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말씀 낮추십시오” 요즘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이다. 이제 쉰이 넘은 나이가 되고 보니 오랜만에 만나거나 전화 통화하는 후배들도 나이가 쉰 근처에 머무른다. 또 서로가 바쁘거나 생활공간이 다르다보면 10여년을 얼굴 한 번 못보고 지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10여년의 공간을 넘어서 동문회에서 만났다고 말을 바로 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각별하게 친했던 사이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단지 시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후배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친했다면 사석에서는 평어를 써도 공석에서는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존대어는 상대를 높이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는 문제도 있다. 필자가 아이를 낳고 기르던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가 필자에게 존대어를 쓰시기 시작하셨다. 반면 필자는 아직도 어머니에게 평어와 존대어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나이든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에 평어를 사용한다. 예전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은 부부간에는 꼭 경어를 사용했다. 이렇듯이 존대어는 실제적으로 상하 서열의 관계를 의미하기보다는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더 강하다. 어머니가 유치원 아이에게 존대어를 쓰는 것은 교
얼마 전 요즘 청소년들의 대화 속에서 96%가 욕을 포함한다고 보고되었다. 이는 어려서부터 약간의 비어나 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모나 어른들이 무심하게 간과하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학교나 학원 등의 모임에서 어떤 상대적 우월성을 지키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친구’같은 조폭영화에서 멋있다고 느끼고 흉내를 내면서 시작되었지만 사회적이나 가정적으로 저항을 받지 못하고 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부모나 사회가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발생한 매우 중대한 사회적인 오류이며 개개인으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대다수가 언어를 단순하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과 철학에서는 언어에 대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언어의 발달과 인지적 능력의 발달을 같이 연구하고, kelly는 언어적 구성개념과 전언어적 구성개념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대철학에서는 더 큰 비중을 언어에 두고 있다. 20세기 실존주의철학의 거두인 하이데거는 대표적 저서인 ‘언어로의 도상에서’에서
시간은 역시나 세월호를 넘어 월드컵으로 왔다. 시간은 망각이라는 동반자와 같이 다닌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요즘은 TV를 켜면 온통 월드컵 이야기뿐이다. 필자 또한 시대에 편승하여 저녁과 아침에 월드컵을 시청하다보니 낮에는 졸기도 한다. 누군가가 세상사의 아픔이란 것이 단지 시간의 길이 차이라고 한 말이 현실로 다가온다. 월드컵 최고의 빅 매치인 독일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보기 위하여 졸음을 참으며 기다렸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기 드믄 장면이 연출되었다. 포르투갈의 공격수 페페가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넘어져 앉아 있는 독일 선수를 머리로 박치기를 하고는 퇴장을 당하였다. 이 후에 포르투갈은 급격히 무너지고 큰 점수 차이로 경기에 패배하였다. 더불어 세기의 최고 공격수인 호나우드의 기량도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페페의 과거 경력을 보면 그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고 생각된다. 31살인 남자가 20억의 인구가 지켜보는 그라운드에서 상대편에게 박치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심한 성격장애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출생이 브라질이고 국적이 포르투갈인 것을 보면 어려서 성장기에 내부적인 분노가 많이 잠재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날씨가 더워지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니 대학원 수업도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대학원 수업이 끝난 후 과대표의 보고사항은 여러 가지 생각을 남겼다. 수업의 진행은 각자 돌아가면서 발표를 하고 그 주제로 토론을 하는 형태인데 마지막 발표자가 부인이 아기를 낳을지 몰라서 발표하지 못할 수 있다는 통보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몇 년 전 필자의 병원에서도 남자 치과의사 선생이 아이를 출산하고 출근을 하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요즘은 남편에게도 5일 범위에서 3일 이상의 유급휴가를 주어야하고 위반 시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이 있다. 병원은 직장이고 출산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법으로 정한 일이니 상관할 수 없지만, 자신이 발표할 수업에서 발표를 안 하겠다는 것은 여러 생각을 남긴다. 출산휴가는 법으로 정한 것이니 권리이다. 그러나 수업의 발표는 모두가 협의한 약속이므로 의무이다. 그런데 그 30대 예비 아빠는 수업에서의 발표도 일과 동등하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중요한 사항이 있으니 타인에게 끼칠 약간의 손해는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풀잎은 가장 연약함을 이야기 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하지만 장자는 태풍이 불면 뿌리가 뽑히는 존재가 큰 나무이고 풀잎은 바람에 순응하여 살아남는다고 하였다. 요즘 우리들의 마음속에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 오랫동안 쌓여온 수많은 비리와 사건들을 ‘세월호’라는 태풍으로 한번에 날려 보내고 있다. 우리 한국 사회가 그 태풍 속에서 사회적, 심리적으로 심한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각자 개개인들은 노란 리본을 묶으며 반성이라는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태풍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부정, 부패, 비리와 같은 고질적인 사회병폐를 모두 쓸어버렸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더불어 태풍 앞에 풀잎 같은 우리 개개인들도 태풍이 지난 후에 좀 더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를 계기로 새로운 삶의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풀잎처럼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다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주기를 바란다. ‘풀잎’이란 단어는 지나온 한민족의 역사와 애환과 같은 단어이다. 굳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단어가 주는 의미는 이미 우리의 피와 정서 속에 있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풀잎을 이야기하였다. 필자가 힐링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부처님 오신 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누님과 함께 계룡산에 있는 성혜사로 향하였다. 이른 아침이라 차 막힘도 없이 도착하여 여유롭게 행사에 참관할 수 있었다. 법문 도중에 세 잎 클로버를 코팅지에 넣어서 나눠주시며 우리들이 너무 네 잎 클로버에 집착하며 살았으니 이제는 세 잎 클로버로 만족하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그동안 행운의 상징인 네 잎 클로버로 인하여 너무나 많은 욕심이 탄생하였으니 세 잎 클로버로 행운과 요행을 바라지 말고, 주어진 만큼만 얻고, 행한 만큼만 받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린다면 만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법문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연휴가 끝나는 날이라서 1번 국도를 따라 올라왔다. 모처럼 1번 국도를 지나니 옛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하여, 장사를 하기 위하여 한양을 향하여가던 선조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천안삼거리에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전라도와 경상도 선비들이 서로 처음 모였을 것을 생각해본다. 그 시절 걸어서 3일이 걸리던 한양을 이제 2시간에 가도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는 지금 우리들의 삶을 돌아다본다. 3일을 2시간으로 줄였는데, 줄여서 남은 3일은 행복하고 여유롭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어제는 여수행 KTX에 몸을 실었다. 요즘 화요일이면 전북대치전원 학생지도를 위하여 전주에 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고 반찬을 이것저것 준비하여 배낭가방을 꾸릴 땐 초등학생이 소풍을 가듯이 마음이 설렌다. 어려서 살던 이태원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택시로 용산역을 가는 길의 풍경은 초중고 시절과 모습이 변하지 않아서 좋다. 용산은 미군부대의 영향으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오산중학교를 지날 때면 중학교 2학년시절 수업시간에 창밖을 내다보면 잠수교 공사가 진행되던 일이 기억난다. 또 친구들과 무슨 다리가 수면에 저렇게 가까울까하고 이야기하던 일도 생각난다. 용산역에 도착하면 카페라테 한잔을 사들고 기차에 올라 좌석에 앉으면 여행의 설렘과 2시간 10분이라는 나만의 시간이라는 여유가 행복을 준다. 기차에서 제공되는 종이신문을 보면 웬일인지 반갑다. 인터넷으로만 검색하다보니 종이신문을 볼 기회가 거의 없는 탓일 것이다. 신문을 보고 가져간 책을 잠깐보다 시장기가 돌면 12시가 조금 지난다. 아침에 준비해온 보온병과 도시락을 열어서 반찬을 테이블 위에 배열시키면 꽉 찬 테이블이 마치 한정식집의 한상차림과 같이 뿌듯함을 준다. 점심을 마치고
요즘 출근하면 제일 먼저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 놓는다. 그리고는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듣는다. 하루 종일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일주일이 넘도록 너무 오랫동안 상처받은 마음들을 회복시켜줄 방법은 생각하다 찾은 것이 비발디의 사계였다. 그리고 필자를 위해서는 따뜻한 카페라테를 같이 마신다. 더불어 심적으로 화가 올라올 때에 먹으려고 항상 가득히 비치해 놓은 냉동실 속의 초콜릿도 먹는다. 감정 조절을 위하여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현대 철학자 가다머에 의하면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고 하였다. 따라서 요즘은 농담도 하기 싫은 마음이라서 가급적이면 언어의 표현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가라앉고 침잠하려는 마음을 복원시키려고 노력한다.한국 사람의 피 속에는 융이 이야기하던 민족적 집단의 원형인 강력한 공통 심리가 있다. 필자는 그것이 한(恨)이라고 생각한다. 반만년을 유지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사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정서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건의 충격은 또 한스러운 사건으로 한민족의 공통적인 한이라는 공감대를 자극하고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거기
살다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경험한다. 치과에서는 환자가 물만 마셨는데 교정용 장치가 떨어지고, 세상에서는 하루 노역이 5억원인 황제 노역이 2010년 법원에서 발생했다. 제주도의 거꾸로 올라가는 도로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까지 포함하면 너무나도 많으니 자연현상은 제외하고 사람과 연관된 일만 생각해도 많다. 사람이 연관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은 어떤 사건이 누군가를 거치면서, 무슨 사연인가에 의하여,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발생한다. 그런 경우,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킨 사람을 악인으로 규정하지만 종종 선과 악을 구별하기에 매우 애매한 경우가 발생한다. 1960년대에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히틀러가 내린 유대인 학살의 명령을 각종 ‘탁월한’ 방식으로 이행한 최대 전범이었다. 이 때 유대인으로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미국에 망명한 유명한 여성 현대철학자인 한나 아랜트는 세계 최고의 악인을 보기 위하여 모든 일을 뒤로하고 이스라엘 법정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에서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하고는 ‘예루살렘에서의 아이히만’이란 책을 집필하였다. 그녀는 그 책에서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
영국의 시인 엘리어트는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하였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지상으로 나와야하는 어린 새싹의 숙명적인 어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중·고등학교 현장에서도 3,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한다. 이 시기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환경이 바뀌는 때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청소년 사춘기의 심리적인 특징과 맞물려서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학교 내부에서는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은 시기다. 학생간의 싸움도 가장 많고 학교를 오지 않는 아이도 가장 많다. 심지어는 학교를 포기하는 아이들도 발생한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는 포기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결정이지만 말이다.그런데 이들에게서 보이는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있다. 신기하게도 5월 5일 어린이날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분란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이 2개월 정도의 기간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고 본다. 하지만 청소년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3, 4월의 혼란을 아이들이 환경 변화에 대한 부적응기간이라고 보는 것은 과거의 시각이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절대 권위가 존중받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알자지라는 카타르의 수도이자 도하에 생긴 방송국이다. 1996년에 생긴이름도 없는 아주 작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한 지역 케이블 방송국 정도였다. 그랬던 방송국이 지금은 중동의 CNN이라고 불린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주며 비행기의 테러로 무너졌다. 그리고 미국은 배후로 알카에다를 주목하고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전쟁을 시작하였으나 중동에서의 취재가 쉽지 않았다. 그런 시점에서 오사마빈 라덴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인터뷰를 알자지라 방송에서 하면서 세계적인 방송으로 떠올랐다. 이라크전쟁 당시 미국방송을 포함한 전세계의 모든 방송들은 알자지라 방송으로부터 자료를 받아서 발표할 뿐이었다. 중동 뉴스의 모든 통로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 반미적 특성으로 대다수 중동 국가로부터 지지를 받았다.그런 알자지라 방송에서 한국의 자살을 다루었다. 알자지라 더 스트림은 한국과 미국 등의 전문가를 연결하여 40여분 정도 집중적인 기획보도를 진행,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높은 자살률에 대한 원인과 대안 등을 모색하였다. 알자지라는 3가지 정도를 핵심 사항으로 분석하였다. 첫째는 한국의 젊은이들 중 절반이 자살을 생
네덜란드의 한 교과서에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함께 이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된 모범 사례 국가로 실렸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랐다. 그러나 네티즌의 댓글은 다양하다. 좋다는 글도 있었지만 선진국인데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고 팍팍하냐는 이야기도 많이 보였다. 아직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공과금만 남겨 놓고 자살한 세모녀 사건 등과 같이 일반적인 서민들의 경제생활은 힘들기만 하다. 특히 중산층이 붕괴되었다는 지금의 한국 현실은 네티즌이 선진국이란 단어를 공감할 만큼 녹록하지 않다.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데 선진국이란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를 생각해본다. 선진국이란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다. 국민소득이 대표적인 지표가 된다. 대략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에서 4만불 이상인 국가들이다.2013년 한국은 2만6,000불이었다. 아직 3만불에는 못 미치지만 잠재성장을 감안하여 나온 이야기이다. 또 정부에서는 4만불을 목표로 매진한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1인당 2만6,000불을 4인 가족으로 계산하면 한가족당 10만불 즉 1억 정도이다. 한 가족이 한 달에 1,000만원 정도의 소득을 의미한다. 그 정도라면
오랜만에 둘째 누님이 구강검진을 위하여 치과에 내원하셨다. 그리고 의사들이 파업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이해시켜달라고 하셨다. 동생이 치과의사라서 의료계의 소식에 관심이 많은 누님께서 의사파업의 이유를 모르신다니 대부분의 국민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치과에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정확하게 아는 이들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원격진료와 영리법인이 지닌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원격진료는 대면진료의 반대적 의미이다. 대면진료는 사람이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 즉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지식과 기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영혼을 지닌 사람(의사)이 신체나 마음에 질환을 지닌 사람(환자)을 치료하는 것이다. 치료에는 의사와 환자사이에 인간적인 신뢰와 라포 형성과 같은 정서적인 부분이 의료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원격진료는 인간이 영혼을 지닌 사람이란 부분을 무시하고 오로지 암, 당뇨 같은 질환만을 기계적으로 보고 마치 자동차를 고치듯이 치료를 생각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철저한 유물론적인 개념으로 의료에서 휴머니즘을 제외시키는 정말 극악무도한 개념이다. 결국 원격진료를 원하는
우리 치과 건물의 1층에는 얼마 전까지 꽃집이 두 곳 있었다. 한 집은 생긴지 7년 정도 되었으나 허름한 집이었고 새로이 생긴 집은 2년 정도 되었다. 그리고 새로 생긴 집은 깔끔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하였다. 그러던 중 한 달 전에 허름한 꽃집이 개인사정으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며칠 전이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 남아있는 꽃집 유리창에 A4용지 크기의 메모 하나가 붙어 있었다. ‘화분에 휴지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문구였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버리면 CCTV를 공개하겠다는 내용도 첨가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CCTV 화면을 출력해 50대 아주머니가 화분에 휴지를 버리는 장면을 유리창에 붙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또 다른 메모장이 유리창에 붙었다. ‘가져가신 화분 비용을 지불하여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문구였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밖에 내어 놓은 화분을 집어간 모양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흔히 있을 수 있는 듯 하지만 허름한 꽃집이 문을 닫기 전의 상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허름한 꽃집은 개업하고 있는 동안 내내 상가 앞에 새로 나온 꽃이랑 화분들을 내어놓고 방치하였다. 물론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혹시 누가 집어가면 어쩌
새벽까지 소치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을 본 사람들이라면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심판들의 점수 채점은 정당성을 의심받았고 수많은 의혹과 불신을 유발시키며 그녀는 은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17살 선수는 기량에 의심을 받으며 금메달을 받았다. 일련의 사건을 표면적으로 보면 은메달을 받은 김연아 선수가 억울한 피해자이고 금메달을 받은 러시아 선수가 행운아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우선 김연아 선수를 생각해보자. 김연아 선수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선수이다. 그녀의 기량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의미는 2연패라는 것 외에는 금메달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의미 그 이상 도 아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불공정 판정 시비에 엮이게 되어 더욱 유명해지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극단적으로 보았다.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게 하였다. 게다가 억울함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던 모습은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며 더욱 감동을 주었다. 마치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하는 박지성 선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연아 선수는 금메달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