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국민으로서 누려야 하는 기본권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신체의 자유가 인정되며,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권은 무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없고 국가의 질서유지나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제한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은 자신의 권리가 위와 같이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만큼 자신의 행동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나 지킬 것으로 정한 법률을 지키지 않을 경우 행동에 대한 제약뿐만 아니라 나아가 처벌까지 감수해야 되는 것이다. 최근 울산에서는 갑(甲)이 을(乙)과 술을 마시던 중 말다툼 끝에 맥주병을 깨서 을의 등 부분을 찍어 상해를 가한 것으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고 술에 취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갑은 불구속상태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 등 상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자신이 을을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였고, 증인으로 나온 을은 재판정에서 갑의 진술과 같이 자신이 갑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있던 병조각에 찔린 것뿐
우리 역사에서 왕의 명맥이 끊어진 것도 벌써 100년이 지난 과거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악습처럼 치부될 수도 있는 로열 패밀리의 존재는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도 그들의 실세여부를 떠나 이미 지구상에는 수많은 왕들과 그 가족들이 영향을 주고받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럽을 비롯해 아시아권만 보아도 20여 개국 이상이 왕을 인정하고 있으며 영국처럼 왕을 군주로 하는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캐나다 이외에도 이들을 포함하는 영연방에 속하는 41개국까지 왕권국가로 포함시킨다면 실로 이 지구상에는 엄청난 수의 왕실 국가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왕을 비롯한 왕족의 존재가 주는 의미는 개념 이상의 실재가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명품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 나라에는 하이클래스가 없거나 혹 있어도 너무 얕다는 말이다. 물론 왕족이 없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이라 하지만 언뜻 듣고 보면 대도시의 백화점과 면세점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명품 열풍과 상반되면서 하이클래스의 기준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소위 천박한 자본주의에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정치권의 대립은 그렇다 치고 이제는 국민들까지 양립하면서 대한민국이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만큼 한미FTA가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미래와 모든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은 소수의 집단이익을 위해서 양분하고 대립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참으로 걱정된다.목소리가 큰 소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한 대중 선동을 하면서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옳고 그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유토론을 막고, 극단적인 여론몰이로 침묵하는 대다수의 말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찬성은 매국, 반대는 애국이라는데 어느 누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겠는가?과거 역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여러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의 살아남기’는 힘겹다. 과거에는 찬탁, 신탁으로 양분화되어서 치고 박고 심각하게 싸웠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문서에서는 이같은 대한민국의 의견과는 전혀 관계없이 미국과 소련은 너무나 쉽게, 도마 위의 고기를 둘로 가르듯 서로의 운명을 나눴다고 하지 않는가! 힘이 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의 서러움을 맛본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일종의 사회현상 혹은 새로운 트렌드로 비춰지던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러나 어느 틈엔가 순식간에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와 더 이상 낯설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컴퓨터에 네이버나 다음, 네이트와 같은 포털사이트 화면이 띄워져 있을 테지만, 요즘에는 페이스북이 띄워져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고, 동료 치과의사들과 얘기하다 보면 ‘진료 중에도 틈틈이 과연 어떤 트윗이 올라왔는지, 누가 리트윗했는지, 담벼락에는 어떤 글들이 올라왔고, 누가 댓글을 달았는지, 좋아요를 눌렀는지 확인하게 된다’는 중독 비슷한 경험담도 들을 수가 있다.블로그, 싸이월드에 이어 현재의 트위터와 페이스북까지, 소셜미디어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소통’을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기술이 발전하여 장소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연결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은 더욱 외로워지고 소통에 목말라하게 되었다. 핸드폰과 컴퓨터 문자 자판으로 이어진 인간관계란 진정한 소통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차갑고 표면적인 것으로 느껴
“도대체 그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어”, “치과의사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지?”, “그 네트워크 치과에는 이상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것 같아”, “우리 옆 치과는 반모임에 나와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실제 치료비는 거의 덤핑수준이던데?”, “옆 건물로 자기 치과를 옮기고 자기 치과에는 명의를 빌려 월급의사를 두었더군”. “거기 치과는 도둑놈이야”, “다른 곳에서는 충치가 하나라고 했는데 여덟 개를 해야 한다더군”, “다른 치과에서는 신경치료해서 살려보자고 했는데 여긴 바로 임플란트 하자던데?”, “특정 인터넷 사이트에 모여서 환자들 욕 하는 게 치과의사라며?”, “치료비 할인해준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높게 부르고 깎아준 척 하는 거였더구먼”.요즘 개원가는 정말 불황인 것 같다. 만나는 분들마다 이렇게까지 어려운 시기는 없었다고 한다. 네트워크치과 때문이라고 하시는 분들부터 주변 치과의 낮은 치료비, 광고 등이 원인이라고 하시는 분들, 전체적인 경기의 영향이라고 하시는 분들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으며 숨어있는 다른 원인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다 나름대로 정리를 해본다. 환자들은 치과의사에 대한 믿음을 잃었으며 이제 치
젊든 연륜이 있든 간에 현직으로부터의 은퇴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같은 연배 치과의사 한 분이 진료실에서 희생 당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다시 한 번 은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즘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나를 포함해 은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토로하는 동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화의 주제가 사소한 주변 이야기로 시작되나 결론으로 갈수록 비관적으로 흐르고, 마침내 하루 빨리 핸드피스를 놓고 싶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원 없이 환자도 보았고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를 가지고 제2의 인생을 찾기 위한 은퇴라면 좋으련만, 대부분이 피라미드 치과, 세금, 환자 스트레스, 자녀문제 등 복잡한 함수 관계를 가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대처할 자신이 없어 차라리 피하고 싶다는 것이면 이야기는 달라 질 수 있다.선배님 한 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병원을 갑자기 폐업하시고 교직으로 옮기셨다. 얼마 후 병원 정리를 위해 들렀더니 우편물이 쌓여 있었단다. “공단, 심평원, 보건소 세무서, 협회 등에서 날라 온 것이었는데, 뜯지도 않고 찢어버리는 쾌감을 너는 모를 거야” 하시며 웃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우리는 직장인들 시각에서는 정년이
동료 치과의사들끼리 모이는 자리가 예전만큼 즐거운 분위기가 아니다. 옛날에는 환자 보는 이야기며 아이들 키우는 얘기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는데, 요즘의 화제는 딱 한가지이다. 어려운 경제상황과 불법네트워크 치과. 앞으로의 상황도 어려울 것이며, 우리나라가 일본의 치과계를 따라가는 것 같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분위기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거나 그렇지 않을 것 이라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들 수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숙연해지는 분위기와 침묵이 한동안 흐른다. ‘진정, 답이 없는가’라고 혼자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아직까지도 뚜렷한 해법은 없는 것 같다. 불황이 순식간에 장기화에 접어들 듯, 불법네트워크 치과와의 싸움도 장기전에 돌입한 느낌이다. 그들은 요즘 들어 더욱 조직화되고 세밀하고 집요하게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으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민초들은 벼랑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아찔한 마음이다. 실제로 필자가 소속된 지역의 치과의사회와 클린회원 운동을 함께 진행하며 활발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냈던 신문조차도 여러 면을 할애하여 그들의 인터뷰를
2004년 8월 산부인과 의사들은 제도적 미비와 낮은 수가에 항의해 무통분만 시술 거부를 선언했다. 일부 산부인과에서 건강보험에서 정한 수가 이상으로 무통분만시술비를 징수한 것이 알려지면서 환자들의 환불요구가 잇달았고 심평원 민원으로 환불결정이 나면서부터 당시 건강보험상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무통분만시술은 ‘100분의 100’이란 보험적용을 받았다. 보험 대상으로 지정해 수가를 통제하긴 하되, 비용 전액을 환자가 부담토록 한 것이다. 그런데 책정된 무통분만시술료는 대략 2만8,000원으로 이 비용으로 마취과의사를 초빙하는 비용까지 포함이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 금액으로 마취과의사를 초빙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수가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진 사태이다. 그러다보니 병원에서 15만원 정도를 받았고 정해진 금액 외에는 환불하라는 결정에 의사들이 시술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물론 제도의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편법에 안주한 의사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100분의 100’은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불만이지만 보험공단의 입장에서는 돈은 한 푼도 안 내면서 수가를 통제할 수 있고 급여적용이 된다고 주장하는 제도이다. 결국 재원의 한계 속
가뜩이나 UD치과 문제로 시끄럽던 치과계가 이번에는 끔찍한 치과 원장 살해 사건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또 한번 아프게 한다치과 진료의 특성상 치료 흔적이 남고 치료 내용이 거의 공개되는 상황에서 치과의사라면 어느 누구든, 어느 병의원 소속이든 환자와의 갈등을 겪어 보지 않은 치과의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예전에는 대부분 의료진의 자세한 설명과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설명하면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환자의 알권리 주장과 의료계에 대한 불신으로 우리들은 항상 긴장 할 수밖에 없다.의료 소비자인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계의 항변은 대부분 우리들만의 메아리로 그치고 만다. 오랜 세월 뒤돌아보면 군부 독재 시절부터 위정자들의 단골 메뉴였던 의사, 원장들의 탈세와 리베이트 사건 등등 항상 정치적인 긴장이 있을 때마다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 의료계를 두들겨 댔고 그로 인해 국민들은 의사들을 비리가 많고 여유있는 배 부른자, 혹은 탈세범으로 인식해 왔고 평범한 국민과의 거리가 먼 특별한 직종으로 취급 받아왔다. 최근에는 전국민 의료 보험과 카드 사용으로 인해 적나라한 세원 노출로 인해 더 이상 의사들을 탈세범으로 몰지 못하는 상황이 오히
의료법에서 의료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살펴보면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할 수 있다는 의료행위의 독점적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진료거부를 하지 못하고, 진료기록부를 기록해야 한다는 등의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 의료인은 이러한 권리와 의무 사이에서 치료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의 수준과 의료환경 및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환자에게 적합한 의료행위를 해야 하고,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환자에게 상해를 입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받게 된다. 최근 대법원은 포항 소재 병원에서 응급실로 이송된 익수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는 과정에서 응급의학과장의 지시에 따라 환자를 구급차로 이송하던 인턴이 구급차에 비치된 산소통을 산소잔량을 확인하지 않아 환자에게 산소공급이 약 18분간 중단되는 바람에 환자가 결국 사망에 이르러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인턴에게 구급차에 비치된 산소통의 산소잔량을 확인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취지로 원심법원에 파기환송하였다(2011. 9. 8.선고 2009도13959).당시 인턴은 환자가 산소 부족으로 몸부림을 치고 동승한 환자보호자가 산소가 떨어졌다고 이
의견을 표시하는 방법으로는 대화와 타협, 글쓰기, 노래, 연극, 시위, 자결, 분신 자살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피켓시위도 의사표시의 한 방법이다. 협회에서는 불법네트워크 치과의 척결을 위해서 과할 정도로 온 힘을 이곳에 집중했다. 부메랑으로 돌아올 우려를 안고서 치과 내부싸움을 언론들과 대중매체로 공개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많은 언론들의 관심의 집중을 받았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속성처럼 그 관심은 빠른 속도로 사라질 것이다. 이후에는 많은 고소와 고발 등 법정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뿐이다. 치과계에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불법네트워크 치과의 척결을 위한 피켓시위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본인이 개원하고 있는 송파구에서도 이 바람을 따라서 피켓시위를 계획해 시행하게 됐다. 추석연휴가 끼어 있어서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하긴 했지만, 더 뒤로 미룰 수도 없는 상태이기에 좀 무리가 되었지만,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성공적인(!) 피켓시위를 위해서 구회 이사들에게 참여를 독려했다. 그리고 각 반의 반장들을 통해서 반원들에게 꼭 참석해 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전화를 부탁했다. 참가자들이 적으면, 참석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알게 되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들은 우리의 지성보다 감정을 자극한다. 그래서 섬세하고 치밀한 감성의 영역은 때론 억한 삶의 냉기로 가득 차오르고 홀로 앉아 벼리는 날선 검들은 좁아진 가슴 어느 켠에 세울 곳도 없다고 느낀다. 갈수록 제대로 살기는 어려워지고 그나마 오랫동안 쌓아왔던 다양한 사회적 위상들마저 순간 겁 없이 붕괴되는 중이다. 그나마 유일한 위로가 되었던 화폐의 존재마저 곳곳에서 깊은 신음을 토하고 있다. 마그마방에 갇혔던 용암이 여기저기 분출하듯 곪아터진 검은 손들은 백주의 공포를 부추긴다. 더구나 사람들의 정신적 멘토였던 사랑과 헌신의 종교마저 성공하기 위한 종교와 부자 되기 위한 종교로 자리 잡고 자본주의의 견실한 조직이 되어 심지어 사람들의 불안을 빌미로 착취도 서슴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이 세상이 활짝 열어둔 덫을 피할 수 없다.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사회적 불안이 극에 달한 요즘 우리 지구환경마저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시대의 한 화두인 ‘종말(終末)’이 주는 의미는 기대치 이상의 절망에 대한 정신적 자멸 같은 것이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지구의 역사에 비해 한 없이 짧은 기간 동안 인간
‘삽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치과계 내부의 곪고 곯았던 문제들이 그야말로 삽시간에 밖으로 터져 나왔다. 사실 훨씬 이전부터 UD치과 등 저수가 네트워크로 인해 개원가는 골머리를 썩고 있었고, 참고 묵과하기에는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개원가는 지금껏 UD치과 네트워크라는 폭탄을 가슴에 품고 왔던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쉽게 터트릴 수도,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던 그 문제의 폭탄이 드디어 터졌으니, 한 켠으로는 속 시원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름이 터졌으니 이제 고름을 짜내고 상처를 도려내기만 하면, 상처 난 곳을 치료해 새살이 돋도록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언론보도, 그리고 UD치과 네트워크를 비롯 저수가 네트워크에 대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는 의혹과 부정적인 반응들. 이에 힘을 얻은 개원가는 지금 그 상처를 도려내는 작업에 한창이다.그런데 무언가 석연치가 않다. 칼을 대면 댈수록 제 얼굴을 잃어버리고 낯설어지다 종국에는 조금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하던 마이클 잭슨의 얼굴처럼(마이클 잭슨의 팬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한다. 그의 업적은 존경할만하다.) 고름
치과를 옮긴지 이제 일년이 되어간다. 대로변에서 제법 떨어져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치과는 사람들이 보기에 좀 이상한 모양이다. 잠시 치과 밖에 나가 서 있어 보면 “어, 치과야? 무슨 치과가 이런 데 있어?” 라는 소리를 듣기가 일쑤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 인근에 큼지막한 간판을 내 걸고 각종 매체에 광고를 하는 병원들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좁은 골목길 안 쪽에 들어앉은 치과란 꽤 낯설어 보일 법도 하다. 또, 가끔씩 찾아오는 선후배들도 조금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안 쪽에 있어서 환자가 찾아오겠어?”라며 염려의 말을 건네곤 한다. 모든 의료기관들은 날이 갈수록 앞다투어 대형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두된 부작용의 문제는 비단 치과계에만 국한된 쟁점이 아닐 것이다. 그 크고 작은 문제점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크게는 한 사람의 자본가가 수많은 의사들의 명의를 대여해 여러 곳의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문제부터 작게는 한 사람의 원장이 면허대여 월급의사를 고용해 두 세 개의 병원을 운영하는 형태까지 자본의 논리는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심각할 정도의 치료비 덤핑으로 전체 의료수가의 기반을
요즘 치과계는 불법 네트워크란 내부적인 문제로 시작된 논쟁이 서로 헐뜯다 보니 전 국민에게 우리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설령 법적 공방에서 이기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다면 지는 싸움인데, 서로 폭로전으로 치닫는다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승리의 목적을 얻을 수 있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전쟁에서 이기려면 치밀한 전술과 명석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는 단순히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것만으론 안 된다. 지켜보고 있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만 진정 승리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협회가 많은 고민과 숙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싸움은 일어나면 안 되지만 일단 발생하면 이겨야 한다. 특히 협회의 사활이 걸린 이번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작금에 치과계의 분위기에서 우려되는 몇 가지가 있어 주제넘게 지적하고 싶다.우리가 전신질환을 소홀히 하고 국소적 치료를 훌륭히 치료하고 나서 환자가 사망하는 우를 범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듯이, 분대 전투, 소대 전투를 승리하더라도 최후의 전투에서 진다면 작은 전투에서의 승리는 아무 의미가 없어 질 것이다. 치과계 전체가 흥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