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라인 강의만 듣는 유학생은 유학 비자를 취소하겠다는 발표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그 원인이 코로나 사태와 같은 비상상황에서 대학들이 임시로 조치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모두 배제하고 원칙적인 것을 내세워 발표한 것이다. 이 일을 보면서 한 책이 생각났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작가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 악의 화신이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 미칠 영향이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행하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말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발표는 법적으로는 옳을 수는 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발표였다. 아마도 발표 이전에 상식적 차원에서 검토되지 않았거나 피드백되지 않았거나 잘못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의심이 든다. 자신들이 행하는 행동이 몇 년을 준비해온 유학생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표였다. 물론 유학생 자금으로 학교 재정을 충당하는 학교에 대한 고려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버드 등 명문
남산 아래 마을 2020 / Seoul Nikon Z7 | 12㎜ | F9 | 1/50sec | ISO-64/ http://instagram.com/hansol_foto 남산으로 가는 언덕길은 빼곡했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닌 제각각의 건물들은 저녁 노을빛을 받으며 주황색 톤으로 뒤덮였다. 오한솔 치과의사이자 사진작가. 서울대치의학대학원 졸업 후 현재 화순군보건소에서 공보의로 근무 중. 재학시절 치과신문 학생기자로도 활동한 바 있다. <주요활동> 제24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금상 National Geographic Traveler 한국판 촬영 HOYA Global Ambassador 2018 개인전 ‘COSMOPOLITAN’ Gallery NAMIB 2020 개인전 ‘COMPLEX-ITY’ 갤러리탐 탐앤탐스 블랙 청담점
최근 심리적 트라우마를 지닌 그림 동화작가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 일반 동화와 달리 강한 메시지를 던진 그림동화책이 몇 권 있다. 대표적인 것이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린왕자’다. 지금도 혼자서 편안한 때면 가끔 꺼내서 읽어보곤 한다. 이 책들 가운데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꽃이 등장하지 않는다.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고, 그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마지막에 나비가 되는 여정을 그렸다. 나비가 해야 할 일이 꽃에 있고, 책을 읽는 독자가 꽃이기 때문이다. 작가 트리나 폴러스가 의도한 제목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알에서 나온 기쁨을 잠깐 만끽한 줄무늬 애벌레는 모든 애벌레가 가는 길(기둥)을 따라서 그냥 이유 없이 올라간다. 도중에 노란 애벌레를 만나서 올라가던 것을 포기하고 행복하게 지내지만, 결국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는 노란 애벌레와 헤어지고 다시 본격적으로 경쟁에 참여해 기둥에 오른다. 두 번째 오름에는 강한 목표를 갖고 무차별하게 짓밟으며 올라선다. 정상에 다가왔을 때 비로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삶에서 돈과 명예를 향한 맹목적인 경쟁이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가를 작가는 보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비대면 면회가 가능하니 예약하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요양원 출입금지 명령으로 6개월간 뵙지 못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밖에서 누님과 기다리는데 요양사가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누님을 먼저 보시고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오랫동안 못 봐서 외로웠다고 말씀하셨다. 필자를 보시고는 잘 오지 않는 애가 어떻게 왔냐고 말씀하셨다. 늘 듣는 말이고 조금은 섭섭한 말이지만 이해가 된다. 오전에 가서 인사하고 오후에 다시 가도 늘 같은 이야기시다. 일주일에 3번을 찾아뵈어도 같은 이야기시다. 어머니의 장기기억 속에 필자는 잘 오지 않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6년을 외지에 있었고, 공중보건의로 또 3년을 외지에 있었다. 수련한다고 4년을 잘 뵙지 못하였고, 바로 유학을 떠나면서 또 3년을 뵙지 못하였다. 근 20여년을 명절이나 제사 등 가족 행사에 자주 빠지다 보니 어머니 기억 속에는 늘 오지 못하는 자식으로 남아있는 탓에 언제 보아도 듣는 말이 “잘 오지 않는 애가 왔네!”이다. 치매 특성으로 단기기억은 없고 장기기억만 남은 원인도 있지만 어떤 이유였던지 20여년을 찾아뵈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구름 아래 서울 2020 / Seoul, Korea Nikon Z7 | 24㎜ | F8 | 1/4sec | ISO-64/ http://instagram.com/hansol_foto 서울에서는 뿌연 먼지가 뒤덮인 하늘을 보기 쉽지만, 하늘이 높은 뜨거운 여름날이면 종종 커다란 구름이 하늘을 수놓곤 한다. 구름이 아름다운 어느 여름날 동대문 앞을 찾았다. 오한솔 치과의사이자 사진작가. 서울대치의학대학원 졸업 후 현재 화순군보건소에서 공보의로 근무 중. 재학시절 치과신문 학생기자로도 활동한 바 있다. <주요활동> 제24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금상 National Geographic Traveler 한국판 촬영 HOYA Global Ambassador 2018 개인전 ‘COSMOPOLITAN’ Gallery NAMIB 2020 개인전 ‘COMPLEX-ITY’ 갤러리탐 탐앤탐스 블랙 청담점
30대 panic buying이란 뉴스가 보인다. 부동산 규제로 집값이 상승할 것을 염려한 30대가 무리하게 집을 사며 집값을 올리는 주체 세력이라는 기사다. 모든 경제 지표가 나쁜데 집값만 오르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니 세상 이치가 그렇듯이 원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광풍에 휩쓸려 무리한 사람들이 어려워질 것이 걱정이다. 엔화가치 급등으로 유발된 일본 부동산 버블이 우리는 양적 팽창과 심리적 광풍으로 오는 듯해 걱정이다.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글이 있다. 이 뜻은 3명이 가는 길이 옳으니 따라가라는 것이 아니다. 뒷 글귀가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좋은 것은 좇고 나쁜 것은 고쳐라’라고 돼 있다. 달리 말하면 3인이 가는 길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다. 필자가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늘 결과가 좋았다. 그런 이유는 모두가 가는 길은 평범하거나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지만,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는 경쟁이 없거나 독보적인 길이 된 것이다. 오랜 경험과 재력을 지닌 60~70대가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부동산 시
Breezing 2020 / Seoul, Korea Sony A7R IV | 62mm | F8 | 30sec | ISO-100 / http://instagram.com/hansol_foto 6월 초가 되면 동대문은 금빛으로 뒤덮인다. 동대문 성곽을 따라 낙산공원까지 올라가는 언덕이 만개한 금계국이 장식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30초간 카메라 셔터를 열었다. 고개를 자꾸 흔들어대는 꽃의 흔적은 마치 수채화처럼, 프레임의 절반을 흩날렸다. 오한솔 치과의사이자 사진작가. 서울대치의학대학원 졸업 후 현재 화순군보건소에서 공보의로 근무 중. 재학시절 치과신문 학생기자로도 활동한 바 있다. <주요활동> 제24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금상 National Geographic Traveler 한국판 촬영 HOYA Global Ambassador 2018 개인전 ‘COSMOPOLITAN’ Gallery NAMIB 2020 개인전 ‘COMPLEX-ITY’ 갤러리탐 탐앤탐스 블랙 청담점
보건소로부터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이니 인강을 수강하고 보고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2항에 의해 의료인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이다. 근래 생각하기조차 싫어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뤄왔던 주제가 하나 있다. 아동학대이다. 최근 발생한 창녕 아동학대 사건과 천안 아동학대 치사사건은 학대를 넘어 잔혹함에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뉴스에 접하는 실상이 너무 참혹해 원인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사건은 이유가 있고 동시에 발생하는 데에는 사회적인 문제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의 범죄 문제로만 넘기면 안 된다. 창녕과 천안 아이는 모두 아홉 살이다. 창녕 아이 엄마는 27세 친모이고, 천안 아이 엄마는 43세 동거모이다. 창녕 계부는 35세로 친모보다 여덟 살 많았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천안 친부는 아이가 9세인 것으로 미뤄보아 동거모보다는 상당히 어릴 것으로 유추된다. 아마도 이 두 가정에서 지배적인 권력(경제력, 나이 차 등)을 지닌 사람에 다른 사람은 방임하거나 동조한 형태라고 생각된다. 심리학에서 아동학대를 개인적인 정신병리적인 문제와 사회적으로 사회심리학적, 생태학적, 문화적인 요인 등으
1968년에 개봉된 명작 ‘혹성탈출’은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하면서 원숭이가 지능을 지닌 종족으로 살아남아 인류를 노예로 종속시킨다는 내용이다. 원작자인 프랑스의 피에르 불은 냉전시대를 비롯한 인류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비꼬아 제목을 ‘Planet of the Apes:유인원들의 행성’이라 하였다. 영화 속 주인공은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후에 바닷가를 지나다가 부서진 미국 자유의 여신상을 닮은 조형물을 본다. 이것으로 감독은 자유가 무너졌음을 복선으로 깔았다. 얼마 전 서울 미대사관 건물 전면 외벽에 2일간 대형 배너가 걸려있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문구였다.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인종차별 항의시위의 슬로건이다. 시위는 미 경찰이 저항하지 않는 흑인 남성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무릎으로 목을 눌러 사망시킨 사건이 동영상으로 퍼지면서 시작됐다. 미국 내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밖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현재 미국 인종차별은 백인우월주의, 미국식 노예제도, 이민자 배척주의(반이민 정서 Nativism)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백인우월주의는 금발, 파란 눈, 큰 신장을 지닌 북부 유럽족과 게르만족들이 만들어낸 것이
Cobalt Blue 2020 / Jeju, Korea Sony A7R4 | 70㎜ | F8 | 30sec | ISO-100 / http://instagram.com/hansol_foto 그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제주의 짙은 푸른빛은 강한 바람과 함께 흩날렸고 시간이 흐르며 파도의 경계는 무뎌졌다. 쏟아지는 바람 속에서 머릿속에는 오직 푸른색만이 남았다. 30초의 시간이 지난 후 카메라가 보여준 모습 또한 그랬다. 오한솔 치과의사이자 사진작가. 서울대치의학대학원 졸업 후 현재 화순군보건소에서 공보의로 근무 중. 재학시절 치과신문 학생기자로도 활동한 바 있다. <주요활동> 제24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금상 National Geographic Traveler 한국판 촬영 HOYA Global Ambassador 2018 개인전 ‘COSMOPOLITAN’ Gallery NAMIB 2020 개인전 ‘COMPLEX-ITY’ 갤러리탐 탐앤탐스 블랙 청담점
며칠 전 늘 애용하던 커피잔 손잡이가 깨져서 버리게 되었다. 유학생 시절 바자회에서 10엔에 구입해 25년은 사용한 듯하다. 그동안에도 이가 빠진 곳이 두 곳 있었지만, 그때마다 포셀라인 리페어 키트 레진으로 수복해 사용해왔는데 이번에는 손잡이가 파손되어 결국 버리게 되었다. 물건도 연이 다하면 떠나는 것이 이치이건만 오래 사용한 물건이라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두께나 모양이 뜨거운 물을 넣었을 때 손에 전달되는 온도와 무게가 딱 떨어지는 잔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크다. 처음 이가 빠졌을 때 비슷한 것을 구해보려고 찾았지만 대부분의 잔들은 입구가 넓어 물이 빨리 식고, 두께가 두꺼워 무겁고 투박했다. 그 커피잔 덕분에 좋은 잔이 어떤 것인 줄 알게 되었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필자에게는 오래 사용하는 물건이 하나 더 있다. 헝겊 필통이다. 중학교 때 구매한 것이니 45년이 넘었다. 지퍼는 두 번 교체했고 헝겊도 많이 닳기는 했지만 아직 사용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 지금도 항상 가방 속에 넣고 다닌다. 예전에는 필기구를 넣었지만 요즘은 USB나 신분증 등을 넣는 데 사용한다. 구멍 나거나 해진 부분이 생기면 직접 바늘로 꿰매곤 한다. 특별히
City of Blue 2020 / San Francisco, USA Nikon Z7 | 38㎜ | F5 | 1/250sec | ISO-64 / http://instagram.com/hansol_foto 구름이 아름다운 날은 하늘을 높게 바라보려고 한다. 다만 도시의 마천루들 사이에 있을 때는 멋드러진 하늘의 일부분만이 보일 뿐이다. 그 날 샌프란시스코는, 푸른색이었다. 오한솔 치과의사이자 사진작가. 서울대치의학대학원 졸업 후 현재 화순군보건소에서 공보의로 근무 중. 재학시절 치과신문 학생기자로도 활동한 바 있다. <주요활동> 제24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금상 National Geographic Traveler 한국판 촬영 HOYA Global Ambassador 2018 개인전 ‘COSMOPOLITAN’ Gallery NAMIB 2020 개인전 ‘COMPLEX-ITY’ 갤러리탐 탐앤탐스 블랙 청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