 이런 불편한 의료분쟁이 모두가 원활하게 해소되는 것 또한 아니다. 의료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환자의 행동이 변하지 않고, 또한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의료진의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여전히 서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며 갈등에 빠질 수도 있다. 환자와 의료진 중에 어느 한쪽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갈등 해결은 진정한 갈등 해결이 아니다. 예전처럼 권위주의적 사고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즉, 환자와 의사, 모두가 행복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자가 만족하는 갈등 해결이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토머스 고든박사의 저서 ‘환자를 파트너로 만드는 법’의 일부분인 양자가 만족하는 갈등해결 방법을 소개해 보려한다.첫째
지금 대한민국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고 있다. 감염에 대비하는 시스템이 전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정부는 방심하고 있다가 초기대응에 실패했고 메르스는 난민촌 같은 대형병원 응급실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병상이 날 때 까지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병원문화, 아니 의료전달체계의 허점이 그대로 노출됐다. 6인실 입원실에다 전문성 없는 보호자들이 24시간 밀착 간호하는 현실에서 감염방지는 해결하기 힘든 숙제중의 하나다. 이 위기에서 그나마 의사들의 처절한 사투덕분에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이 위기를 넘기면 문제의 발단이 된 공무원들은 포상을 받을 것이고, 힘겹게 싸운 의료진들과 병원들은 책임추궁을 받을 것이다. 또한 이것을 계기로 보건의료의 중요성을 깨달아 실제적인 조직개편과 전담부서에 돈을 쏟아 부어 대책마련을 철저하게 해야 하는데, 좀 지나면 또 표밭인 복지만 바라보는 보건복지부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쩌면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 겹겹이 기다라고 있을지도 모른다.한국을 둘러싼 나라들의 움직임은 구한말을 보는듯한 위기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
우리나라 불상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시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즉 옆에서 허리의 굽은 정도를 보면 시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은 허리가 활처럼 펴져서 뒤쪽으로 젖혀져 있다. 고려시대 불상은 허리가 반듯하게 펴져있는 정도이고 조선시대에 오면 허리가 굽어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상을 전각 중앙에 모셨다. 불전은 곧 붓다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당 내에서는 큰 스님 등 높은 품계의 스님 외에는 예불을 드릴 수 없었다. 따라서 신도들은 불전 마당 건너편에 있는 만세루나 다른 전각에서 예불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상의 시선도 먼 곳을 향해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전란이 많았던 고려에 와서는 표현의 미숙이 보인다. 다소 산만하고 신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과도한 양식적 표현만이 나타난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사찰 경제가 어려워지자 많은 신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불단을 불전의 후면으로 옮기고 신도들을 불당으로 들어오게 한다. 이렇게 되자 불상의 시선이 좁은 불당 안에서 신도들과 마주치기 위해 자연히 허리를 앞으로 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