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를 여행하던 미국인 부부가 딸에게 줄 인형을 고르다가 독일에서 만든 예쁜 성인 인형을 샀다. 1950년대였기에 인형들은 모두가 종이인형이나 어린 아이 모양의 인형이 고작이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것을 딸에게 선물하였다. 그 부부는 미국에서 장난감회사 사장이었고 그것을 계기로 성인여성의 인형에 대한 영감을 받고 디자인 작업을 하였다. 디자인 작업은 미국에서 유도탄을 디자인하던 사람에게 맡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은 시판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팔려나갔다. TV에서까지 광고를 하는 대인기를 누렸으며 2000년에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품으로 타임캡슐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은 인형이 있다. 그것이 1959년에 만들어진 ‘바비인형’이다. 그리고 그 바비인형의 몸매가 38-18-34이다. 바비인형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인형 판매에 있어서 최고다. 연간 13억불의 매출을 일으키는 꺼지지 않는 인기를 지속적으로 누리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사장 부부가 스위스에서 사간 독일인형은 ‘릴리’라는 이름의 인형이었다. 그리고 그 릴리는 히틀러가 만든 인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당시 윤락가를 드나들던 독일병사들이 매독에 걸리는 일이
얼마 전 직업만족도 발표가 있었다. 치과의사가 291위를 했고 치위생사가 189위를 했다. 그리고 간호사가 치과의사보다 조금 낫지만 별반 차이가 없는 250위를 했다. 결코 녹록치 않은 직업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조사기관에서 설문조사한 것을 보면 간호사가 직업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에서 88%의 답변이 감정을 숨기고 웃어야 하는 고통이라고 답변하였다. 이런 경우 심리학에서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즉,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뒤에는 오히려 더 우울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임상적으로는 만성피로, 소화불량, 불면증 증상을 보인다. 결국 내면의 기분과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웃음을 주어야 하는 직업 종사자들이 모두 당면한 일이다. 아마도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뿐 아니라, 스튜어디스, 백화점 종사자, 호텔리어, 은행원 등 창구에서 대민업무를 시행하는 서비스 종사자는 모두 해당될 것이다. 특히 친절을 강요당하는 간호사, 스튜어디스나 호텔리어는 더욱 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만의 심리적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다른 신체적인 증상이
“원장님, 두 번째 체어에 앉아 있는 환자가 3년 전 장치비를 안 내고 갔던 환자입니다”라고 실장이 조용히 말한다. 3년 전, 환자가 교정장치를 제거하는 날은 유지장치 비용이 있음을 미리 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오셔서 비용을 지불할 거라고 하여 장치를 제거했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고 20대 후반인 본인은 카드도 없고 현금도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실장이 직접 엄마와 통화하고 내일 와서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그날 이후로 환자나 엄마가 전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실장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런 사연을 알고 환자 곁에서 무슨 일로 내원 했는지를 묻자, 유지장치를 분실하여 새로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이에 3년 전에 치료비가 지불되지 않았음을 주지시키고 유지장치를 찾으러 올 때는 반드시 비용을 지불하셔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장치를 찾아가는 날에 데스크가 소란해 가보니 환자가 또 비용 준비를 안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또 엄마가 내일 와서 준다고 한다. 3년 전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이에 필자가 엄마와의 통화를 원했고 환자가 전화를 걸어주었다. 3년 전 상황을 이야기하고 송금해줄 것을 요구하였더니 등산 중이어
“선생님, 드디어 남편이 일요일에 TV 야구를 안 보기로 했어요!^^”하고 뿌듯한 듯 제자가 이야기 한다. 개업의를 남편으로 둔 제자이다. 같은 직종의 종사자로 같이 일하고 힘든데 남편이 휴일에 설거지도, 아이를 돌보는 일 등의 가사 일도 전혀 돕지 않는다는 것이 전부터 불만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왜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친구들은 모두 남편이 가사 일을 도와주는데…”라고 답변하였다. 이에 필자가 “그럼 다른 직장인 남편보다 의사라서 경제적으로 나을텐데 그것에 대한 보상은 무엇으로 해 주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남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못 받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다 받아야한다는 욕심인 것인가? 물론 아내에게 휴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본인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남편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런데 야구장에 직접 가서 현장에서 생맥주 한 잔 마시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관람하고 싶은 마음을 접은 이유가 휴일에 가족을 버리고 나간다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십분 양보해서 집에서 TV를 보는 마음을 아내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야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언제부터인가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것 같다. 쉰하나의 나이에 정체성 혼란이 무슨 말인가 싶지만 내면의 생각을 짚어 볼수록 확신이 든다. 얼마 전 일이다. 치료를 받던 20대 중반 여성 환자로부터 치아가 이동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초진 모델을 보여 주고 켈리퍼스로 재서 발치와로 치아가 4㎜ 정도 이동된 것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못 믿겠다고 우기는 일이 있었다. 결국 마음이 급하다 보니 눈으로 본 것도 믿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필자가 “그럼 어떤 식으로 설명하여야 하느냐”고 묻자, 환자는 그제야 수긍을 하였다. 그리고는 이야기 끝에 “내가 내 돈 내고 치료받는 건데 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결국 돈 받으려면 그 정도는 참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그동안 당할 만큼 당해서 잘 견딘다고 생각 했었는데 순간적으로 숨이 탁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 가슴 한 구석에 풀리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치과의사들이 커다란 잘못이나 한 듯이 방송을 하고 난리가 아니다. 무슨 공공의 적이나 되는 듯, 무슨 큰 잘못이나 한 듯 그런 뉘앙스이다. 치과의사의 위
얼마 전 지상파 TV뉴스에 치과의사의 내용이 다뤄졌다. 임플란트를 불법으로 중국에 밀수출 시키는 데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또 치과의사협회가 무슨 큰 죄를 지은 듯한 내용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최고의 벌금을 내렸다는 내용의 뉴스가 방송되었다. 그리고 주변의 치과의사가 아닌 지인들로부터 내용의 진위를 묻는 전화나 질문을 받았다. 그때마다 세상의 눈과 우리 치과의사의사들의 눈높이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이 난다. 그리고 답답함에 치가 떨린다. 눈앞에 사기꾼이 있는데 뭐라고 이야기해도 남들이 믿어주지 않을 때의 그런 답답함, 그리고 내가 사용한 말투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듯한 그런 답답함이다. 이 사회는 오래 전부터 이런 답답함을 해결하지 않아서 결국 모든 이들을 방관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담배 피는 중고등학생을 보아도 외면하고,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보아도 외면하는 것이 세상을 잘 사는 처세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즉, 사건의 본질을 따지지 않고 그 각각의 논리를 따르는 문제 때문이었다. 중고등학생을 훈계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한대 쥐어박으면 폭행죄에 해당되어 피의자 신분으로 합의를 보아야 하는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상황, 길거리에 쓰러진
병원에 근무하는 남자선생이 아들을 출산하였다. 지면을 통하여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임진년이란 세대교체의 시기에 새 생명의 탄생은 새로운 일들의 시작과 출발을 의미한다. 더불어 구시대의 생각과 습성의 소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이 시대에 탄생의 의미는 구세대의 퇴장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세대’란 사전적 의미로 공통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공통의 의식이나 풍속을 전개하는 일정폭의 연령층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아이가 성장하여 부모의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으로써 약 15~30여년 간을 표준으로 한다. 서양의 사회학자 만하임은 세대를 사회학적 의미로 해석하여 세대의 상황, 세대의 관련, 세대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세대의 상황은 세대가 태어나는 사회적 기반을 말하는 것으로, 역사적 사회적으로 동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일정한 사회에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대의 관련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공통된 문제를 가짐으로써 생기는 것을 말하고, 세대의 통합은 집단생활 속에서 서로 결합하고 서로 작용함으로써 일정한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반면 동양적 개념의 세대는 ‘세’와 ‘대’의 합성어로 ‘세(世)’는 사람의 한평생을 뜻하고
아침 TV프로그램에서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환자가 5년 동안 66% 급증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보았다. 최근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인터넷이나 신문지상에 거론되어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두 번쯤은 들어본 단어로 조금은 익숙해진 질환이다.이를 보던 필자는 결국 이런 증상을 확증하기까지나 아니면 질환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환자가 많은 고통을 겪는 바도 있지만 그 주변 사람들 또한 심리적으로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 안타까웠으며, 또한 그런 환자가 치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면 치과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으므로 치과의사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환자의 행동이나 반응으로 놀라는 경우가 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심리학에서 공황장애는 이상심리로 분류 한다. 이상심리에는 기분장애, 불안장애, 성격장애, 신체형 장애, 정신분열증 등과 같은 것이 있으며, 그 중 불안장애에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강박장애, 공포증 등이 포함된다.공포증에는 고소공포증 같은 특정공포증, 사회공포증, 광장공포증 등이 있다. 따라서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
출근길에 차창 너머 멀리 보이는 달맞이 동산을 뒤덮은 개나리의 노란색과 한강이 어우러져서 절경을 이룬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일요일에 운동 삼아 나가본 한강변에 흰색에 약간의 핑크빛을 머금은 벚꽃은 정말 예뻤다. 더불어 땅 위에 돋아나는 쑥이나 민들레 같은 파란 싹들의 초록빛은 마음에 평화를 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산천초목의 변화와 함께 환경에서 보여지는 색채 또한 다양한 변화를 보인다. 색채심리학자에 의하면 색채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반면에 색채에 따라서 마음의 변화가 오기도 한다. 이에 심리학에서는 색채를 이용하여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로 색채 테라피가 있기도 하다. 필자가 생각해보니 봄철에 발견되는 색들은 사람의 마음에 평화, 위안, 희망 등을 주는 긍정의 에너지를 지닌 색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수만년을 겪으며 살아온 인간에게는 혹독한 겨울을 참고 견디며 처음 봄이 왔을 때 보이는 색채들에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끼는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녹색은 마음에 평화를 준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녹색이 있을 때는 동식물의 먹을 것이 풍요롭다는 것이 기본으로 전제되었기에 마음의 평화를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붉은색은 따뜻함
환자와의 상담이 끝날 때 즈음에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예쁘게 해 주세요’이다. 예뻐지고 싶다는 것은 동물들이 지닌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다. 유전학에서 우성인자로 인식하는 것이 예쁜 개체이다. 따라서 모든 동물은 짝짓기 배우자의 우선순위로 예쁜 것을 찾는다. 그래서 동물들은 암컷보다 수컷이 더욱 화려하다. 꿩이 까투리보다 화려하고 숫사자의 갈퀴가 암사자보다 화려한 이유다. 이런 동물이 예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가 대칭성이다. 좌우가 대칭이어야 예쁠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 둘째는 비율성이다. 미술에서 말하는 황금비가 있듯이, 인간에게는 8등신이 가장 예쁘게 보인다고 하는 것과 같이 동물마다의 황금비가 있다. 셋째가 색채의 화려함이다. 공작, 꿩 등의 화려함은 놀라울 정도이다. 이와 같은 조건이 부합될 때 동물들은 예쁘다는 표현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도 이 세 가지 조건에 맞을 때 비로소 예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아름답다’는 표현과 ‘예쁘다’와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우리가 자주 표현하는 말에 ‘아름다운 삶’이란 표현을 하듯이, 아름다움은 ‘예쁘다’가 객체의 외형을 주로 인식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람의 마음속에 감동을 유발
‘법’ 이란 글자는 ‘물이 흐르다’라는 뜻으로 물수(氵)변에 갈거(去)를 썼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인간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공동생활에 룰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물이 흐르듯 흘러가야 한다는 보편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자가 탄생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법을 만들었고, 그에 대항하던 신하(臣權)들은 절대 권력자들에 대항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또 다른 법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나라의 역사가 그러하였고 우리나라 또한 신라부터 시작된 왕권과 신권과의 싸움이 조선시대 말까지 이어졌고, 왕이 없어진 현재에도 역시 변형된 형태로 지속적인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다. 요즘의 선거 양상만을 놓고 보아도 그것은 그들의 권력을 위한 동일한 싸움에 불과하다. 그리고 과거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점은 역사적으로 그 어떤 법에도 서민과 국민을 위한 법은 없다는 것이다. 취지와 말은 근사하지만 결국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을 위한 방편으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권력이 사욕에 이용되면서부터 물이 흐르는 듯한 법이란 없어졌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 4월부터 시행되는 법들이 있다. 3월 30일
며칠 전 뉴스에 요즘 직업에 대한 만족도의 순위가 발표되었다. 이는 2012년의 759가지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한국고용정보원에서 평가하고 발표한 내용으로 1위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필자가 치과의사이다 보니 그 중에서도 의료인들에 관한 내용에 관심이 먼저 간다. 의료인 중에서는 한의사가 12위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의사가 44위를 하였다. 치과위생사는 189위를 하였고 간호사가 250위였다. 우리 치과의사는 291위였다. 반면 유사의료직업인 음악 치료사가 44위, 의학연구원은 49위, 미술치료사는 76위, 임상연구 코디네이터는 96위를 하였다. 모든 의료인 직업 중에 최하위를 한 것이다. 보고에 의하면 간호사들은 70%가 직업에 불만을 지니고 있으며, 제일 힘든 일이 감정을 숨기고 웃어야하는 고통으로 88%이며, 70%가 스트레스로 두통을 앓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더불어 1년 이내에 이직하고 싶은 사람도 32.1%나 되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찾아도 간호사보다도 만족도가 낮은 치과의사에 대한 이러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치과의사의 집단이 간호사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직업이거나, 통계를 내기에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스트레스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동·식물뿐만 아니라 비행기, 건물 같은 무생물에까지 사용하는 다양성을 지닌 단어이다. 무생물의 스트레스는 붕괴나 파괴로 이어지지만 동·식물의 스트레스는 생명력과 관련된다. 무생물은 스트레스가 없을수록 오래 사용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동·식물은 적당한 스트레스가 없으면 도태되거나 스스로 퇴화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그래서 분명 적당한 스트레스는 필요하지만 그 적당함의 경계가 모호하다. 적당함이란 것이 일관성을 지닌 것이 아니고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자연계의 자연조절기능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동·식물과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이는, 인간의 스트레스 속에는 생각에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는 정서적인 부분이 동식물들이 받는 환경적인 요인보다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박지영은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인식하기 쉬운 형태와 어려운 형태로 나누었다. 쉬운 형태는 압박감, 갈등, 좌절, 자극의 결핍 등으로 본인 스스로가 알기 쉽다. 압박감, 갈등, 좌절은 흔하게 쓰는 단어이고, 자극의 결핍은 심한 무료감이라 할 수 있
오늘은 택시 막말녀가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지하철 막말녀, 화장실 막말녀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건만 하도 흔하게 들려이젠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니라 여겨진다. 대부분이 나이 많은 분들에게 버릇없이 마구 반말하고 욕을 하며 하대한 경우이다. 이는 그들의 마음 속에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이 없기 때문이며, 이것은 그들의 삶과 연관된 어른들이 그런 존경 받을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이라도 감동 어린 사랑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을 게다. 아니 어쩌면 어른들에 대한 분노를 지니고 있다가 만만한데서 터뜨렸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경제성을 가치 기준으로 삼고 상대적으로 빈곤층을 천시하는 그런 생각을 지녔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어떤 연유였든 간에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어린 시절 한약을 달여 주시던 어머니가 지금 아이들에겐 없다. 학원을 정해주고 시험 스케줄을 잡아주는 엄마는 있으나 정성껏 약을 달이던 어머니의 모습은 없다. 예전 어머니들은 한약을 한 재 지어오시면 약탕기에 약을 넣고 좋은 물을 구하기 위하여 일부러 우물에 가서 길어다가 넣고 창호지로 덮고는 김이 빠지지 않게 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열어보는 스마트폰의 창에 빗물이 들이치는 모습을 보고 거실 창밖을 보니 봄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은 눈비 오는 것마저 스마트폰을 보고 먼저 아는 것에, 어떤 정서를 빼앗긴듯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운전하며 출근하는 길에 비에 젖은 한강변의 고즈넉하고 차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문득 할리우드의 명화 ‘애수(哀愁)’에서, 비오는 날 런던의 워털루 다리에서 미남 장교 ‘로버트 테일러’와 발레리나 ‘비비안 리’가 처음 만나던 장면과 Auld Lang Syne 음악이 흐르던 클럽에서의 이별 장면, 그리고 비를 맞으며 서로를 애타게 찾던 모습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정서적으로 아주 메마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빙그레 웃어보았다. 요즘 들어 필자가 감성적이란 유일한 증거인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흘리는 눈물 외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감동받을 만한 일들이 많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이렇듯 비오는 날이면 병원도 덜 북적거려 한결 여유가 생긴다. 전부터 의료계에서 농담처럼 들어왔던 ‘유비무환’이란 말처럼 말이다. ‘비오는 날에는 환자가 없다’라는 말은 선배님들의 해학이 고스