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달라진 강연장의 풍광이 있다면 단연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의 등장이다. 그런데 스마트한 시스템으로 일상의 편익을 돕는 이들 스마트 기기가 강연장에서는 연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악의 축’으로 꼽힌다. “에이, 휴대폰인데 뭘” 식의 무관심 덕에 사진 및 동영상 촬영, 녹음까지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된 청자들이 점점 정도를 지나치고 있기 때문.
근래에 찾은 세미나에서 줄곧 터지는 플래시와 촬영음 탓에 강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는 서울의 한 개원의는 “카메라에 비해 가볍고 눈치도 덜 보이는 데다 막 찍어도 잘 나오는 퀄리티까지 갖췄으니 스마트폰 만한 것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강연 내내 대놓고 슬라이드를 촬영하는 모습에 같은 청자 입장에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연자는 기분이 어떨까 싶더라”고 지적했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2009년 개정된 저작권법은 강연장 내 사진 및 동영상 촬영, 녹음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말과 글, 이미지나 영상 등 타인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가져가는 경우, 편집해 온라인상에 올리는 경우는‘저작권 침해’로 간주해 엄중 처벌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경우가 스마트폰 하나면 쉽고 빠르게 가능해진다는 데에 있다. 촬영부터 편집, 포스팅까지 복잡다단한 과정이 몇 번의 터치면 해결되기 때문.
포털사이트의 카페나 블로그를 찾지 않고도 SNS에 즉각 사진과 글을 올릴 수 있게 된 것도, 각 슬라이드를 촬영하면 화질을 보강하고 효과를 넣어 하나의 완성된 슬라이드를 만들어주는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한 것도, 연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발전상일 테다.
국내외에서 연자로 활동 중인 모 교수는 “복습을 위한 선의의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연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촬영이나 녹음을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인데 청자들도, 주최 측도 의식과 매너가 부족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국내 강연 중 계속해서 촬영을 하는 청자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더니 ‘자료를 공유할 생각이 아니면 강연은 왜 하느냐’고 되레 화를 내더라”며 “강연 분위기를 흩뜨리는 것으로 모자라 오랜 시간 공들여 모으고 만든 자료들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온라인상에 올리고 배포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는 답답함도 토로했다.
물론 좋은 강연을 만났을 때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쉬워 소장용으로 촬영 및 녹음을 하는 청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과 그 산물이자 자산인 강연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SIDEX의 경우에도 8월에 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강연 동영상을 공개할 것을 공지했음에도 너나 할 것 없이 촬영을 해 곤란해하는 연자들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공연’과 ‘강연’은 한 글자 차이지만 공연장과 강연장의 분위기는 천지 차이다. 의식과 배려를 갖춘 ‘스마트한’ 청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홍혜미 기자/hhm@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