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6일 대한심신치의학회의 창립총회 소식에 축하를 전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치과계 환경에서 의료 종사자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치과계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상식을 넘어선 일반적이지 않은 메시지들이 들려오고 있다.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고 쇼크에 빠진 환자를 같은 층에 있는 가정의학과 원장이 응급처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이에 유가족들은 도움을 주러왔던 가정의학과 원장까지 처치가 늦었다는 이유로 소송을 하였다. 이 사건은 필자에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응급처치를 해준 의사를 소송하는 유가족이 상식을 벗어난 것인가? 아니면 지금 우리 사회가 일단 소송하는 것이 상식의 선으로 변해 있는 것인가? 사회전반에 걸쳐 과거와 비교해 상식을 재는 잣대가 바뀐 것만은 확실하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사회에 통념상 적용되는 상식을 넘어서는 사건이 요즘 많이 보인다. 이런 사회 환경에서 환자를 대하는 의료종사자들은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상식의 잣대가 변해있는 환자는 의료행위나 질환을 판단함에 있어서 의료인을 믿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거나 혹은 스스로 새로운 형태의 질환을 만들어내는 경우
울산 대왕암을 다녀왔다. 울산여자치과의사회 강연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호우주의보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대왕암의 첫 모습은 평범하였다. 너무도 평범한 모습은 기도드리는 사람들의 징소리조차 무색하게 하였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대왕암을 검색하면서 대왕암의 평범함은 새롭게 다가왔다. 대왕암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유골을 뿌린 곳이라는 이야기와 수중릉이라는 이야기다. 삼국사기에는 산골처(유골이 뿌려진 곳)로 되어 있다. 3국을 통합한 문무대왕은 자신의 화려한 능묘를 만드는 일에 얼마나 많은 백성이 수고를 할지를 알고 그는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화장할 것을 원하여 산골한 곳이 대왕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통일을 완성한 위대한 왕의 업적보다는 죽어서도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 고생하는 백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인 진정으로 위대한 왕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수중릉에 대한 것은 도굴을 막기 위하여 삼국사기에 화장하여 산골한 것처럼 기록한 것이지 실제로는 무덤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산골처에 더 믿음이 간다. 대왕암에서 평범함과 고즈넉함이 수 천 년 넘어 조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주말에 한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 장남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고 형제 중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생각으로 가출하였다. 아버지 장례식에 와서 유품으로 남은 편지를 보고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고 사랑하였다는 것을 아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은연중에 본인이 겪은 장남의 무게가 무거워서 큰아들을 좀 더 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것을 아들은 차별로 인식하였다. 우리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영화에서처럼 장남이나 장녀가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자녀 입장과 부모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부모가 동등하게 아이들을 대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겪은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몇 가지 이벤트성 왜곡된 기억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동생에게 보이는 부모 모습은 늘 생소하고 자신은 겪지 못한 사건으로 인식하여 부모가 자신을 미워하고 차별했다고 생각한다.부모 입장을 보면 우선 첫아이에서 경험을 해봐서 두 번째부터는 시행착오가 적어진다. 더불어 첫아이에서 보이는 기대감이나 관심도가 상대적
요즘 이 맹렬한 폭염에 진료실 에어컨에 문제가 있어 고생 중이다. 옆 상가에 새로 상점이 들어와 인테리어를 하면서 우리 에어컨 실외기 위치를 옮긴다고 해 허락해주었다. 요즘은 건물 외관을 위해 실외기를 옥상에 설치한다는 관리소장 말을 듣고 이참에 실외기를 옥상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옥상에 실외기를 옮기고 문제가 발생했다. 첫날에는 찬바람이 나왔으나 며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운 바람이 나왔다. 아마도 연결한 접속 부분에 문제가 발생하며 냉각 가스가 모두 빠져 나간듯했다. 인테리어 사장이 와서 확인하고 고쳐주기로 했다. 그러나 시행업자로부터 다음 주에 고쳐주겠다는 말만 벌써 두 번째 들었다. 필자는 옛날 사람이라서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에 통상 2~3일간 지켜보며 문제 발생여부를 확인하고 공사비용을 지불했다. 젊은 인테리어 사장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보였고 시행하는 사람들도 폭염에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젊은 사람들은 우리 나이든 사람들과는 다를 것을 믿으면서 비용 이야기를 듣고 바로 송금해주었다. 그런데 오전에 송금하고 문제가 오후부터 발생했다. 오후부터 더운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사장에게 전화를 하니 시공을 하는 사람이 일정이 있어
작년 여름에 분지하고 분갈이한 고목나무가 올해는 폭염에 조금도 자라지 않고 있다. 때맞춰 물과 거름을 주었지만 평소라면 한 여름에 몇 십장의 잎사귀를 키우던 것에 반해 올해는 조그만 변화가 없다. 식물이 한해는 길이 성장을 하고, 다음 해는 내실을 다지며 폭 성장을 한다는 말을 실감하며 자연의 법칙에 감탄한다. 집에서 화초를 많이 기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잎이 모두 말라버린 화분도 생겼다. 폭염에 열대야가 지속되고 에어컨을 계속 쐬니 냉방병 증세마저 나온다. 식욕도 떨어지고 무기력해진다. 자연의 조그만 변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몸소 체험을 했다. 하지만 오늘 입추가 되었으니 심한 폭염도 점차 사그라들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다. 지난주에 여름휴가로 목포, 강진, 영남, 해남을 돌아보았다. 30년 전 학창시절에 보았던 목포역 광장은 주차장으로 변하였고 신도시 개발로 멋진 다리를 보았지만 필자가 알던 옛 모습은 이젠 사진과 기억 속에만 남아있음을 알았다. 3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많이 변하는 것이 당연하건만 우리들 기억은 늘 변하지 않고 과거 속에 갇혀 있다. 건물만 아니라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몸과 생각이 많이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퇴근길에 신호정지선에 서있었다.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었지만 출발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고 있던 20대 여성이 신호가 바뀐 것을 모르고 천천히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주 목격하는 일이니 신기한 일도 아니다. 지하철을 타면 10명에서 8명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그 중에 안 보는 2명은 대부분 노인인 경우다. 필자도 마찬가지이지만 가급적이면 이동 중에는 안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타당한 이유도 있다. 요즘처럼 노출이 심한 때에 눈길 한 번 잘못주거나 혼잡한 지하철에서 본의 아니게 잘못하여 신체적 접촉이라도 발생하면 양손에 무엇인가라도 들고 있어야만 성추행범으로 몰리지 않기 때문이란 말이 설득력이 있다. 필자도 오르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스마트폰을 보거나 혹은 90도 옆으로 서서 위가 보이지 않는 벽면을 본다. 의도치 않게 간혹 민망한 광경을 목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동 중에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의미가 있어 보일 수도 있으나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가 요즘처럼 분노조절이 되지 않아 문제가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스마트폰이
상악 소구치 하나가 왜소치보다는 크고 일반 크기보다는 조금 작은 환자가 있었다. 교정 마무리 단계에서 작은 소구치 주변에 공간이 약간 생길 것이니 보철치료를 받으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얼마 후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치료 전에 미리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받는 동안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라고 한들 과연 어디까지 예측하여야 할 것인가. 법에서 정한 환자의 알권리에 대한 설명의 의무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국민 정서법은 또 어디까지일까. “모른다. 이해하지 못했다. 들은 바 없다면 끝”이라는 시쳇말처럼 정말 끝인가. 대단한 의료사고도 아니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여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억울함과 약오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치아가 작아서 생긴 일인 것을 미리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 억울했다. 의사생활 30년에 분쟁의 수순을 다 밟으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것을 머리보다 몸이 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혈기라면 끝까지 따지겠지만 그냥 타협할 것을 알기 때문에 약이 오른 마음이 있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과도 같은 일을 수없이
어느 강연장에서 학부모로부터 “요즘 중학생이 된 아이들과 점점 멀어지는 듯한데 어쩌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필자는 “먼저 묻지 말고, 질문을 받은 것에만 답변하면 됩니다. 단, 받은 질문에 대해서는 열심히 진지하게 들어주고, 말을 할 때는 연인에게 대하듯이 웃으면서 입꼬리를 올리시고 부정적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모든 대화의 끝은 무조건 긍정적으로 끝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대화를 하지 말고 그냥 TV를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엄마의 모든 충고는 오로지 잔소리일 뿐으로 아이 귓속에 들어가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사춘기 청소년과 부모 간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아이들이 지닌 문제는 급격하게 변하는 신체와 뇌의 변화이다. 12세부터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는데, 전두엽이 덜 발달했을 때는 감정과 충동을 지배하는 편도체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다. 충고를 전두엽으로 들으면 조언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편도체로 들으면 잔소리로 판단한다. 전두엽 미숙으로 편도체를 사용하는 아이에게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나 단어는 잔소리일 뿐이다. 엄마들은 직접적으로 편도체를 자극하는 도발적인 표현보다는 우회적인 표현
5년 전에 불만이 있었다는 이유로 편의점 주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직원을 다치게 한 사건과 지난달 포항의 한 약국에서 과거에 약사로부터 욕을 들었다는 이유로 복수하기 위해 흉기를 휘두른 사건은 유사하다. 범인 두 명 모두 과거의 불만을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장소가 직원이 적고 협소한 장소이다. 이 범인들의 정신 상태를 필자는 ‘해리성장애(조현병)’로 의심해 본다. 상상을 한 것(환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면 해리성장애(정신병, 조현병)이다. 5년 전 기억이거나 과거 어느 한 시점에 욕을 들었던 기억이 정확하고 옳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기억왜곡현상으로 그 사건이 진짜로 그 장소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기억은 연속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조각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편집되거나 왜곡되기 쉬운 것을 ‘기억왜곡현상’이라 한다. 누군가 선명하게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되고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기억이 편집되었을 가능성이나 필요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범인들은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받은 심리적 충격이나 피해를 기억 왜곡을 통해 사람이 적고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로
문득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을 찾아보니 2010년 6월 7일 치과신문 400회 때이다. 3개월 정도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이 넘었다. 필자 기억 속에는 대략 4~5년 정도 지난 듯한 느낌이었는데 빠르게 지난 세월에 놀랐다. 글을 쓴 8년은 필자에게 한 주간의 생활도 바꿔 놓았다. 초기에는 원고 마감일인 수요일까지 노심초사하여 일요일부터 생각이 복잡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그저 매주 수요일 아침에 의례히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책상에 앉는다. 지난 한 주간을 되돌아보아 발생한 일 중에서 처음 떠오르는 사건을 주제로 잡는다. 물론 생활 속에서 글로 쓰고 싶은 테마를 미리 적어 놓기도 하지만, 생각을 열어 놓고 있으면 계속 신경이 쓰여 평소에는 잊고 지낸다. 마감 아침에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책상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자판을 두들기면서 알고 있던 지식이나 내용이 확실하게 맞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확인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분량이 확보되면 맞춤법을 고치고는 가까운 사람을 찾는다. 누군가에게 읽기를 부탁하여 귀로 들으면서 문맥이 엉키거나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수정한다. 너무 긴 문장은 호흡에 적당하게 축소하고 논리비약을 검토한다.
데스크에서 예약을 잡다보면 환자로부터 바빠서 진료를 받을 시간을 낼 수 없다며 예약을 두 달 이상 미뤄도 되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 때마다 다시 묻는 직원에게 “올 수 없다는데 다른 방법이 있나요? 내가 왕진을 갈 수도 없고요”라고 자조어린 답변을 하고는 “환자에게 진료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꼭 이야기 해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이지만 진료받을 시간도 낼 수 없이 바쁜 이들이 얼마나 공감할까 의심이 간다. 바쁘게 사는 것이 멋있어 보일 수도 있으나 치료받을 시간도 낼 수 없다면, 하고 있는 일이나 전반적인 삶에 대해 한 번 정도는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할듯하다. 20여년 전이었을 것이다. 30대 초반 여성 환자가 진료시간을 늘 어기고 잘해야 세 달에 한번 내원한 듯했다. 그때 필자는 무슨 일을 하는데 그리 바쁘시냐고 물었다. 환자는 미스코리아가 붐이던 시절에 가장 유명한 미용실 팀장이었고 미스코리아 메이커이기 때문에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때 필자는 “누구든지,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지 간에 자기 자신을 위해 한 달에 1시간을 낼 수 없다면 한 번은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왜? 무엇을 위하여 열심인 것일까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출근을 해보니 기공실 싱크대 밑 부분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하수관 연결 부위에 감아놓는 검정 테이프가 세월이 지나며 삭아서 발생한 일이다. 필자가 손수 검정 테이프를 새로 교체하고 물을 부어 확인한 후에 마무리 지었다. 개원한 지 20년이 되어가니 요즘은 늘 있는 일이다. 개원 초창기에는 인테리어 업자에게 전화하고 빨리 오지 않는다고 하루 종일 노심초사를 했었다. 사실 업자에게 연락이 되어도 업자가 다시 배관공에게 연락을 하여야 하고 그 기술자들이 내원하기까지는 며칠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럴 때마다 성질이 급한 필자가 직접 고치다보니 이젠 웬만한 것은 직접 고칠 수 있는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보통 검정테이프 수명이 10년 정도이니 검정테이프로 마감한 공사는 대부분 10년이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검정테이프가 사용되는 곳은 다양하다. 우선 전기시설이 많고 다음으로 배수시설 연결부위이다. 압력을 받지 않는 곳이라면 문제 발생 가능성이 적지만 컴프레셔나 석션 등과 같이 압력을 받는 기계의 연결부위나 물이 흐르는 배수관련 부위는 조금만 상해도 누수가 발생하기 쉽다. 그래서 요즘은 문제가 발생하면 우선 검정 테이프가 있는 부위를 먼저 점검한다. 검
어제 문자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밤이나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동차 운전 중에 누군가 차 유리창에 달걀을 던지면 그냥 지나가라는 내용이었다. 닦으려고 와이퍼를 움직이거나 워셔액을 품으면 단백질이 더욱 달라붙어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고, 운전이 어려워져 차에서 내리면 그때 괴한들이 달려든다는 내용이었다. 으슥한 곳에서 일부러 접촉사고를 내던 방법이 이젠 달걀 던지기로 진화된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다. 한 모임에서 외제차를 타고 온 제자에게 절대로 남들이 보는데서 아이들을 태우지 말고 주차장에서는 늘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던 노파심이 살아났다. 익산 여약사 주차장 납치 살인사건 이후로 필자에게 생긴 트라우마가 노파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얼마 전 외국 출신 의사 모임에서 수의사를 하다가 치과의사로 전향하신 분을 뵈었다. 필자는 농담으로 “사람은 말이 많은 반면 동물은 말을 못하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직업 우선 순위가 ‘장의사>수의사>치과의사’라고 생각하는데, 왜 수의사에서 치과의사로 전직하셨는지요?”라고 물었다. 필자의 농담에 선생님의 답변은 놀라움이었다. ‘법적으로 동물은 사람이 아니고 물건으로 취급을 한다. 따라서 수술 등으로 맡아 놓은 반려견은
다른 치과에서 교정치료 중인 환자가 내원했다. 철사가 찔리는 등의 간단한 이유가 아니고 기존 치과에 대한 불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기를 원한다면 자칫 골치 아픈 상황에 본의 아니게 끌려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진다. 누구나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상대의 잘못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듣는 사실만으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주소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그 말의 진실성이 몇 퍼센트인지도 같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환자는 자신이 다니는 치과가 TV에 나쁘게 방송된 뒤에 병원이 임시로 문을 닫은 상태여서 내원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다행 아닌 다행으로 환자와 치과 사이에 발생한 문제보다는 일방적으로 치과에 발생한 문제라서 긴장을 조금 늦출 수 있었다. 환자에게 주소를 물으니 안면비대칭을 개선하기 위해 교정치료를 시작했다고 했다. 성인이 안면비대칭을 수술을 통하지 않고 교정치료로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주소와 치료방법이 일치하지 않는 환자 이야기는 필자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의심하게 하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의사는 옳게 설명을 하지만 선택을 하는 환자 자신이 듣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경우다. 일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날을 생각하면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고 행사를 위해 오랫동안 서있었던 기억 그리고 선생님들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듯하다. ‘스승의 날’이 교사들에게 가장 괴로운 날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김영란법’은 학생이 강의하는 선생에게 캔커피 하나를 주는 것도 막았기 때문이다. 필자도 무료강연을 제외하고 학교 당국에 사전 신고를 하는데 가장 곤란한 것이 강연료를 적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서는 성의껏 준비하고 강의 끝나면 마음을 담아서 강연료를 주고받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런데 김영란법은 사전에 얼마 줄 것인지를 묻고 미리 적을 것을 강요한다. 한마디로 모양 빠지는 일이다. 연자가 전화해서 얼마 줄 것을 묻는 것은 우리 전통적 관습과 거리가 멀다. 조선시대 서민 교육기관으로 서당이 있었다. 서당은 원래 정해진 학비가 없다. 부모님들이 훈장선생님 문 앞에 각자 성의껏 놓고 갔다. 보리쌀이든 홍시든 놓인 것을 받기 때문에 누가 놓고 간 것인지도 몰랐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아이 부모는 많이 놓고 가고 어려운 이는 어려운 대로 성의를 표하면 되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방법으로 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